민주주의 사각지대 되려 커진 지방자치
카르텔 원인 시범사업 대상만 계속 늘려
전상직 회장 스탠다드 만들기 시도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주민자치회 시범사업 실시를 중단하고 잘못된 제도 개선 기회를 삼을 수 있었지만,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쳐버렸다."
-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회장
정부의 소극적 대처로 시민단체만 먹여살리는 주민자치제도 개선이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간 자치를 강조하면서 제도 개혁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행정력이 받쳐주지 못한 결과다.
27일 여성경제신문이 행정안전부의 전국 17개 특·광역자치단체에 배포한 2023년 주민자치회 표준조례 개정 안내서를 분석한 결과 주민자치회 임원 선출 방식에서 문재인 정부 때보다 더 퇴행한 제도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주민자치회 시범사업을 위한 표준조례안은 지난 2013년 '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박근혜 정부 때부터 시작됐다. 주민자치회는 행정·사무뿐만 아니라 자치계획 수립 및 실행, 주민총회 개최 등을 수행하기 위한 읍·면·동 단위의 민관협치기구다.
자치 행정에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지방 정부를 견제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지난 10년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한 결과 '민주주의 사각지대'만 넓혀버린 실정이다. 시범사업 초기인 2015년 11월 기준 49개였던 주민자치회 설립 읍·면·동 수는 올해 1월 기준 1315개(37%) 증가해 전국 3515개로 늘었지만 '주민 빠진 정부 자치' '참여가 결여된 분권' 구조를 심화시켰다.
미국 내 가장 작은 단위의 지자체(Municipality)는 행정 단위에 불과한 국내 읍·면·동과는 달리 선거를 통해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구성되는 하나의 지방정부 역할을 한다. 일본의 주민자치시스템도 마찬가지로 풀뿌리 민주주의에 근간한다. 다수의 자치회가 모여서 주민협의회를 구성해 행정 조직을 견인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의 주민자치회는 행정의 보조 조직이지 자치 기구로 보기 어렵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따르는 국가 가운데 한국처럼 읍·면·동장을 하향식으로 내리꽂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부터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을 담당하는 관제 신탁(중간지원조직)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정파성이 가득한 시민단체가 주민자치회를 지배하는 구조적 문제까지 더해졌다.

박원순·문재인 시민단체 신탁 통치
'조선 사림파'의 '관치 향약'과 유사
수령주도 체계로 더 퇴행한 尹정부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27조엔, 풀뿌리자치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표준조례 제1조(목적)에서 '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다. 전상직 회장은 "시민단체의 개입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한 것"라며 "관치 향약을 통한 조선 양반계급의 신탁 통치와 유사한 지배구조"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런 카르텔 구조를 혁파하고 민간의 힘으로 자치를 실현하자는 철학에 기반해 '주민자치위원회 및 주민자치회 개선' 및 '지역공동체 인프라 조성 및 지역 커뮤니티 활동 촉진'을 지역 균형 발전 국정 과제에 담았다. 하지만 올해 상황을 보면 실무 부처인 행안부가 자치제도과장 전결을 통해 표준조례를 개정을 강행하면서 개혁이 도루묵이 될 처지에 놓였다.
기존 표준조례안에서는 주민자치위원 선정방식을 희망하는 주민들을 공개 모집한 후 무작위 추첨하도록 했다. 공개추첨 방식은 주민자치위원을 읍 ·면·동장이 심사해 선정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8년 표준조례안부터 반영됐다. 반면 이번 개정안은 '주민자치회 위원 선정방법 다양화'를 명목으로 읍·면·동장의 영향력을 확대했다. 읍·면·동장이 위촉한 위원들로 구성된 위원선정위원회를 꾸린 후 해당 위원회가 주민자치위원을 추첨하거나 선출하는 방식이다.

문재인 정부의 시민단체 주도 모델의 공개 추첨 방식에서 더욱 퇴행한 조선 후기 수령이 주도하던 주현 향약(鄕約通變) 체계로 역행했다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이렇다보니 윤석열 정부 들어 주민자치회를 인민위원회에 비유하며 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강경론(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과 함께 전광훈 목사를 필두로 4·10 총선을 위한 유사 법외 단체(자유마을) 설립 운동이 활발하다.
국내 주민자치 관련법의 원형은 지난 2022년 12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폐지한 '서울특별시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다. 박원순 전 시장은 (사)마을을 중간관리 조직으로 하는 주민자치회 지원(마을공동체) 사업과 함께 '서울특별시 시민공익활동의 촉진에 관한 조례'를 입법해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등 재벌로부터 대규모 후원을 받는 비영리민간단체(NPO) 지원 사업 위탁 관리 규모를 서울특별시 단위로 키웠다.
또한 행안부의 표준조례 개정안에선 법인 또는 단체가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주민자치회 중간지원조직의 근거 조항은 삭제됐지만, 지자체 단체장과 의회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설립이 가능해 보여주기식 행정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전 회장은 "주민자치 권한의 강화를 원하지 않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시·군·구 단체장 간의 강력한 카르텔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이를 혁파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상황이라 종로구청을 통해 직접 스탠다드를 만들어 제시하는 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