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의 피 어려 있는 620년 금기의 땅
3자 맞교환 전략에 2021년 시유지 돼
吳 직접 건물 배치도 등 포함 PPT 발표

한양전도에 송현동 땅이 경복궁 동쪽에 자리한 숲으로 표시되어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한양전도에 송현동 땅이 경복궁 동쪽에 자리한 숲으로 표시되어 있다. /서울역사아카이브

님그ᇟ말 아니 듣ᄌᆞᄫᅡ 적자(嫡子)ㅅ긔 무례(無禮)ᄒᆞᆯᄊᆡ 셔ᄫᅳᆳ 뷘 길헤 군마(軍馬)ㅣ 뵈니ᅌᅵ다。 - 용비어천가 제98장

1398년 8월 26일 저녁 8시께 경복궁 경내에 있던 이방원은 갑자기 배가 아파 화장실로 간다면서 준비한 말을 타고 서쪽에 위치한 영추문(迎秋門)을 뛰쳐나왔다. 자기 주변의 얼마 남지 않은 병력이라도 데리고서라도 나라를 접수하기 위해서였다.

돈의문(敦義門) 사저 근처에서 일행을 만난 이방원은  암구호를 산성(山成)으로 정하고 정도전 일당의 비밀 아지트로 알려진 남은(南誾)의 첩이 살던 집을 향해 달렸다. 이방원과 50명 남짓의 병력이 경복궁 동쪽 송현(松峴)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 무렵이었다.

여느 때처럼 이직(李稷)과 함께 술을 마시며 놀던 정도전은 그날이 제삿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갑자기 이방원이 들이닥쳐 불을 지르자 담장을 넘어가 판사 민부의 집에 몸을 숨겼으나 이내 붙잡히고 말았다.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정도전이 침실 안에 숨어 있다가 작은 칼을 가지고 걸음도 걷지 못한 채 엉금엉금 기어서 나왔다." 몸을 웅크린 채 정도전이 "예전에 공이 이미 나를 살렸으니 지금도 살려주시오"라고 목숨을 구걸했으나, 이방원은 "네가 조선의 봉화백이 되고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느냐?"고 꾸짖고 주저 없이 목을 베어 죽였다.

태종(太宗)이 하룻밤 기습 공격으로 왕조 건국의 화룡점정을 찍은 역사의 한 장면이다.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신권(臣權) 정치의 막을 내리고 아버지를 물러나게 했던 그는 불과 2년 뒤 제2차 왕자의 난까지 일으켜 본인이 조선의 국왕이 된다. 그렇게 무덤도 없이 사라진 정도전의 피가 묻은 송현동은 지난 620여 년 금기의 땅이었다. 2021년에야 우여곡절 끝에 공원 부지가 된 송현동에 이승만·이건희 기념관 건립이 동시에 추진된다.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지난 5월 3일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열린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관 하늘소 개장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지난 5월 3일 서울 종로구 열린송현녹지광장에서 열린 제4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관 하늘소 개장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

12일 서울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때부터 송현동 부지에 애착을 보였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손병두 이승만기념관부지선정위원장,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과의 비공개 만남을 가지고 '송현공원 내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 검토'라는 프리젠테이션을 발표했다. 당초 이건희 미술관 이외엔 짓지 않겠다고 공언한 오 시장의 검토 자료엔 건물 배치도, 면적, 소요 경비 등 구체적 계획까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줄곧 소나무 숲이었던 송현동 부지는 일제 강점기엔 조선식산은행 직원들 숙소였다. 이후 미군정 소유로 넘어가 대사관 직원들이 거주하다 2000년 고(故) 이건희 회장이 대규모 현대미술관을 짓고자 삼성생명을 통해 1400억원에 사들였다. 하지만 외환위기 여파로 미술관 건립 계획은 좌초하고 2008년 대한항공(한진그룹)에 2900억원에 땅을 매각했다. 이렇게 15년간 대한항공이 소유해 온 송현동 땅이 시유지(市有地)가 된 것은 불과 2년 전인 2021년이다.

오 시장은 기존 시유지였던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부지 절반을 내어주고 송현동 땅을 얻는 전략을 펼쳤다. 2021년 코로나19로 재무 상황이 악화한 대한항공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송현동 부지를 5580억원에 매각기로 하자 서울시는 대한항공, LH에 3자 간 맞교환을 제안했다. 결과 지난해 7월 송현동 부지 소유권은 대한항공→LH→서울시로 변경됐다. 동시에 김헌동 SH공사 사장 주도로 서울의료원 북측 부지엔 공공주택 3000호를 공급하는 계획을 세웠다.

옛 서울의료원 남측 부지를 내어주고 서울시가 받은 송현동 땅이 대한민국 건국과 기업보국을 상징하는  곳으로 재탄생하게 된 과정이다. 전체 부지는 3만7117㎡ 규모로 서울광장(1만3207㎡)의 약 3배의 크기다. 한양 도성의 옛 모습을 완전 복원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오 시장의 숙원 사업과도 직결된 공간이다.

남동쪽 상공에서 촬영한 송현동 부지 /서울시
남동쪽 상공에서 촬영한 송현동 부지 /서울시

한양 도성~대한민국 이어지는 그림
조선 왕권 상징터···건국의 성지 되나

조선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주역의 태극 팔괘(八卦)를 응용해 동대문인 흥인문(興仁門), 서대문인 돈의문(敦義門),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 북대문인 홍지문(弘智門) 4대문을 만들었다. 그러나 일제가 도로 확장을 이유로 '의(義)를 두껍게 하는(敦) 문(門)'이란 뜻의 돈의문을 철거했다. 이에 서대문을 복원하고 서울의 완전한 역사성을 회복하자는 복안이다.

지난 10월 광화문 월대·현판 복원을 마친 오 시장은 "북악산에서 경복궁, 광화문, 광화문 광장 옛 육조거리, 덕수궁,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조선시대 500년의 수도인 한성의 역사성을 복원하는 작업의 일부"라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수백년간 민간인의 발길이 닿지 못했던 송현동에 이승만·이건희 기념관을 짓는 것은 500년 조선 왕정의 역사를 단절시키지 않고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딛고 주권을 회복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 120여 년을 더하는 의미가 있다.

아들에게 나라를 빼앗기다시피 한 이성계는 굳셈(剛)과 눈 밝음(明)을 갖추지 못해 정도전과 남은 같은 신하에 휘둘렸다. 강명(剛明)의 리더십은 국가는 물론 기업 경영에도 적용된다. 정종(定宗)이 동생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강명한 임금이니 권세가 반드시 아래로 옮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집권 기간(1400~1418년) 태종은 종묘사직을 반석에 올리는 일을 최대 과제로 여겼다. 왕권 강화를 위해 의정부를 무력화하고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를 관철했다. 이건희 회장 역시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한결같은 의지로 '21세기 초일류기업 달성' 약속을 지켜낸 인물이다. 또 지난 1일 개인 명의로 기념관 건립에 500만원을 기부한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다"고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립운동을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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