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와 입법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실수 자처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46포인트(0.23%) 오른 2427.08로,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8.15포인트(1.00%) 내린 802.87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9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 코스닥 지수가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5.46포인트(0.23%) 오른 2427.08로, 코스닥지수는 전장보다 8.15포인트(1.00%) 내린 802.87로 마감했다. /연합뉴스

"모건스탠리를 공매도 세력이라고 모함하는 이들에게 편승하는 정부를 좋게 봐줄 수 있을까요? 주가 하락이 공매도 때문이라고 보는 금융당국 수장의 인식이 대외신인도 회복에 도움이 될지 의문입니다." -자산운용업계 채권운용역 A씨

윤석열 대통령이 10·11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반성·소통 계기로 삼겠다며 '민생 타운홀' 미팅에서 60여명의 참가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전두환 정부의 경제참모 김재익 수석의 시장경제 철학이었다.

윤 대통령은 "(김 전 수석이) 가장 먼저 한 것이 재정을 딱 잡은 것"이라며 "재정을 늘려야 된다는 요구가 정계에서도 있었지만, 재정을 잡아서 물가를 잡았다"고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 작은정부 원칙을 높이 샀다.

국가부채 1079조원, 국가채무비율 58.6% 시대 윤 대통령이 임기 초반부터 허리띠를 바짝 조인 결과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달 한국 국가신용등급 'AA-'를 유지했다. 재정 개선 조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지난 9월 채권 부분인 영국 FTSE 러셀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는 실패했으나 탄탄한 경제 펀더멘털을 무기로 증권 부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에 도전할 만하다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국민의힘 당내 여론조사기관에 불과한 여의도연구원의 검증 안 된 정책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켰다.

9일 국민의힘에 따르면 정부여당의 공매도와의 전쟁은 박수영 전 여의도연구원장이 강서 보궐선거 참패 책임으로 물러나면서 김기현 대표에게 전달한 총선 전략 가운데 공매도 일시 중단 방침이 담기면서 시작됐다.

무차입 공매도는 현행법상 불법인데 기관투자자에 의해 횡행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또 최근 다수의 외국계 자산운용사가 국내 2차전지주를 보유하지 않은 상태로 매도 주문을 넣었다가 '무차입 공매도 제한 규제'를 위반한 혐의 등으로 금융당국에 적발된 것이 단초가 됐다.

지난 5월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은 금융사는 각각 ESK자산운용·AUM인베스트, 캐나다 퀘벡주 연기금(CDPQ), 퀀트인자산운용, 미국 스톤엑스 파이낸셜 등 5곳이었으나, 동학개미들이 외국계 투자기관과 전면전을 벌이면서 모든 공매도를 범죄시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내년 6월 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해 공매도가 금지된 가운데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회원들이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6월 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해 공매도가 금지된 가운데 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회원들이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의원들 중심으로 무차입공매도 거래 자체가 불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된 배경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엔 차입공매도 상환 기간과 담보 비율을 투자자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하고, 공매도 거래를 전산화해 무차입 공매도 거래가 불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공매도 업무 처리 시 전산 시스템 이용 의무화 및 공시 요건 강화를 내용으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홍성국 민주당 의원은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공시 이후 가액 결정일까지 상장사 주식을 공매도한 거래자의 CB, BW 취득을 제한하자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내놨다.

국내 투자자와 외국인 투자자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개선하고자 민주당은 오는 21일 백혜련 의원이 상임위원장인 정무위원회에서 공매도 제도 개선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심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4·10 총선을 앞둔 정부·여당이 존재감 과시를 위해 입법을 통해 개미들의 불만을 풀어주기보다 공매도를 원천 차단하는 길을 선택하면서 자신들의 퇴로까지 막은 것이다.

김주현, 증시 안정 해치는 거래로 규정
주가 하락 원인이라는 非 전문가 수준
尹 임기 내내 금지 조치 연장할 가능성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정무위 전체회의에서도 공매도 자체를 주식시장의 안정성을 해치는 거래 행위로 규정했다. 또 그는 내년 6월 말 이후에도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연장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3년가량 남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중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한국 증시가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하려면 지수 편입 후보군인 워치리스트(관찰 대상국)에 1년 이상 올라야 한다. MSCI는 전 세계 증시를 선진국 시장, 신흥국 시장, 프런티어 시장으로 분류하는데 현재 한국은 신흥국 시장에 포함돼 매번 관찰 대상국 등재에 실패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김 위원장이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여부는) 여러 요소가 감안된다"며 "공매도를 금지하면 (편입이) 안 되고, 공매도를 하면 (편입이) 되는 이슈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것도 사실과 다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청년동행센터 건물에서 현장 점검 일정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청년동행센터 건물에서 현장 점검 일정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위원장 주장과 달리 미국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이 발표하는 MSCI는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 수준, 충분한 주식시장의 폭과 깊이, 건전하고 안정적인 재정·금융정책, 낮은 통화위기 가능성을 선진국 지수 편입 우선 조건으로 본다. 이에 더해 외국인 투자자 접근성 제고와 공매도 규제 철폐가 한국이 관찰 대상국에 오르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로 꼽힌다.

또 민주당과 협의를 통해 입법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제도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킨 결정을 "매우 시의적절하다고 본다"며 자화자찬한 박수영 의원 발언도 윤 대통령 임기 중 선진지수 편입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여당 안팎에선 증권사의 시장조성 업무를 시장교란으로 규정하며 추가 규제를 암시하고 있다. 시장조성은 저유동성 종목 등이 원활히 거래될 수 있도록 증권사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제도다. 거래소와 시장조성자 계약을 맺은 증권사들은 계약 대상 종목에 상시로 매도·매수 호가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시장조성 역할을 한다.

현재 거래소에 시장조성자로 등록한 증권사는 코스피 8곳(미래에셋‧NH‧메리츠‧하이‧교보‧이베스트‧신영‧한국IMC증권), 코스닥 8곳(미래에셋‧NH‧메리츠‧DB금융투자‧교보‧이베스트‧신영‧한국IMC증권)으로 거래 액수도 미미하지만, 이들에게 허용된 공매도가 주가를 떨어뜨린다는 것이 강성 동학개미들의 불만이다. 김주현 위원장은 이날 '시장조성자 불법 상시 감시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윤한홍 의원의 요구에도 "금융감독원에 특이 사항이 있는지 조사토록 요청했다"며 눈치를 보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증권가에선 이번 조치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한국의 대외신인도란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자금 가운데 선진 지수를 추종하는 규모가 신흥국 지수를 추종하는 규모보다 6배 이상 크기 때문에 한국이 MSCI 선진국 편입에 성공하면 해외 자금이 유입되는 이점이 있었으나 물거품이 됐다. 김동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승격 시 한국 시장 자금 순유입 예상 규모는 6조~70조원 사이로 추산된다"며 "장기적인 영향으로 밸류에이션 디스카우트 해소, 자본시장 안정성 향상 등 장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