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막기, 메자닌 쪼개기, 리픽싱 횡행
윤석헌·정은보 전 원장이 사실상 방치
횡령 구체적 사례 확인은 이번이 처음
옵티머스 5109억 행방 추가 발표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에 대한 재수사 수준의 칼을 빼들면서 윤석헌·정은보 전 금감원장 시기 만연했던 부실 감독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불가피해졌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등 3개 자산운용사에 대한 추가 검사 실시 결과 △특정 펀드 수익자를 위한 펀드 돌려막기 △펀드 자금 횡령 △임직원의 사익 추구 행위 등을 적발했다.
특히 라임 펀드의 경우 2019년 10월 대규모 환매 중단 선언 직전인 8~9월 중 4개의 시리즈 펀드에서 '특혜성 환매'가 드러나면서 다른 펀드 투자자의 손실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농협중앙회를 포함한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혜자로 지목되며 논란의 중심이 됐다.
지난 2021년 7월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라임이 2017년 5월부터 신한투자증권의 총수익스와프(TRS) 대출자금을 활용해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그룹(IIG) 펀드를 비롯한 5개 해외무역 금융펀드에 투자한 라임 무역금융 펀드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 판정을 내리고 투자금 전액을 반환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해당 상품에 투자한 비중은 20~30%인데다 2018년 11월 이후 판매분만 대상이라서 대부분의 사기 펀드 피해자가 투자금을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 집계에 의하면 최근 5년 동안 사모펀드 환매 중단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는 1만3000여명, 피해액은 5조원이 넘는다. 사모펀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 자산운용사와 판매사의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돌려막기 방식'의 범죄가 구체적으로 확인·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투자자 속이고 부실 채권에 쏟아부은
설계·운용 단계서부터 기업범죄 잉태
문재인 정부 시기 금감원은 2020년에도 233개 전문사모운용사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했지만, 당초 목적이던 설계·운용 과정에서의 부실은 잡아내지 못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펀드 관리와 함께 '메자닌 쪼개기' 방식으로 방만 운용을 일삼은 사모펀드업계의 행태를 방치했던 것이다.
자본시장법상 자산운용사가 판매사(증권회사 등)의 운용지시를 토대로 펀드를 만들고 운용(펀드 편입 종목선정·매매 등)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 'OEM 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출자자의 지시를 따라 펀드를 운용하는 것으로 자본시장법상 불법이다. 투자자와의 약속을 무시한 임의적으로 운용은 폰지 사기(ponzi game)로도 곧잘 이어진다.
금감원의 추가 검사가 진행될수록 라임 일당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기업들의 범죄 사실도 구체화되고 있다. 먼저 라임이 지난 2018년 12월 300억원을 투자한 사모사채를 발행한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은 해당 자금을 임원 대여금 명목으로 인출한 후 276억원을 필리핀 소재 리조트 인수에 사용하는 등 총 299억원을 유용한 혐의가 드러났다.
부동산 시행사인 메트로폴리탄은 이뿐 아니라 라임으로부터 3500억원(최대 5000억원까지 추산)을 투자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로 메자닌으로 불리는 코스닥 상장사들의 부실 전환사채(CB)를 되사는 데 쓰였다. '메자닌 채권'은 신용등급이 투기등급(BB 이하)도 안되는 이른바 '무등급 사모사채'로 유통시장을 통해 현금화가 불가능하지만 금감원은 전임 원장 시기 이를 방치해왔다.
대표적인 사례로 금감원은 지난 2020년 5월 2일 메자닌전문자문사로 시작한 '에이원자산운용'이 시리즈펀드를 OEM 방식으로 설정·운용하는 과정에서 '쪼개기 운용'을 해온 의혹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도 현장조사를 일 년 가까이 미뤘다. 또 그 결과 특정 임원이 채권 분류를 잘못한 탓이라며 솜방망이 처벌인 징계(주의) 조치만 내렸다.
이와 관련 자산운용사 채권 전문가는 본지와의 조사에서 "채권 등급 분류 등 자산평가 문제는 장부를 10분만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조사"라면서 "현장검사가 오히려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이란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뿐 아니라 에이원자산운용은 라임 사태에서 김봉현의 자금창구였던 '리드'(2020년 3월 코스닥 상장폐지)의 메자닌 채권을 리픽싱(Refixing) 제도를 활용해 액면 가액 수준으로 매수하고 주식전환했다. 리픽싱은 국내 메자닌 채권에만 부여하는 독특한 제도로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화 문제와 함께 대주주가 지분 확대 수단으로 악용할 소지가 있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 과정에서 라임이 투자한 전환사채를 발행한 기업 임원진이 투자금을 횡령한 사례를 다수 적발했다. 2018년 경 라임과 캄보디아 리조트 개발을 공동진행한 S 상장사에서도 대규모 횡령 정황을 확인했고 라임 펀드의 투자처가 보유한 제3자에 대한 대여금 5건(191억원)을 발견했다. 종합적으로 라임이 전환 및 신주인수권부사채(CB·BW) 등을 투자한 5개 회사에서 약 2000억원의 횡령 혐의를 적발해 수사기관에 통보했다.

디스커버리, 라임과 유사한 사기 구조
옵티머스 조사는 여전히 제자리 걸음
옵티머스 펀드에 대한 검사에서도 사모사채에 투자금을 빼돌린 범죄가 다수 적발됐다.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고 기망해 펀드 자금을 모집한 옵티머스자산운용 임원 A씨는 펀드 자금을 투자제안서와 달리 비상장사 사모사채에 투자하도록 운용 지시하고 공모 대가로 1억원을 따로 챙긴 혐의가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번 주부터 IBK기업은행을 시작으로 디스커버리펀드 판매사에 대한 재검사에 나선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 임직원의 비위 행위와 이른바 '펀드 돌려막기' 정황이 확인되면서다. 디스커버리펀드는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 장하원 대표가 운용한 펀드로 2017년부터 기업은행과 하나은행 등 3개 은행과 9개 증권사에서 판매됐다.
미국 채권 등에 투자하는 안전한 상품으로 알려진 디스커버리펀드는 현지 운용사의 회계분식이 드러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2019년 2500억원대 환매 중단 사태를 빚었다. 이번에 금감원은 2019년 2월 투자처인 해외 특수목적법인(SPC) 자금 부족으로 만기가 다가온 3개 펀드의 상환이 어렵게 되자 또 다른 해외 SPC에 투자한 펀드 자금으로 돌려막기한 폰지 사기를 포착했다. 다만 지난 8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부정거래·배임 등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장하원 대표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또 이번 조사 발표에는 옵티머스 일당이 투자금의 98%를 공공 매출채권이 아닌 '비상장 사모사채'로 빼돌리며 횡령한 5109억원 규모의 자금 종착지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옵티머스 이사의 아내인 전 청와대 행정관 이진아씨도 민정수석실 근무 당시 범행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참고인 조사에 그쳤다. 라임사태에 연루돼 보직해임 당한 김정훈 전 금감원 인적자원개발실 팀장도 징역 4년형과 벌금 5000만원의 처벌을 받았지만 윗선에 대한 조사는 멈췄다.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금감원의 이번 검사 역시 고위험 금융상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판매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결국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옵티머스 일당이 이낙연 캠프의 복합기 사용료를 대납했다는 것 정도"라며 "골프연습장, 유람선, 신재생에너지사업 등으로 빼돌려진 수천억원의 자금의 행방을 찾아 국민에 알릴 의무가 금감원에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