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인·가사도우미 절반 외국인 노동자
국내 거주 이주여성 60% 가정 폭력 경험
체류 비자 연장 기회 모두 배우자에 종속

그녀의 얼굴에 핏기가 도는 멍이 가득했다. 눈가는 주저앉았고 영혼 없는 표정이 드리웠다. 고려인 출신 간병인 A씨는 주정쟁이 남편의 폭행에 시달리고 있지만 외국인 이주여성이란 이유로 국가는 손을 내밀지 못했다. 외국인 이주여성 대부분이 배우자의 비자에 체류자격이 종속되기 때문에 발생한 가슴 아픈 사연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의 체류자격이 배우자에게 종속되면서 가정폭력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주여성이 속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요즘 남편의 폭력을 호소하는 이주여성 의뢰인이 많아졌지만 현행법만으론 보호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한국인과 결혼한 이민자는 출입국관리법과 국적법에 따라 어느 정도의 보호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가정폭력을 이유로 배우자가 수사 혹은 재판절차가 진행 중인 경우 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국내 체류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 배우자가 사망해도 귀화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외국인 부부가 한국에 함께 거주할 때는 배우자의 가정폭력에 대한 보호장치가 사실상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부부는 대체로 한쪽이 F-4 비자인 재외동포 비자이거나 방문취업자 자격으로 입국한다.
이 경우 함께 입국한 배우자는 방문 동거 혹은 동반비자로 입국하게 된다. 해당 비자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영주 자격 신청도 할 수 없다. 또한 매년 배우자의 신원보증이 필요해서 배우자가 사망하거나 혼인 관계가 끝나게 되면 강제로 고국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를 악용하는 배우자는 혼인 관계를 끝내고 상대 배우자를 귀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한국은 결혼이민자가 아닌 배우자의 체류자격은 배우자에게 종속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방문 동거로 입국한 배우자가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에 배우자 동반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약 74%는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인 경우나 파출부 등 가사 노동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고려인지원단체 조사를 보면 이들 중 절반 이상은 배우자로부터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국가인권위에 따르면 이주민 중 절반 이상이 언어적 비하와 인권 유린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춘 조선족노동자지원단체 단체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주여성은 가정폭력을 당해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면 남편의 뜻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는 구조"라며 "비자 연장의 여부가 남편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정폭력 상담소에서도 결혼이민자 자격이 아니란 이유로 상담받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고 덧붙였다.
해외의 경우 이주여성에 대한 대책 마련이 국내보다 촘촘하다. 캐나다는 가정폭력 여부를 먼저 판단해 최소 6개월 임시거주 비자를 발급해 둔다. 노동 허가와 인도주의적 이민 신청 기회도 부여된다. 미국은 가정폭력 가해자는 추방 우선 대상자로 정하고 피해자는 체류 연장 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갖췄다.
이와 관련 장영미 다문화가정협동시설협의회 회장은 "일할 권리와 폭력 피해자 권리는 법적 지위와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보장받아야 한다"면서 "결혼이주자를 포함해 동반 입국자에 대한 법적 보호장치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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