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마이골프레시피 80회]
월드 클래스 골프장 방문 기록⑤
한눈에 반한 뉴질랜드 케이프 키드내퍼스
플레이하면서 공중 부양할 수는 없는 일
내달 골프 역사 최초 亞 100대 코스 발표
韓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진입 여부 촉각

외모냐 성격이냐?
데이트 상대나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모가 우선인가 성격이 우선인가라는 질문은 귀가 닳도록 들어왔다. ‘2022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배우자 선택 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답변에 63.1%가 ‘성격’이라 답했고, ‘외모’는 2.7%에 그쳤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게 나타났는데, 실제로도 그럴까?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그에 대한 정보를 갖고 만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전자의 경우 소셜미디어나 메신저 서비스의 프로필 사진을 먼저 보게 되는 경우도 있고 소개를 주선한 사람이 만날 사람의 사진과 직업 등 그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전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때 소위 ‘쌩얼’보다는 제일 잘 나온 사진이나 심지어는 평소와 180도 다른 보정된 사진을 먼저 접하는 경우도 있다. 실물보다 못 나온 사진을 프로필에 올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잘 생기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설레는 것이 당연하다. 외모가 주는 프리미엄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지만 겉모습 속에 숨은 성격이나 개성이 빛을 발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첫인상에선 홀딱 반하지 않았는데 대화를 지속할수록 매력덩어리인 경우다. 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을 줄여서 ‘볼매’라고 부른다는데, 골프장에도 이런 ‘볼매’가 있다.
골프장에서 외모는 코스를 품고 있는 자연환경과 경관, 코스 내부의 형태(티, 페어웨이, 벙커, 그린이 주변 지형에 연결되어 조화를 이룬 모습)에 의해 정해진다. 골프장의 성격은 코스를 구성하는 홀들이 다양한 수준의 골퍼들에게 도전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가에 의해 정해진다. 그래서 골프장의 외모는 첫 만남에서도 파악할 수 있지만, 성격은 여러 번 플레이해 봐야 진정한 맛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사람을 만나는 과정과도 같다.

아시아 퍼시픽 지역의 ‘볼매’ 골프장
골프장을 평가할 때 쓰는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가끔 접한다. 골프장 평가는 수학능력시험처럼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평가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크게 작용한다. 하지만 최대한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나는 절대평가와 상대평가를 함께 사용한다. 절대평가는 골프장의 형태, 기능을 분석하는 다양한 기준을 통해 하고 상대평가는 비슷한 유형의 골프장을 교차 비교해서 우위를 가린다.
아시아 퍼시픽(아시아, 호주, 뉴질랜드를 포함) 지역에 위치한 월드 클래스 골프장 중 해안 절벽 위에 위치한 홀들을 갖춘 대표 코스는 총 4곳이 있다. 뉴질랜드의 케이프 키드내퍼스(51위), 호주의 케이프 위컴(70위), 일본의 카와나 후지(62위)와 한국의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이다. 이들 중 케이프 키드내퍼스는 아시아 퍼시픽 지역에 위치한 해안 절벽 위의 코스 중 가장 높은 순위로 평가돼 왔다. 2008년에 처음 플레이해 본 이곳을 지난 1월 중순에 다시 방문했다.
케이프 키드내퍼스는 뉴질랜드 북섬의 동남쪽 해변에 위치해 있다. 한국에서 가려면 오클랜드까지 11시간을 날아가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1시간을 가야 하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골프장은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6시간 이상이 더 걸리니 거의 하루 종일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전 세계의 골프 마니아들이 모이는 이유는 단 하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진 사진 때문이다.
드론을 이용한 항공사진은 마치 손가락을 바다로 향해 뻗은 것과 같은 독특한 지형의 해안 절벽 위에 녹색의 페어웨이와 그린이 아슬아슬하게 펼쳐진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만으로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이 골프장은 미국의 세계적인 코스 설계자인 탐 도욱이 설계해서 2004년도에 개장한 곳이다. 사진 몇 장으로 골퍼들을 유혹할 수 있는 케이프 키드내퍼스를 플레이하는 것은 마치 프로필 사진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린 사람과의 만남과도 같다. 눈부신 아름다움을 갖춘 이 골프장의 성격은 어떨까 라는 궁금증은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취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세계 각국의 코스 평론가들은 케이프 키드내퍼스의 외모에 비해 성격은 매력적이지 못하다는 평을 해왔다. 라운드를 시작하면 전에 봤던 숨 막히게 아름다운 항공 사진은 의미가 없어진다. 공중 부양을 해서 코스를 내려다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골프장의 프로필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 골퍼들의 시야에 펼쳐지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비로소 선입견이 없는 제대로 된 대화(코스를 플레이하는 과정)가 시작되는 것인데, 사진에서 경험한 짜릿한 긴장감은 실제 플레이하는 동안은 크게 느낄 수 없다.
이에 비해 호주의 케이프 위컴이나 한국의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은 바다를 건너 쳐야 하는 흥분을 여러 번 느낄 수 있게 한다. 위에 언급한 코스 모두 하나같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코스임에 틀림없으나 독특한 개성으로 즐거운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경험은 분명 우열을 가릴 수 있다.
다음 달에는 미 골프매거진 역사상 최초로 아시아 퍼시픽 지역의 100대 코스 순위가 나올 예정이고 올해 가을에는 2년마다 한 번씩 발표되는 세계 100대 코스 랭킹도 발표될 예정이라, 특히 호주, 뉴질랜드, 일본, 한국의 골프장의 경우, 기존 순위에 포함된 코스들에 대한 평가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새롭게 순위에 진입하고 순위권 밖으로 탈락할 코스는 어디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사우스케이프 오너스 클럽의 진입 여부가 궁금하다.

해외 골프 마니아가 본 한국의 클럽 문화
‘본인은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모임에서 자기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남의 입을 빌려 소개받는 경우가 아니라, 자기 입으로 말이다. 사람 간에는 흔치 않은 경우가 골프장 홍보에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과거 다수의 회원제 골프장 분양 광고에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골프장을 스스로 명문클럽이라 칭하며 세계 100대 코스에 오를 수준이라 자화자찬하는 모습을 보고 황당했던 적이 있었다. ‘명문(名門)’이란 단어는 오랜 기간 가치 있는 업적을 쌓아 온 역사를 외부에서 높게 평가하여 붙여주는 말이다. 남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 붙여주는 명예이기 때문에 자화자찬을 시작하는 순간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지난 주말 외국에서 온 골퍼들과 제주에 위치한 클럽 나인브릿지를 플레이했다. 그들 중 한 명은 골프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 중 97곳을 플레이해 본 사람이었고, 또 한 명은 영국에서 꽤 유명한 골프 전문 사이트를 7년간 운영해 온 세계적으로 유명한 골프 마니아들이었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세계 100대 코스에 오른 클럽 나인브릿지를 오게 되어 많은 기대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점심을 먹던 중 영국 친구가 내게 이런 돌발질문을 했다.
‘내가 다녀 본 세계 100대 코스 중, 클럽 곳곳에 세계 100대 코스 순위에 오른 기록을 비석이나 플래카드로 붙여 놓은 곳은 나인 브릿지가 처음인 것 같다.’
나는 당황함을 감추고 잠시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세계 100대 코스 순위 상위권에 오른 코스 중 1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해외의 명문 클럽들은 코스 랭킹을 그들의 유구한 역사 중 작은 부분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언제 변할지 모르는 그런 숫자를 전면에 내세워 광고하지 않는 것 같다.
광고하지 않는다고 해서 관심 있는 골프 마니아들이 이를 모를 리가 없다. 클럽 나인브릿지가 2005년부터 세계 100대 코스에 포함된 것은 그들에겐 무척 고무적인 사건이었고 이를 방문객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바람은 나름 문화적인 차이에서 온 클럽의 선택일 것이다.’
이렇게 답변하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22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명문클럽 중 하나인 클럽 나인브릿지는 월드클럽챔피언십(WCC), 더CJ컵, 더브릿지스컵 등 다양한 국제 대회를 개최하며 나름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순위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위상은 유한하다. 이제 한국에도 변화하는 숫자가 아닌 불변의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선도하는 골프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골프장이 한두 개 정도는 생길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오상준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대표
한국인 최초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대학에서 골프코스 설계 부문 석사 및 컬럼비아대 건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송도 잭니클라우스골프클럽 조성공사 등에 참여했다.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CJ컵 국제대회 운영을 담당했으며, 미국 GOLF매거진 세계100대코스 선정위원, 싱가폴 아시아골프산업연맹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골프에세이 '골프로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면'을 출간했고, 유튜브 '마이 골프 레시피'와 강연 등을 통해 다양한 골프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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