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즉시 등록, 헌법상 기본권"

가족관계등록법 46조 2항은 혼외자 출생신고 의무를 생모에게만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족관계등록법 46조 2항은 혼외자 출생신고 의무를 생모에게만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미혼 남성이 기혼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을 경우 생모만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한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현행법에서는 불륜으로 인한 출생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혼한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법적 남편의 친생자로 본다. 법적 남편이 아닌 생부는 아이의 출생 신고를 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신생아의 출생 신고가 지연됨으로써 아동의 기본권이 침해된다는 게 헌재의 판단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가족관계의 등록에 관한 법률 제46조 제2항 등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 청구인 A씨는 수년간 함께 살아 온 여성과의 사이에서 두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생모가 다른 남성과의 혼인 관계를 해결하지 못해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다 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다. A씨와 비슷한 사정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빠의 꿈’ 김지환 대표를 통해 모여 이번 헌법소원을 냈다. 

가족관계등록법 46조 2항은 혼외자 출생신고 의무를 생모에게만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57조 1·2항은 생모와 불륜관계인 생부가 혼외자의 출생신고를 할 수는 있지만, 이는 생모가 소재 불명이거나 특정할 수 없는 경우 등에 한정된다고 규정한다. 민법 844조 1항에 따르면 혼인 중인 여성이 낳은 자녀는 일단 남편의 친생자로 보기 때문이다. 

헌재는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될 권리’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자 자유권·사회권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독자적 기본권이며 가족관계등록법이 혼외 관계로 출생한 아이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될 권리’는 헌법에 쓰여 있진 않지만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10조)·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34조 1항)·가족생활의 보장(36조 1항) 등을 기초로 도출되는 기본권이다.

헌재는 “출생등록은 아동이 부모와 가족 동의 보호로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마련하게 한다”며 “태어난 즉시 출생 등록될 권리는 출생 후 아동이 보호받을 수 있을 최대한 빠른 시점에 아동의 출생과 관련된 기본적인 정보를 국가가 관리할 수 있도록 등록할 권리”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등록 없이 방치돼야 했던 ‘혼인외 출생자’(혼외자)의 출생신고 제약을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모(母)가 신고한다는 것은 혼인 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한 행위를 하였다는 점을 자백하는 것이고, 남편이 해당 자녀의 출생 경위를 알고도 출생신고를 하는 것은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해당 조항을 즉각 무효로 만들었을 때 초래될 혼선을 막고 국회가 대체 입법을 할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법의 형식을 유지하는 결정이다. 헌재는 늦어도 2025년 5월 31일까지 이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헌재는 가족관계등록법이 생부의 권리까지 침해한 것은 아니라며 생부들의 청구는 기각했다. 헌재는 “남편이 아닌 남자인 생부에게 자신의 혼인 외 자녀에 대해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지 아니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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