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희생자 인권 없는 주관적 판단 난무"

지난달 10월 31일, 이태원역 인근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내용이 담긴 쪽지가 역사에 붙어 있다. /김현우 기자
지난달 10월 31일, 이태원역 인근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내용이 담긴 쪽지가 역사에 붙어 있다. /김현우 기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이름'이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람이나 사물, 단체, 현상 등에 붙여서 부르는 기호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사물은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라고 정의돼 있다.

이름이 존재가치와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까지 천민이나 하층 계급 그리고 상당수 여성에게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이들에게 이름이 없었다는 사실은 이들의 사회적 존재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들의 인권을 처절하게 유린했었다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름은 상당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본인의 동의 없이 이름을 사용하면 이른바 명의도용이라는 죄명으로 사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고인(故人)의 경우 유가족이 고인을 법적으로 대신하기 때문에 유가족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고인의 이름을 공개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물론 형법 차원의 문제는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적 권리와 존엄성의 훼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민법적 문제 제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근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이름 공개 즉 명단 공개 문제가 정치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고인(故人)들의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당에서도 나왔다. 유가족 동의를 전제로 했지만, 민주당 당료가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도 언급됐었고 이재명 대표도 유가족의 동의를 전제로 명단 공개를 주장한 바 있다.

이태원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는 시민 /김현우 기자
이태원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는 시민 /김현우 기자

이런 와중에 진보 매체 두 곳이 유가족의 동의 없이 명단을 발표해 버린 것이다. 해당 매체들은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했다면서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희생자들의 영정과 사연, 기타 심경을 전하고 싶은 유족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최대한 반영토록 하겠다"라고 언급했다. 결국 해당 언급은 유가족 동의 없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고, 공개 목적은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명단 공개 매체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희생자·유가족 중심주의보다 애도자·추모자 중심주의가 우선시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명단 공개의 목적이 고인들의 권리와 유가족들의 권리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것인데 아무리 공개 목적이 선하고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가치와 권리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희생자·유가족 중심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애초부터 동의 없는 명단 공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명단을 공개했어도 명단 공개에 동의하지 않는 가족들이 해당 사이트에 회원 가입을 하고 자신이 유가족임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제출해 명단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 상황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를 고발한 이종배 서울시의원.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를 고발한 이종배 서울시의원. /연합뉴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이런 명단 삭제 요구 절차를 두고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라고 언급했다. 이렇듯 명단 공개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하니 민주당 관계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또한 "(명단 공개)분위기를 조장한 건 민주당은 아니다"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먼저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민주당 입장은 매체가 명단 공개를 한 것은 문제지만 정부가 하면 괜찮다는 것인지 의문을 자아낸다. 문제의 핵심은 명단 공개의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명단 공개에 대한 유가족들의 동의 여부다.

민주당이 이런 식의 주장을 하고 있으니 여론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11월 3주 차 한국 갤럽의 정례 여론조사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9.8%,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과를 보면, 참사 직후인 11월 1주 차부터 3주 차까지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변하지 않고 있고 대통령 지지율 역시 1%p. 정도의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만일 민주당의 참사에 대한 접근 방식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면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도와 진상 규명이라는 명분으로 고인들의 정당한 권리와 유가족들의 인권을 훼손한다면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뿐이다. 참사의 핵심 문제가 흐려질 뿐이라는 것이다. 참사 대처에는 현명함이 필요한데 지금은 희생자와 유가족의 인권이 생략된 주관적 판단만이 난무하고 있으니 난감할 뿐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인제공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