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법안 원리는 ‘이익 공유’
해외사례 비교해도 이례적 발의
“개미도 시장서 자유로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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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고객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라고 답했다. 기업은 투자를 통해 국가 경제에 활력을 만들고 일자리도 창출한다. 그런데 기업에 투자한 주주는 왜 기업과 갈등할까? 한국 사회가 기업을 국민 모두의 것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내비게이션은 ‘공공’이라는 최고 선(善)을 향해 쾌속 질주해 왔다. 정치는 사회 구성원의 사고방식과 윤리 틀마저 그렇게 빚고 있다. 엄한 ‘공공’ 잣대에 따라 대기업은 너와 나, 우리 모두의 삼성, LG, SK가 됐다. 최대 이익과 최소 이익, 혹은 손실의 선택지가 있다면 셋 중 주주의 재산에 손실이 없는 쪽을 선택해야 여론의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피터 드러커는 이 같은 상황을 보고 뭐라 이야기할까?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민간주도 성장을 골자로 한 새 경제정책 방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실적보다 뒤떨어진 정치경제 체제"라며 법제 손질을 예고한 바 있다. 여성경제신문은 <모자회사 동시상장>으로 촉발된 지배구조 논쟁을 되짚어보고 기업법제 선진화 방향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주] ① LG엔솔 상장에 성난 개미…정치권 '달래기 경주' |

정치권이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발의한 법안들은 결국 ‘이익 공유’에 수렴한다. ‘알짜’ 사업이 모회사에서 분리, 상장 후 주가가 떨어졌으니, 이제는 자회사가 된 ‘알짜’에 대한 이익을 공유하라는 데 한목소리다. 이를테면 LG화학 주주에게 분할 전 배터리사업부였던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지급하라는 식이다.
그러나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회사가 ‘알짜’ 사업에 대한 물적분할 혹은 상장 사실을 투자자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을 경우(속였을 경우). 둘째, 알린 시점이 투자자가 큰 손실 없이 자유롭게 매수 혹은 매도하기에 충분했는지 여부다. LG화학 관계자는 본지에 “당시 비상장을 전제로 물적분할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 “분사 예고 시점과 결의, 상장까지 (매도할) 시간은 있었고 수익을 올리고 매도할 기회도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모회사가 특정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시킨 후 상장까지 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년(최대 3년)이었다. [그림]에서처럼 LG화학이 배터리사업부를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 사실을 알린 후 상장하는 데까지는 14개월이 걸렸다. 분사결정 공시부터 상장까지 헤아려보자면 약 15개월이다. 이처럼 ‘모회사 가치 훼손이 염려’되는 LG화학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은 충분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투자자들은 물적분할 소식을 접한 이후와 실제 분할 이후에도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다. LG화학의 최고가 돌파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모자상장의 변]① LG엔솔 상장에 성난 개미···정치권 '달래기 경주') 배터리사업부의 물적분할 이후(2020년 12월 1일)다. 고점 이후 주가는 출렁거리다가 3주 후 104만원대까지 올랐고 이후 몇 번의 반등을 반복했다.
한편 한국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식투자자 평균 주식 보유기간은 코스피 4.9개월, 코스닥 1.1개월로(2020년 8월 기준) 나타났다. 전년도 코스피 평균 보유기간 16.1개월에 비해 11.2개월 줄면서 단기투자 성향이 강해졌다.
이처럼 소액주주의 코스피 보유기간은 자회사 분할 결의 후 상장까지의 시간에 훨씬 못 미친다. 이런 이유로 모자회사 동시상장은 소액‧단기 투자자보다는 오히려 장기투자자나 대주주에게 민감한 이슈라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프랑스‧독일에는 없는 주주보호법
이런 가운데 정치권이 내세우고 있는 법안은 선진 입법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내용들이다. 먼저 물적분할 반대주주에게 지급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의 경우 해외사례를 볼 때 일본을 제외하고는 이례적이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주식매수청구권은 미국에서 유래한 제도로서, 특별결의사항에 대해 반대의견을 갖는 주주가 회사를 상대로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정당한 가격에 매수해 줄 것을 청구하는 권리다. 비상장사 간 합병의 경우 해당 청구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델라웨어주를 포함한 대부분의 주(2020년 기준 38개 주)에서는 상장주식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주주는 언제든지 시장을 통해 주식을 매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사 분할제도의 기원이자 한국 상법상 분할제도의 모법인 프랑스에서는 물론 독일에서도 물적분할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해당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모기업 총자산의 20% 이하의 분할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제기되고 있는 ‘자회사 공모주 우선배정’은 배정 대상과 배정 비율 등을 사전 설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자회사로 분리된 후 상장까지는 최대 3년까지도 소요되는데, 언제부터 언제까지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배정할지, 또 얼마나 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설정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상법상 회사 주주에게 부여하는 것으로 규정된 ‘신주인수권’의 경우에도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에 어떤 법률적 관련성도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아울러 여야를 막론하고 모자회사 동시상장을 제도적으로 금지하자는 주장은 선진 입법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반대로 모자회사 동시상장 사례는 2019년 기준 미국 28개, 프랑스 18개, 독일 17개, 일본 238개나 되었다. 또 상장을 통한 신사업 부문(자회사)의 자금조달을 금지하는 것이 일자리 창출을 비롯해 국가 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자율권 클수록 기업 성장…규제는 모두에 독”
학계는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정책 시행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소액투자자도 매수‧매도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상장회사의 경우 시장을 통해 반대주주가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식을 쉽게 되팔 수 있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또 자회사 공모주를 우선적으로 배정해 주겠다는 부분은 근로자에게 배정하는 우리사주가 이와 같은 맥락이다. 회사의 근로자도 아닌 주주에게 우리사주 배정하듯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주주보호가 미흡한 경우 물적분할 자회사의 상장 제한 방안에 대해서는 “외국 시장에도 상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 시대에 상장 막는 제도는 수용하기 어렵다”면서 “기업이 전략적인 성장을 위해 행하는 건데 반기업적인 정책 성격이 엿보인다”라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사전적 규제가 기업의 ‘파이’를 키우는 데 장애가 된다는 시각도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과 투자자 모두의 수익률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기업 생태계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 추가적으로 생기는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이 되어야 한다”면서 “기업에 자율권을 줘, 기대 심리로 인한 주가 상승이 아닌, 실제 실적과 파이가 커지면 투자자의 수익률도 올라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물적분할이나 인적분할, M&A 등 본질적으로 모두 같은 것인데, 사전적인 규제보다는 사후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페널티를 부여하는 방향이 옳다고 본다”면서 “다만 기업의 자발적인 상장폐지의 경우에는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