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의 뜻밖의 반 고흐]
반 고흐의 색채 언어를 확장한 그림
색상 부조화 피하려 색상 수를 줄여
사실적 색상·형태 사라진 화풍 완성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주아브 (The Zouave), 1888 캔버스에 유채, 65.8 cm x 55.7 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 주아브 (The Zouave), 1888 캔버스에 유채, 65.8 cm x 55.7 cm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이 그림은 지독하게 추해.’

‘조잡해.’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작품 '주아브(Zouave)'에 대해 내린 혹평이었다. 주아브는 군인의 초상화다. 고흐는 아를에 머무르는 동안 5점의 주아브 초상화를 그렸다. 왜 그는 이 그림에 대해 친구 에밀 베르나르와 동생 테오에게 이렇게 편지를 했을까?

1888년 6월에 고흐는 폭우로 추수하는 그림을 멈추게 된다. 그 뒤 동생에게 ‘운 좋게도 최근 모델을 구했다’, ‘풍경보다 인물에 더 관심이 간다’고 편지한다. ‘드디어 작은 얼굴에 황소 목, 호랑이 눈을 가진 주아브라는 모델이 생겼어’라고 편지한 지 며칠 뒤에 실패했다고 불만족스러워한다.

독특한 의상을 입은 주아브의 역사는 프랑스가 1830년대에 벌인 북아프리카 알제리 정복에서 시작된다. 정복 중에 알제리 토착민 베르베르인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자 프랑스는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현지 베르베르인을 소집했다. 이때 소집된 베르베르인들이 주와와(Zuwawa)라는 부족이었기에 주아브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반 고흐는 ‘제복 차림의 파란색 허리띠와 칙칙한 주황색-빨간색 테두리를 두르고 가슴에 레몬색 별 두 개를 달았는데, 이는 흔히 볼 수 있는 파란색이고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어. 빨간 모자를 쓴 검게 그을린 고양이 머리를 녹색으로 칠한 문과 주황색 벽돌 앞에 그렸다’고 편지한다.

반 고흐는 조잡한 색상의 부조화를 피하기 위해, 색상의 수를 줄이기 시작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간다. 그 결과 아를 시대에 그려진 초상화의 전형이 나오게 된다. 거칠고 복잡한 색상의 부조화를 피하기 위해, 사실적인 색상과 형태는 사라졌다. 그림의 배경은 단순하고, 세부사항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밀리에 중위의 초상, 1888 캔버스에 유채, 60.3 x 49.5 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밀리에 중위의 초상, 1888 캔버스에 유채, 60.3 x 49.5 cm 크뢸러 뮐러 미술관

이런 연구를 거쳐 또 다른 주아브 모델이었던 밀리에 중위의 초상화를 그린다. 밀리에는 병이 나서 일시적으로 아를에 주둔했다. 반 고흐는 이 그림에서 자신이 원했던 조화로운 색상의 조합을 찾는다. 배경에는 현실에 없는 주아브 연대 문장인 초승달과 별이 있다. 반 고흐는 형상과 색상에도 현실의 재현을 추구하지 않았다. 인물의 표현을 잘 드러내기 위해 옷과 배경의 색과 형태를 자유롭게 그려나갔다.

표현해내기 어려운 모델을 그리는 바람에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오히려 이 부조화를 극복해내기 위해 끊임 없이 연구한 결과 사실적 색과 형태로부터 자유로워진 반 고흐만의 독특한 화풍을 완성할 수 있었던 셈이다.

반 고흐는 ‘정말 어려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길을 닦을 수도 있어’라고 다짐한다. ‘저속하고 심지어 저것과 같은 화려한 초상화 작업’을 통해 그가 바라던 미래의 길을 닦았다. 이후 추상화와 표현주의 등 많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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