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안정 요인은? 암호화폐 이별한 그래픽 카드
3월 이베이 가격 추이 '안정세'···지난해 대비 절반
반가운 소비자···"1년이면 원하는 가격 구매할 듯"
그래픽 카드 업계 "마진 안 좋아 섣부른 호응 일러"

코인 광풍 속에서 고공행진을 하던 그래픽 카드(GPU) 값이 하락세를 보이자 기대하는 소비자와 달리 업계는 판단이 조심스럽다. 여성경제신문이 그래픽카드 가격의 과거와 현재를 비롯해 이들의 생각차를 짚어봤다.
2021년 한 해 동안 그래픽카드 가격은 적정가 2~3배를 웃돌 정도로 비쌌다. 지난해 12월까지 고가 기조가 이어지면서 PC게임 애호가로선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픽카드 값이 올랐던 이유에는 수요를 따르지 못한 공급과 암호화폐 채굴 이슈를 들 수 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게임 유저가 많아지면서 그래픽 카드 수요는 급증했으나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했다.
특히 웨이퍼 부족이 공급 부족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는 반도체 제작에 쓰이는 작은 원판으로 3D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해 비메모리 반도체까지 전 방위에 쓰인다. 전세계적으로 반도체 생산량이 늘자 가장 먼저 웨이퍼 공급 병목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삼성전자 파운드리 7나노 공정에서 제작되는 엔비디아 그래픽카드 칩 생산 속도는 수요에 못 미쳤다.
일례로 2020년 9월 경 출시돼 가격 상승 중심에 섰던 RTX 30 시리즈는 공급 차질로 초기 수급이 쉽지 않았다. 이에 이전 칩보다 전력 효율을 끌어올려 성능을 2배까지 진전시켰음에도 실질 이용자에게 닿지 못하는 부작용이 지속됐다.
엔비디아 측은 2020년 11월 컨퍼런스 콜을 통해 “30 시리즈 기판과 부품 제작에 필요한 웨이퍼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우리는 공급에 관한 문제를 계속 해결하려 하지만 전체 게임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현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더리움 채굴, 공급 차질 GPU 시장 '기름'
4월 기준 카드 1장 채굴 수익, 40만원 육박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암호화폐 시세 상승과 채굴 이슈는 그래픽카드 생태계에 기름을 부었다. 2020년 60만원을 웃돌던 이더리움 시세는 2021년 1월 비트코인에 이어 상승을 거듭했다. 그 결과 2021년 5월 경 500만원을 넘어섰다.
그래픽카드는 채굴 필수 장비로 쓰여 암호화폐 이슈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이더리움 채굴엔 일반 GPU가 사용되는데 시세가 오르자 채굴 수익성도 덩달아 올랐다. 당시 4기가 이상 메모리만 탑재됐다면 채굴이 가능해 그래픽카드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일례로 채굴 붐이 일었던 2021년 4월 한 네티즌에 따르면 RTX 3080 그래픽카드를 활용해 24시간 동안 채굴한 이더리움 양이 0.133ETH였다. 당시 시세 환산 시 약 40만원 정도 수익 창출이다. 전기세 등 유지비 약 10만원을 감안해도 하루에 30만원을 벌 수 있었다. 같은 채굴량을 가정했을 때 2020년 시세 기준 하루 약 7만9000원 정도였던 수익이 시세 급등으로 약 3배가량 오른 셈이다.
채굴 작별, GPU 가격 하락 불러
엔비디아, 과감한 칩 가격 인하
그러던 중 그래픽카드 가격이 하락세를 보였다. 이더리움 시세 하락과 함께 제조사도 새로운 가격 정책을 펴면서다.
가격 하락 요인으론 △이더리움 채굴 방식 변화 △엔비디아 칩셋가격 인하 정책이 손꼽힌다.
이더리움은 작업 증명(POW) 방식의 채굴과 작별한다. 이더리움 재단은 올 하반기부터 작업증명 방식에서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전환을 예고했다. 이로써 그래픽카드를 활용해 개별적으로 채굴하던 방식은 효력을 잃는다.
지분증명 방식에서 이더리움 소유자는 스테이킹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암호화폐 이용자가 블록체인 생태계에 기여하는 지분에 비례해 보상을 받는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엔비디아 가격 정책도 한몫했다. 지난 16일 IT매체 WCCF테크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그래픽카드 제조사 및 노트북 제작사를 겨냥해 그래픽 칩셋 가격을 내렸다.
실제 그래픽카드 제조사 ASUS는 NVIDIA와 협약을 맺고 주말간 인하된 가격으로 판매를 시작한다. 고성능 모델인 RTX 3080 10GB의 경우 119만원, 보급기인 RTX 3060은 58만원까지 내린다. 양 모델 모두 23일 기준 144만원·76만원에 판매되고 있어 가격 인하 폭이 10만원~20만원 선이다.
그래픽카드, 적정가 최대 19% 근접
국내 반영도 빠르게···두 주 새 급락

IT분석 매체 ‘HardwareUnboxed(하드웨어 언박스드)’가 발표한 2022년 3월 이베이 그래픽 카드 가격 추이에 따르면 기종별 하락세가 나타난다. 현재 그래픽카드 가격은 RTX 3080Ti 기종에서 19%까지 적정가에 가까워졌다. 중저가 칩셋까지 포함할 경우 적정가까지 다가선 평균치는 50%다.
각 모델을 살펴봐도 가격 정점을 찍었던 2021년 5월 대비 안정세다. RTX 3090은 3500달러(한화 약 425만원) 선에서 2000달러(한화 약 243만원) 선까지 가격이 안정됐으며 중급기로 불리는 RTX 3060도 1000달러(한화 약 121만원) 선에서 530달러(한화 약 63만원)까지 내렸다. 각 모델 적정 가격은 1500달러(한화 약 182만원), 330달러(한화 약 40만원)다.

국내에서도 수요가 많은 기종부터 적정가를 되찾고 있다. 해외 이슈가 시장 정착까지 걸리는 시간을 감안해도 빠른 변화라고 분석된다.
23일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를 보면 지난 6월 출시돼 국내 수요가 많은 RTX 3080Ti 모델은 팬 개수나 제조사별 인지도 등 차이를 감안해도 150만원~170만원 사이로 형성되고 있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시세는 180만원 선에 형성됐다.
반가운 소비자, "이제 PC 바꾸나"
업계 "GPU 마진 그닥···길게 봐야"

2022년 1월부터 지속된 하락세에 소비층은 희망을 보고 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RTX계열 그래픽카드 가격하락 소식이 올라왔다. 이를 본 댓글에선 “이제 2020년 가격 거의 복귀한 것 같다” “한두 달만 버티면 컴퓨터 장만할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거품 빠지나” 등 반응이다.
특히 컴퓨터 구매를 계획했던 소비자는 가격 하락세가 반갑다. 그래픽카드 교체를 계획하는 20대 남성 A씨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작년만 해도 그래픽카드 가격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 컴퓨터 구매를 포기했었다”며 “이제는 원하는 가격까지 1년~2년 정도 본다. 서둘러 산다 해도 10만원만 더 쓰면 원하는 가격에 맞출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 기대와 상반되게 업계는 가격 하락이 썩 반갑진 않다. 한국 부품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용산 선인상가에서 컴퓨터 부품을 판매하는 30대 업자는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요즘 전자상가 침체가 심한데 특히 그래픽카드는 마진이 좋지 않은 품목에 속한다”며 “가격이 떨어지면 좋을 거라 생각하지만 원하는 만큼 팔리지 않아 재고관리도 어려운데다 그래픽카드에는 원자재나 물류 비용이 많이 껴 인터넷 쇼핑몰 가격으로 팔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이어 “요즘은 러시아 제재로 판로가 하나 없어져 일시적으로 국내 물량이 많아지긴 했다”면서도 “러시아 내 웨이퍼 원료가 많아 장기적으론 혼란 조짐이 있어 그래픽카드로 남는 장사를 하긴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래픽 카드 제조사에서도 입장은 비슷했다. 조텍 코리아 서만석 부장은 여성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 시장은 글로벌 제조사에서도 칩셋을 많이 공급할 정도로 비싼 그래픽카드에 수요가 제법 있는 편”이라며 “그래픽 카드 가격이 더 떨어져야 맞긴 한데 저희 같은 제조사에선 아직까지 원가 미만이라 가격 맞추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늘어날 수요에 대한 기대가 있다”면서도 “사실 분들은 다 사셨다보니 더 기다리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어 아직까진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