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1년 후 팬데믹 극복 저서 출간
2020년 3월 시작된 코로나와의 전쟁
공동체 복원, 새로운 균형 해법 담아

"뒤돌아보니 작년(2020년) 3월이 제일 어려웠다."
문재인 정부 하반기 재정·통화 정책을 이끌어온 김용범 전 기재획재정부 제1차관이 34년의 공직 생활을 떠나면서 남겼던 말이다.
더 정확히는 2020년 3월 19일이 김 전 차관에겐 이날이 가장 긴 하루였다. 국내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2000명 돌파를 앞둔 당일 서울 외환시장이 개장했는데도 달러를 팔겠다는 주문이 1분간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이었다.
매도 물량이 나오지 않자 원·달러 환율은 당장 요동치면서 장중 1296원까지 올랐다. 하루 만에 50원가량 오른 수준으로, 금융위기 여진이 있던 2009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하지만 다행히 이날 밤 600억 달러의 한·미 통화스와프가 전격 체결되면서 하락 안정을 찾았다.
지옥같은 경험 때문인지 김 차관은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이 V자 회복을 이야기할 때도 나홀로 신중론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또 퇴임 이후에도 팬데믹 위기와 지속가능간 경제를 연구한 끝에 『격변과 균형』(도서출판 창비)을 세상에 내놨다.

경제가 순환하려면 '생산'과 '소비'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데 코로나는 두 요소를 모두 마비시켜 버렸다. 김 차관은 "어지간한 위기는 전부 경험한 내 자신에게도 공포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특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서플라이체인(supply-chain)이 무너진 데서 코로나 위기는 더욱 심화됐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중국에 반도체, 자동차, 기계 등 생산 공장을 둬왔는데 생산의 연쇄 과정이 무너져 버린 것이었다.
『격변과 균형』에는 팬데믹의 전개 과정이 김 차관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정리돼 있다. 그는 "2008년 위기 이후 유행했던 '뉴 노멀'이라는 개념조차 무색해질 정도였다"며 "세계 금융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불안전성을 안게 된 복합위기였다"고 진단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에 따른 저물가와 실물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이끌던 김 차관은 '경제 방역'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한국형 뉴딜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다.
제목이 『격변과 균형』인 것처럼 펜데믹이 불러온 경제환경의 대격변 속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고민도 담겼다. 확장 재정에 대한 우려는 김 차관 역시 어느 경제 전문가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하려면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위협하는 요소에 대한 구조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격변과 균형』 2부에서는 새로운 균형을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양극화 문제로 노인 빈곤을 꼽은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시적 노령연금을 월 20만원 추가로 지급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기재부 차관에 앞서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그는 디지털 자산 시장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데도 제도가 받쳐주지 못하는 괴리 현상에 대해서도 다뤘다. 그는 특히 암호화폐 시장을 괴리 현상이 가장 심각한 분야로 꼽으며 "플랫폼 규율체계를 선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7~2018년 암호화폐거래소를 전면 폐쇄한 계획을 번복한 것에 대한 반성도 담겼다. 페이스북 등을 통해 국민과의 소통의 폭을 넓혀온 김 전 차관이 우여곡절 끝에 실명확인 시스템을 선택하는 에피소드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킨다.
『격변과 균형』 에필로그에서 김 전 차관은 코로나19 감염병이 수습된 후에도 여러 분야에서 후유증을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팬데믹 강타 전후 경제환경이 너무나도 달라져서 과거의 방식만으론 암초에 걸려 좌초할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다.
다만 그는 "뒤집어 생각해보면 위험이 커진 동시에 누군가에겐 새로운 기회의 창이 활짝 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며 "관건은 위기와 변화를 제대로 분석하고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복원력을 중시하는 새로운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