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 노후 보장하는 복지제도
정년 연장이 ‘세대 간 일자리 전쟁’?
젊은 세대 부양 부담 경감시켜
60세 이상 숙련 근로자 합리적 고용, 기업도 이익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수원시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구직자들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제10회 수원시 노인일자리 채용한마당'에서 구직자들이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년 만 65세 연장’은 우리 국민의 삶에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임금 근로자 2099만 명과 이들의 부양가족은 본인이나 가장(家長)의 정년 연장을 자기 운명에 매우 큰 영향을 줄 사안으로 여긴다.

한국은 2021년 현재 전체 인구의 16.7%가 64세 이상인 ‘고령사회’다. 5년 뒤엔 일본처럼 ‘초고령사회’가 된다. 상당수 국민은 국민연금 같은 것 외엔 뾰족한 노후대책이 없다. 여기에다 일자리 부족은 만성적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대선에서 잠잠… 정책 실종?

‘정년 65세 연장’은 고령화와 일자리 문제의 해법으로 관심을 받아왔다.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만한 이 중차대한 문제가 이번 대선에서 이슈화되지 않는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다. 그러니 ‘정책 실종’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모른다. 기본적으로 필자는 ‘몇몇 반론에도 불구하고 정년 65세 연장이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본질적 이유는 이 나라의 주권자인 국민이 지금보다 더 오래 일하기를 원하고 있고, 그렇게 일할 만한 체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0.4%는 65세 정년 연장에 찬성했다(반대 39.5%).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9년 2월 사람이 신체를 무리 없이 사용해 일할 수 있는 한계 나이인 ‘육체노동의 경험칙상 가동 연한’을 만 60세에서 만 65세로 상향했다.

“육체노동 가동 연한 65세”

최근 수십 년 동안의 식생활 및 의료 개선으로 한국인들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게 됐다. 현재의 노장 세대 중엔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도 많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는 많은 50대 직장인은 “할 수만 있다면 65세까지 현업에서 뛰고 싶다. 나는 그럴 만큼 아주 건강하다”라고 말한다.

2018년 9월 1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60+ 시니어일자리한마당'에서 구직을 원하는 노인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부산시가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니어에게 취업정보와 취업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한 이 행사에는 115개사 200개 부스 규모로 참가해 장·노년 구직자 1238명을 채용했다. /연합뉴스
2018년 9월 19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60+ 시니어일자리한마당'에서 구직을 원하는 노인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부산시가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시니어에게 취업정보와 취업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한 이 행사에는 115개사 200개 부스 규모로 참가해 장·노년 구직자 1238명을 채용했다. /연합뉴스

정년 연장은 그 자체로 노후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 복지제도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한 글에서 “노후의 생계유지를 위해선 정년 연장이 필히 요구된다”라고 설명한다.

물론,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고용 연장을 검토할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가 청와대가 “바로 결정 못 한다”라고 진화에 나설 정도였다.

20대 취업준비생들은 “정년이 늘어나면 가뜩이나 부족한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 주장한다. 그래서 정년 연장은 ‘세대 간 일자리 전쟁’ 양상을 띠기도 한다.

청년 일자리 감소?

그러나 “정년 연장이 청년층 일자리를 잠식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보여주는 실증적 결과도 있다. 일본 후생성에 따르면, 60세에 근로자를 퇴직시켜 1년 단위로 65세까지 계약직으로 재고용한 일본 회사들은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지 않았다.

이런 사례를 우리 실정에 적용해 보면, 근로자가 50대 후반엔 임금 피크제를 적용받다가 60세에 퇴직한 후 1년 단위 계약으로 65세까지 일하는 절충적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60세 이상 숙련된 근로자를 합리적 인건비로 고용하는 것은 기업에도 비용 대비 큰 편익을 줄 수 있다.

나이 든 세대가 더 오래 일하면, 이 고령자들을 부양해야 할 젊은 세대의 부담은 줄어든다. 국민연금 고갈 같은 복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나온다. 인구학자 토레스 길은 인류가 노-장 세대 간 유기적 공존의 지혜를 얼마든지 모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9일 오후 서울 양천구청에서 열린 '제1회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노인일자리 참여자가 구직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9일 오후 서울 양천구청에서 열린 '제1회 노인일자리 박람회'에서 노인일자리 참여자가 구직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65세 정년 연장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정규직 근로자에게 혜택이 집중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60대 비정규직 근로자의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도 있다. 지금은 60세 정년제에 연동돼 60대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존재 자체가 드물다. 다만, 공무원과 공기업의 정년 연장은 국민 부담으로 연결되므로 민간의 정년 연장이 우선 추진돼야 한다고 본다.

현대차와 테슬라

필자의 판단으로, 65세 정년 연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청년 세대의 반발’이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노사 간 갈등’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는 임단협에서 65세 정년 연장을 요구했지만, 회사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동차산업은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인력과 부품이 적게 드는 전기차 중심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자동차 회사는 전기차 시대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생산직 근로자 인건비를 줄여야 한다.

전기차 전문 제조회사인 ‘테슬라’는 지금도 한국 자동차 회사 대비 인건비 부담이 현저히 낮다. 테슬라의 영업이익률이 높고 주가가 고공 행진하는 이유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엄격한 노동법과 강성 노조 문화상 정규직을 줄이기 힘들다. 결국, 국내 자동차 회사는 60세 정년퇴직에 의한 자연적 감소로 근로자를 감축할 수밖에 없다. 이런 회사에 65세 정년 연장은 ‘회사 존립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엔 비슷한 처지에 놓인 회사가 적지 않다. 법으로 일률적으로 65세 정년 연장을 강제하면 국가 경쟁력이 현저하게 하락할지 모른다.

‘65세 연장’ 찬·반 논쟁 필요  

결국, 많은 국민이 원하는 정년 65세 연장을 시행하려면 이 노사 갈등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고 정년 연장을 무작정 뒤로 미뤄두기만 해서도 안 된다. 막막하게 노후를 맞게 되는 사람들에겐 스스로 일해 개척할 활로가 필요하다. 이제부터 정년 65세 연장 찬·반 논쟁이 사회적으로 활성화돼야 한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허만섭 국민대 교양학부(언론학) 교수

신동아 등에서 20여 년간 기자로 근무했다. 고려대 대학원 언론학과 박사. 현재 국민대 교양학부 언론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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