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한국노인복지중앙회 치매 환자 돌봄 수기]
치매 환자 아들의 결혼식 준비 도운 노인 요양원 직원 7명
10여년간 함께한 어르신을 위한 결혼식 참석 프로젝트

강원도 태백 안식의 집(노인 요양원) 조영희 사무국장님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어르신이 안식의 집에 오신 날은 2007년 8월 31일입니다. 같이 온 공무원이 말하길, 무릎에 염증이 생겼답니다. 그런데 병원엔 안가시고 민간요법으로 치료한다며 된장을 바르고 뜸을 떴답니다. 염증이 심해져 무릎이 퉁퉁 붓더니 걷지도 못하신답니다. 동네 분들이 나서서야 겨우 병원에 가실 수 있었다더군요.
입원한 뒤로 어르신은 이상한 행동을 보이셨답니다. 병실 바닥에다 오줌을 싸더랍니다. 병원에서도 더는 입원하실 수 없다며 어르신을 모시고 가랬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데 보호자는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시설, 안식의 집으로 오셨습니다.

요양원 생활을 하는 동안 좀처럼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시더군요. 몇 년뒤 다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르신이 많이 위중하시다고, 며칠을 넘길 수가 없을 것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우린 직원들은 어르신 아들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렇게 만난 아들은 며칠동안 의식이 없는 어르신을 보고 와서 떨면서 물었습니다.
“국장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해요?”
눈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더군요. 어르신은 그 이후로도 2번이나 죽음의 문턱을 오갔습니다. 다행히 위기를 넘기고 시설로 돌아오셨죠. 그러곤 기적처럼 천천히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아드님도 가끔 시설에 와서 어머니를 면회했죠. 어느새 모자 관계도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어느덧 2017년이 되었습니다. 그해 여름 어르신 아들이 예쁜 아가씨와 함께 시설을 찾아왔습니다. 9월 즈음에 결혼한다는 소식을 어르신께 이야기하고 갔습니다. 어르신은 시설 안에서 상견례를 하셨죠. 그런데 아들이 가자마자 어르신은 한숨을 내쉬더군요. 결혼식에 가고 싶으셨던 겁니다.
"결혼식 참석 프로젝트!"
저와 직원들은 자원봉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봉사하기로 한 직원은 7명, 그날부터 어르신 딸이 되기로 하고 결혼식을 하나씩 준비했습니다. 결혼식 한 달 전, 양장점에서 카달로그를 가져와 어르신 취향에 맞는 정장을 샀습니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도 파마하고, 결혼식 일주일 전부터는 마사지도 시켜드렸죠. 그야말로 남동생 결혼식처럼 준비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새벽부터 어르신을 휠체어로 모셔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했습니다. 직원들이 공들여 화장도 해드렸죠. 솜씨가 좋았는지, 어르신은 단아한 시어머니의 모습으로 변신하셨죠.
결혼식이 치러질 성당에 도착했습니다. 마중 나온 아들은 어르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더군요.
“우리 엄마 맞아? 원래 이렇게 예뻤었나? 다른 사람 같아!”
어르신은 미리 준비한 한복으로 갈아입으시고 혼주로서 역할을 모두 잘 해내셨습니다.
예식이 끝나고, 가족사진을 찍는 시간. 저희는 짐짓 한두 발짝 떨어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사진사님이 저희를 보면서 불렀습니다.
“거기 가족들 빨리 사진 찍으러 오셔요!”
어르신도 저희를 향해 손짓하셨습니다.
“네?”
잠시 놀랐지만 저와 직원들은 우르르 몰려나갔습니다. 마치 어르신의 딸처럼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결혼 예식이 끝나고 어르신을 모시고 차에 오를 때였습니다. 신부 어머님이 다가 오셨습니다. “쓸쓸한 결혼식이 될 뻔했는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번이나 고맙단 말씀을 하시더군요.
돌아오는 길. 휴게소에서 핸드폰으로 찍은 결혼식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르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돌려봤습니다. 어르신은 사진을 보시더니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국장이요 고맙소. 내가 어떻게 우리 아들 결혼식에 참석할 줄 꿈인들 알았겠소. 오늘 내가 못 왔으면 아들에게도 그렇고 사돈에게도 면목이 없었을 텐데 이렇게 체면 세워 주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아들 결혼사진에 일가친척 없이 혼자만 쓸쓸하게 찍혔을 텐데… 오늘 직원들이 함께 해줬기에 나는 딸이 7명이나 생겼고, 가족이 생겨서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딸이 없어서 늘 외로웠는데, 딸이 7명이 되니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은 난생처음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울먹이시는데 눈물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그렇게 시설 직원 7명은 또 다른 어머니가 생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