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경제분석 결과 받고도 내부조사만 해와
한진칼, 아시아나 손 못대는 독립체제 될수도
효율성 증대 원칙 간과하다 경쟁제한 늪 빠져

공정거래위원회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보고서를 2개월간 묵혀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올 한해동안 진행된 기업결합 심사가 경쟁제한성에만 초점을 둔 나머지 효율성 증대 원칙을 간과해 '반쪽 승인'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25일 팩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위는 지난 10월 서강대 산학협력단으로부터 경제분석 보고서를 제출 받고도 2개월 동안 내부 검토만 진행해왔다. 조성익 경제분석과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계약대로 최종 보고서를 받은 것은 맞다"면서 "지금은 추가적인 자체 분석 중에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노선 매각을 포함한 조건부 승인으로 방침이 정해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여러가지 추측은 할 수 있지만 발표 전까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며 "다만 올해 안에 결과를 내놓겠다는 뜻은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지금까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은 '경쟁제한성이 있어 일정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공정위의 의견이었다. 다만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이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을 경우 기업결합을 승인토록 하고 있어 반대론자 눈치보기를 이어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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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 해설: 경쟁제한성 vs 효율성 증대 원칙 경쟁제한성이란 한 사업자의 행위가 다른 사업자의 영업이나 경쟁 행위를 방해함으로써 수익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뜻한다. 공정위는 기업결합으로 인해 시장경쟁이 제한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합병을 허락하지 않거나, 합병은 승인하되 별도의 시정조처를 내릴 수 있다. 효율성 증대 원칙이란 기업결합에 따른 공동마케팅, 공동생산, 공동구매, 공동연구·개발, 공동표준개발 등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말한다. 국내법은 경쟁제한 효과와 효율성증대 효과를 함께 발생시킬 수 있는 경우 종합적으로 심사함을 원칙으로 한다. |
조성욱, 연말발표 방침 세워놓고
시민단체-노조 눈치보기 몇달째
공정위는 앞서 대한항공 합병 관련 경제분석 연구용역을 서강대 산학협력단에 수의계약 방식으로 발주했다. 당초 계약 기간은 2월 9일~6월 9일이었으나 협력단 측에서 4개월 연장을 요청해 10월 결과물을 받았다.
조성욱 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 결합 심사를 연내 마무리하겠다고 언급한 것이 10월 5일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보고서를 받고도 2개월간 방치한 셈이다.
공정위를 망설이게 한 것은 독과점 우려가 높은 노선 매각에 대해 노동조합 반발이다. 국정감사에서 조 위원장이 일부 노선 매각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대한항공·아시아나 노조의 불만을 샀다.
공정위는 일부 노선의 운수권이나 슬롯을 비계열사 저비용항공사(LCC)에 양도하는 조건부 승인을 검토해왔지만 기존 직원 입장에선 일자리가 줄어드는 구조조정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공정위는 시정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10월 25일 국토교통부와 업무협약(MOU)을 맺는 등 독과점 늪에 빠진 합병을 성사시켜 보겠다는 노력을 펼쳤다. 고병희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당시 "어떤 조치를 강구한다고 하더라도 항공 규제와 관련이 크다"며 "국토부와 긴밀한 협의가 실질적으로 이뤄져야만 실효성 있는 조치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국토부와의 협의를 통한 조건부 승인을 시민단체가 멈춰세웠다. 참여연대는 "글로벌 경쟁력은 국내 산업 독점의 허용 논거가 될 수 없다"면서 "2016년 SK텔레콤와 CJ헬로비전의 합병을 불허한 것처럼 이번 기업결합도 불승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와 같은 독립 체제를 보장해야 한다"는 반쪽짜리 승인안을 내놨다.

효율성 증대 원칙 간과한 독립경영 무리
아시아나 정상화 위해 온전한 합병 필요
독과점, 즉 경쟁제한성을 근거로 한진칼 경영진의 아시아나항공 지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주장이지만, 법조계에선 현행 공정거래법이 '효율성 증대효과'가 경쟁제한으로 인한 폐해보다 큰 경우엔 기업결합을 허용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공정거래법상 기업결합심사를 시장지배력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경영효율성 증대효과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물론 국내시장을 대상으로 해서는 안되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는 143개의 국제노선 중 양사가 모두 운항 중인 58개 노선을 통합했을 때 점유율 50% 이상인 노선이 32개(22.4%)가 된다. 하지만 완전경쟁시장인 항공운수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경쟁제한성 우려는 과도하다는 것.
또 합병 승인을 전제로 그동안 발생한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진칼은 올해 3월 주주총회에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 임춘수 마이다스프라이빗에쿼티(PE) 대표, 최윤희 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이동명 법무법인 처음 대표변호사 등으로 이사진을 구성했다.
대주주 자격인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따라 요금인상이 있을 것이란 소비자 우려에 대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잘 관리감독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3600%를 넘어선 아시아나항공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온전한 합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을 그대로 둔다면 거대한 좀비 기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며 "공정위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다른 국가의 경쟁 당국도 설득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