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미·일에도 없는 과잉
부당노동행위 규제 사용자에만 엄하게 적용
불법 점거·폭력·정치파업 되풀이에 속수무책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사법제도는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하더라도 시대 흐름을 읽어낼 줄은 알아야 한다는 의미다. -긴즈버그
법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려버린' 법은 사회와의 조화를 깨트린다. <팩트경제신문>은 재창간 기획 특집으로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법령의 문제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지지부진한 국회의 입법 개정을 촉구할 계획이다. 이제는, 시대가 법을 바꿀 차례다. [편집자주]
노조전임자면 이제 재택 투쟁도 가능?
지난 7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으로 노조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아울러 신분상 무급 휴직 중인 직원으로 간주되면서 이른바 재택투쟁도 가능해졌다.
지금까진 노조전임자의 급여를 사용자가 지급하는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처벌받았다. 아울러 노조전임자의 급여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쟁의행위는 금지됐다. 그러나 관련법이 바뀌면서 전업 투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개정된 노조법의 내용을 보면, 노조법 제24조 제1항은 "사용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으면서 근로계약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지 아니하고 노동조합의 업무에 종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동시에 노조전임자는 신분상 무급 휴직 중인 직원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라 오전 8시 출근 투쟁하던 시대도 끝났다. 노동 관련 활동만 인정받는다면 집이든 휴양지든 장소에 구애받을 일이 없어진 것이다. 또 사용자가 이를 제한하려 하면 지배개입 행위로 간주돼 부당노동행위 처벌을 받게 된다.
노사간 힘의 불균형 촉발한 노조법 81조
이처럼 한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임무인 노동은 하지 않고 오로지 노동조합 일에만 매달릴 경우 과연 월급을 받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상식과 동떨어진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조차 불법으로 간주되는 형편이다.
이처럼 회사를 위해 일을 하지 않는 노조전임자에게 조합이 아닌 사측이 월급을 감당하도록해 노사간 힘의 균형이 심각하게 저해하는 제도의 한 가운데엔 노조법 81조상의 부당노동행위 규정이 존재한다.
부당노동행위제도의 본래 취지는 사용자가 악의적으로 근로3권을 침해하거나 단체교섭질서를 저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노조의 요구를 관철하는 도구로 악용되더니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깨고 사용자의 정당한 노무관리 활동을 저해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외국의 제도와도 크게 동떨어져 있다. 미국의 경우 '노조에 대한 경비지원' 자체가 형사법 위반으로 처벌되며 노동조합이 전임자 급여지급을 요구하는 것도 법 위반이다. 사실상 배임이란 얘기다.
한국과 유사한 기업별 노조 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노조전임자 급여는 노조의 재정으로 지급된다. 영국에서도 사용자가 초기업단위 노동조합의 조직에 어떠한 금전 및 물질적 지원도 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선 잘못 설계된 부당노동행위제도로 인해 대립적·갈등적 노사관계가 심화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보고서(2018)을 보면 한국은 노동시장 지표 중에 노사협력 부문이 140개국 중 124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정리해고 비용도 114위, 고용·해고 관행(87위)로 낮은 수준인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지난 10년간 노조의 파업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미국의 7배, 일본의 169배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는 다름 아닌 현실과 동떨어진 부당노동행위제도로 인해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대항권이 미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 지적이다.
불법 점거와 폭력···모럴해저드 원인
무엇보다 한국 제도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사용자만 일방적으로 규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전체 근로자의 10%에 불과한 노동조합원이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투쟁적이고 비타협적인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의 정치파업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1987년 이후 노동 이슈를 가장한 정치 파업이 등장하기 시작해 최근엔 폭력성까지 두드러졌다. 특히 해고자나 실업자까지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되면서 회사의 경영 이슈를 넘어선 정치 파업이 일상화됐다.
당장 민주노총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소속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지난달 23일부터 제철소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 또 지난해 6월엔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 중 폭력을 써 기물을 파손하는가 하면 2018년 11월엔 유성기업 노무담당 임원이 집단폭행 당하기도 했다.
투쟁 일변도의 강성노조와 함께 노조 간부의 공금횡령, 금품수수, 채용비리 사례도 등장한다. 한국 GM노조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금품수수(2012~2016), 업체 대표에서 특정 노조 소속 타워크에인 기사 배제 협박(2018. 4. 25), 인천공항공사 자회사 계약직(전직 노조간부 아내) 채용비리(2018. 10. 22)가 대표적이다.

기울어진 힘 바로잡자는 재계 요구 묵살
이런 사정이라 한국경영자총협회 손경식 회장을 비롯한 경영계도 그동안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를 포함해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전면 금지 등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보완 입법을 건의해왔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를 외면했다.
이 뿐만 아니라 과거 이념 대립에 따른 투쟁적 관계를 넘어 '사업동반자'로서의 제3의 노사관계 혁신을 추구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대통령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개선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 중 하나로 채택하고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 금지 규정 삭제를 비롯해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을 공익위원 1단계 합의안으로 확정했다. 그러면서도 경영계가 요구해온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 제도 개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결과 비준의 핵심 사안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강제노동 폐지와 같은 핵심 협약은 비준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상희 한국기술대학교 교수는 "ILO도 대체근로 전면금지 규정을 적극적으로 두라는 입장까지는 아닌데다 부당노동행위제도 역시 모태국가인 미국은 물론 수입국인 일본에 비해 크게 뒤떨여져 있다"고 지적했다.
미·일에 확연히 뒤떨어진 제도 고쳐야
국내법을 보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직접적 형량은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이다. 이와 함께 노동위원회의 구제명령 미이행에 대한 형벌은 3년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은 사용자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더 나아가 미국은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함께 규율하고 있다. 이승길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도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부당노동행위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형사처벌규정을 삭제하고, 노조의 부당노동행위도 함께 규율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같은 의견으로 노동조합에도 자주성과 사회적 책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부당노동행위 제도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거친 일본에서 군사기업의 만행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과 유사한 상황이다"며 "현재 일본의 노조법은 미국과 매우 가까워져 단체운영을 위한 경비지출 등은 노동조합의 결격 사유로 규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