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전문병동 설치에 739억원 지원…인력난에 파행 운영
치매안심병원도 환자 많은 서울ㆍ경기엔 한 곳도 없어
의료계 "시설 확충만론 한계, 수가 인상 등 인력 유인책 있어야"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는 '치매국가책임제'를 야심차게 내놓았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의 어려움과 늘어나는 치매 환자에 대해 '국가가 직접 책임지겠다'는 선언이었다. 여기엔 문 대통령 개인의 아픈 경험도 작용했다. 대통령의 장모가 치매환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매국가책임제 도입 4년이 지난 현재 의료 인력난과 인프라 부족으로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당초 이상과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확충에만 열을 올렸을 뿐 정작 치료를 해야 하는 의료 인력 확충 계획은 부재해 제대로 된 치료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치매 환자는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65세 이상 치매 인구는 78만 8000명에서 오는 2050년 302만 3000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치매 유병률 또한 2016년 처음 10%에 도달한 이후 점차 증가해 오는 2050년에는 15.1%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안심병원 설립 보다 인력부족문제 해결 시급
늘어나는 치매 환자에 정부는 치매안심병원을 도입했다. 하지만, 지난 2019년 도입한 치매안심병원은 현재 전국에 4곳에 불과한 데다, 서울과 경기도 등 환자가 몰리는 수도권에는 단 한 곳도 없다.
복지부는 지난 3월, '2021년 제1차 국가치매관리위원회'를 열고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1~2025년)의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4곳인 치매안심병원을 2022년까지 12개, 2025년 22개까지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시설 확충 계획만 있을 뿐 정작 의료 인력 확보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이병철 한강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것 자체가 애초에 의사들이 기피하는 힘든 분야"라며 "정부 차원에서 경제적 지원도 다른 의학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니, 의사들이 지원을 나가도, 금방 자리를 옮기는 현상이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치매 관련뿐만 아니라 아동학대 관련 시설 등 '복지 부문'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면 그만큼 경제적 지원이나 시스템을 먼저 잘 갖춰야 한다고 본다"며 "하지만 여건이 마련되지 않으니 담당 의사들은 당연히 지원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다 보니 정부는 한의사를 치매센터에 파견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이는 한의학계와 의료계의 갈등만 키웠을 뿐이다.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한 요양병원 관계자도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정부는 의료 지원보다는 병동 관련 장비만 지원하고 있다"면서 "당장 인력이 있어야 병원이 운영되는 건데, 누가 손해를 봐가며 치매안심병원을 설립하겠냐. 치매 환자 치료를 위한 인력을 먼저 확보해야 하고, 이에 대해 수가 보상 등 대책 없이는 치매안심병원을 늘릴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739억원 쏟았지만 '인력이 없으니 운영도 안 돼'... "시범 사업 수준에 불과"
지난 2017년 하반기부터 복지부는 국·공립요양병원에 치매전문병동 설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약 739억원의 예산을 쏟아 인프라를 확충했는데, 전문 인력의 부족으로 제대로 된 치료와 돌봄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정부에서 치매국가책임제를 내세우며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실이 부족하다. '시범 사업' 수준"이라며 "요양보험 예산 부담 또한 커지고 있다. 오는 2024년도가 되면 지금까지 모아둔 (요양보험) 적립금이 다 고갈된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역사회 내에서 치매 돌봄과 치료 등 치매안심센터, 병동을 통해 환자들에게 서비스 제공은 해주고 있지만, 4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인력과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 되지 않아 운영 자체가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9월 기준 전국공립요양병원에 설치된 치매전문병동 49곳 가운데 15곳에는 치매 관련 전문의가 단 한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치매관리법 시행규칙에서 제시하는 치매안심병원 인력 기준을 보면, 치매전문병동에서는 신경과나 신경외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적어도 한명 이상이 근무를 해야 한다. 작업치료사와 임상심리사도 1명씩 근무해야 하지만, 운영인력 기준을 충족한 치매전문병동은 단 8곳에 그쳤다.
치매 관련 전문의가 없는 병원에 입원한 치매 환자 수만 해도 1536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 기준 자체도 문제가 있다. 일본의 경우 치매전문 병동의 인력 기준, 치매 환자 100명당 의사 3명이 있어야 한다. 이 중 1명은 반드시 정신과 전문의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있다. 반면 국내의 경우 병동 갯수와 상관없이 전문의 한명만 있으면 기준을 충족한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치매국가책임제의 '국가가 환자와 보호자를 직접 책임진다'는 취지는 굉장히 올바른 방향"이라면서 "다만, 치매 치료를 하는 데에 있어서 의료인들이 헌신적이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하게끔 하려면, 그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지만 재정 문제 때문에 현실적인 제약이 있지만, 치매국가책임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경제적 지원 부문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기요양서비스 확대에 국민 부담 보험료 ↑
추가로 장기요양서비스 확대 과정에서도 국민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8년 관련 제도 도입 이후 2017년까지 6.55%로 유지되고 있었던 장기요양보험료율이 치매국가책임제 이후 계속 늘었기 때문이다. 장기요양보험료율은 2018년 7.38%로 오른 뒤 2019년에는 8.51%, 2020년에는 10.25%까지 상승했다. 정부에서는 2021년에도 장기요양보험료율을 11.52%로 늘리기로 결정한 상태다.
이에 따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월 20일 대표 발의한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는 복지부 장관이 장기요양보험 기금을 설치해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기금운용계획은 매년 장기요양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이종성 의원은 “장기요양보험의 적자 규모가 커지고 보험료 인상 폭이 커지면서 국민부담이 늘었다”며 “기금화를 통해 관리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지난해 9월 복지부는 제4차 치매관리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치매관리종합계획은 5년마다 수립되는 정부의 포괄적 치매관리 중장기 계획이다.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국가 치매관리 체계를 더욱 내실화하고,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치매 포용국가를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지금, 1년 뒤 치매국가책임제는 어떻게 평가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은 <여성경제신문>과의 통화에 "4년이나 지난 지금, 정부의 치매국가책임제는 실질적인 결과가 없다"며 "구호만 앞세우고 내실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 "(치매국가책임제를 통해) 국민은 많은 도움을 받았고 이 제도를 환영하고 있다"며 "다만, 내실에 문제가 있다면,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이에 대해 충분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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