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도 첫 여성 사외이사 선임
아직은 5%에 불과한 여성 사외이사 비율, 의무화 따라 20%대로 오를까

최근 현대차그룹은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한창이다. 현대차는 이지윤 카이스트 항공우주공학 부교수를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확정했다. 기아는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현대모비스는 강진아 서울대학교 협동과정 기술경영경제정책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 후보로 선임했다. 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가 여성 사외이사를 발탁하는 것이 처음인 만큼,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다음 달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통과되면, 이들은 각 사 최초로 여성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현대차그룹뿐만은 아니다. 최근 재계에 여성 사외이사 영입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 대기업은 여성 사외이사를 적어도 1명씩은 둬야 한다는 법안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기업에서 여성 이사는 소수에 불과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국내 매출 상위 100대 기업 이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도 5%에 불과하다. 또 국내 매출 상위 100곳 중 70곳은 여성 사외이사가 단 한 명도 없다. 올해부터는 이런 기류가 달라질 전망이다. 올해 국내 대기업 사외이사 영입 1순위는 ‘여성이면서 교수 출신의 1960년 이후 출생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헤드헌팅 전문업체 유니코써치는 24일 ‘국내 100대 기업 사외이사 현황 분석’ 결과를 통해 이같은 내용을 밝혔다. 조사 대상 100대 기업은 상장사 매출(개별 및 별도 재무제표 기준) 기준이며, 사외이사와 관련된 현황은 2020년 3분기 보고서를 기준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국내 100대 기업 총 이사회(사내·사외이사) 인원은 756명으로, 이 가운데 여성은 39명(5.2%)인 것으로 집계됐다. 사내이사 4명(한성숙 네이버 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임상민 대상 전무, 이인재 삼성카드 부사장), 사외이사는 35명이다. 세계 선진국과 비교하면 우리 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된 대기업 500개사로 구성된 S&P 500 지수에 들어가는 회사 여성 이사회 진출 비율은 작년 기준 28% 수준이다. 스웨덴과 영국도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이 각각 24.9%, 24.5%로 높은 편이다.

국내 대기업은 대체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 남성을 뽑거나,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하더라도 1명꼴로 선임하는 데 그쳤다. 국내 100대 기업 사외이사 441명 가운데 남성은 406명(92.1%), 여성은 35명(7.9%)으로 집계됐다. 100대 기업 내 사외이사 여성은 열 명 중 한 명꼴도 되지 않는 셈이다. 심지어 100대 기업 가운데 70개 기업은 여성 사외이사가 전무했다. 즉, 여성 사외이사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 곳은 30곳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마저도 여성이 2명 이상 되는 곳은 30곳 가운데 단 4곳(지역난방공사·삼성전자·한국전력·S-Oil)뿐이었다. 유니코써치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내 대기업에서 사외이사를 영입할 때 남성을 선호하는 경향이 팽배하다는 의미가 강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와 내년에는 여성 이사회 진출 비율 수치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내년에는 150명 내외로 여성들이 이사회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 국내 100대 기업 기준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은 20% 수준으로 높아질 예정이다. 이런 변화를 몰고 온 것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이다. 개정안에는 내년 8월부터는 국내 자산 2조원 이상 대기업을 대상으로 최소 1명 이상 여성 사외이사를 두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올해 신규 선임되는 여성 사외이사 중에는 ‘1960년 이후 출생한 대학 교수’ 중에서 이사회로 진출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으로 관측됐다. 100대 기업 사외이사 441명을 출생년도 별로 살펴봤을 때, 1955~1959년생과 1960~1964년생이 각각 128명(29%), 120명(27.2%)로 과반을 차지했다. 핵심 경력으로 주류를 이루는 것은 대학 총장과 교수 등 학계 출신이었다. 학계 출신 사외이사는 184명(41.7%)으로, 전문성이 높은 학자들을 영입하는 경우가 두드러졌다. 여성 사외이사 35명 역시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1960년대 출생자가 21명(60%)였고, 교수 이력을 가진 학자 출신이 20명(57.1%)으로 과반을 넘었다.
김혜양 유니코써치 대표는 “세계적으로 ‘ESG’가 새로운 경영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사회 멤버 중 여성 비율을 높이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남성 중심의 이사회가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자발적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확대해온 기업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며 “여성 사외이사의 증가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이사회 조직 운영의 다양성을 강조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기 위한 행보의 일환이며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