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의 심리학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낙태죄 없는 2021년 맞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지난해 12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낙태죄 없는 2021년 맞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지인 A씨는 1990년대 한국 H자동차의 중국 서부 총책임자였다. 가족들과 함께 임지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주어진 숙소는 호텔이었다. 쓰촨성의 수도 충칭시에 있는 한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을 개조한 방이었다. 그때만해도 지방은 치안이 불안하고 외국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회사측에서도, 공안당국에서도 이런 방식을 권했다고 한다.

어느 휴일 W씨가 가족들을 데리고 충칭시내 한 재래시장에 쇼핑을 하러 갔다. 당시에는 대형마켓이 없었기 때문에 식자재 등을 사려면 재래시장을 갈 수밖에 없었다. 한창 쇼핑을 하고 있는데, 갓 초등학교 들어간 아들 B군의 얼굴이 사색이 되면서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갓 도살되어 선홍색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돼지가 실눈을 떠고 슬며시 B군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이후 B군은 사춘기를 지나기까지 돼지고기라면 진저리를 쳤다고 한다. 직접 도축 현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 B군이 목격한 돼지의 사체는 살인 현장을 목격한 것에 견줄 정도의 큰 트라우마를 야기했던 것이다.

영화 ‘언플랜드(Unplanned)’는 미국 최대의 낙태 클리닉을 운영하는 가족계획연맹(PPFA)에서 일했던 주인공 애비 존슨(애슐리 브랫처 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심리학 전공의 대학생 애비는 우연히 PPFA의 자원봉사를 권유받았다가 졸업후 그곳에 눌러 앉았다. 8년간 상담사로 일한 후 능력을 인정받은 애비는 이 클리닉의 최연소 소장이 된다.

그러다가 운명의 날이 닥쳤다. 새로 부임한 의사의 초음파를 이용한 낙태수술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임신 13주가 된 태아를 유도시술로 낙태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목도한다. 태아는 수정 후 3주가 되면 이미 심장박동을 시작한다. 6주차에 얼굴 부분과 손발의 모양이 구분되고, 9주차가 되면 사람의 모습이 뚜렷해진다.

그녀는 수술 현장에서 초음파 유도시술이 시작되자 자궁 안으로 들어온 수술기구를 피하려는 듯 움찔거리다가 점프까지 하는 태아의 움직임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태아는 끝내 기구에 의해 산 채로 조각조각 잘린다. 선혈이 낭자한 태아의 조각들은 자궁을 빠져나와 미리 준비된 통으로 빠르게 흡입되었다.  

애비는 경악했다. 평소 상담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일삼았음을 알게 된 것이다. “수술할 때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나요?” 상담 받으러온 여성들의 가장 흔한 질문이었다. 지나온 8년간 대답은 한결 같았다. “임신 28주 전에는 태아의 감각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고통을 느끼지 못해요. 안심하세요!” 

마른 하늘에 치는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애비는 방금 보았던 태아의 모습이 13주 밖에 안된 태아의 행동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받은 충격은 컸고 상처는 깊었다. 그녀는 방금 살인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낙태 상담을 받으러 온 임신부들에게 살인을 권고하고 있었던 셈이 아닌가.

사실 참혹한 살인 사건이나 화재, 자살 사고 현장을 자주 목격하는 경찰이나 소방공무원들은 정신질환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몇 해전 경찰청 조사에 의하면 강력사건 현장에 출동하는 경찰 중 8할은 각종 불안장애, 우울증 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생한다고 한다.

동물 사체를 처음 본 B군이나 태아가 산 채로 참혹하게 잘려 나가는 현장에 있었던 애비가 심리적 내상을 입었을 것이라는 것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상담전문가를 자처하면서 필수적인 팩트 체크 한번 하지못한 것도 ‘뼈를 때리는’ 실수였다. 그에 대한 자책도 컸을 것이다.

“8년의 신념을 뒤흔든 10분, 닫힌 문 너머의 진실을 마주하다.” 영화 ‘언플랜드’의 한국에서 제작된 포스트의 카피가 이런 상황를 잘 말해준다. 미국의 카피는 이렇다. “그녀가 본 것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What she saw changed everything)” 정말로 사건 이후 애비의 인생은 바뀌었다.

그녀는 낙태를 반대하는 운동의 최전선으로 달려갔다. 태아도 한사람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대우해야 하는 소중한 생명이라는 자각도 하게 되었다. 일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미 낙태시술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보편적이라고 할만큼 널리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애비만의 고민일까?

멀리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만해도 1962년도부터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을 시행해 왔다. 구호만 봐도 알 수있다.  출산율이 5명을 넘던 1960년대에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70년대는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80년대는“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 출산율이 급전직하한 2000년도에는 구호도 급변했다. “아빠, 혼자는 싫어요. 엄마, 저도 동생을 갖고 싶어요”

문제는 그러한 과정에서 ‘임신중절’이란 이름의 낙태수술도 광범위하게 행해졌다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하루 3천명, 1년 110만명이 낙태수술을 받는다. OECD 국가 중에서 최고의(?) 낙태왕국이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낙태수술을 반대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낙태를 범법행위로 규정하는 순간, 자의든 타의든 낙태 경험이 있는 수많은 우리의 할머니, 어머니, 이모, 고모, 누이, 조카가 한 순간에 전과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남의 새끼를 죽이는 ‘영아살해(infanticide)’는 매우 흔하다. 아프리카 사자의 경우, 어느 정도 자라면 바로 무리를 떠난다. 무리에서 독립한 수컷 사자의 목적은 오직 하나다. 다른 무리를 습격하여 수컷을 내쫓고 암컷들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 다음 수컷들은 무리 안에 남은 새끼들을 무자비하게 죽여버린다. 어미 사자들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이런 일은 보기보다 흔하게 일어난다. 인도의 랑구르 원숭이도, 곰이나, 돌고래, 쥐, 새들의 세계에서도 영아살해는 일어난다.  

그런데 뜻밖에도 인간의 세계에서는 제 손으로 제 자식을 죽이는 일이  흔하다. 이런 일은 모든 문화권에서 일어난다. 동물처럼 남의 새끼도 아닌 제 자식을 죽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웃집 살인마: 진화심리학으로 파헤친 인간의 살인 본성’이라는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버스의 말을 빌려 정리해보자.

“소름 끼치는 일이기는 하지만, 자식 살해를 선호하도록 진화의 압력이 가해진 적어도 세 가지 기본적인 상황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아이가 심각한 선천적인 결함을 타고났거나 아프거나 장애를 안고 있을 때이다.

두 번째는 이미 자식이 많아서 새로운 아이에게 투자하는 것이 다른 자식들을 키우는 데 너무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세 번째는 아이 엄마가 아직 미혼인데다가 아이를 키우는 걸 기꺼이 돕겠다고 약속한 남자도 없는 경우이다. 가장 도발적이면서도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이해 불가능한 또 다른 동기는 아이의 존재가 여성이 장기적인 배우자를 찾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이다.“

인류의 영아살해 동기를 살펴보면 낙태, 즉 ‘태아살해(feticide)’의 동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아살해가 모든 문화권에서 일어나고, 이면의 사정이 딱하다고 해서 그 행위를 용서받을 수 없는 것처럼 태아살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가 기형아이거나 장애인이라고 해서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계획에 없던 임신이라고 해서 계획적으로 태아를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영아를 죽이는 것이 살인인 것처럼, 버젓이 인간의 형상을 갖추고 심장이 뛰는 소중한 생명체인 태아를 죽이는 것도 재론의 여지없는 살인이 아니겠는가.

성폭력에 의한 임신을 거론하는 이도 있다. 그것은 전체 임신의 0.3%~0.9%에 해당하는 예외적인 경우이므로 따로 다루면 될 일이다. 낙태를 덮어놓고 무조건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얼굴과 손발이 구체적으로 형성되는 6주 이내에서만 허용한다는 식으로 -이 또한 논란의 여지가 많지만- 불가피한 예외를 두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낙태 반대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임신에는 남녀가 같이 하는데 왜 출산의 책임은 여자만 져야하느냐고 따지면서, 이것은 명백히 남녀 성차별을 존속시키려는 거대한 음모의 일환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소중한 태아의 생명을 여성의 프라이버시와 동일한 차원에서 다룰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분명히 임신과 출산은 남녀 공히 책임이 있다. 특별히 남성들에게는 어릴 적부터 올바른 성교육이 인성교육의 차원에서 더욱 진지하게 이뤄져야 한다. 제도적으로도 임신과 출산, 육아가 남녀공동의 일임을 명백히 하는 법률 및 정책이 확립되어 성차별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정신을 바짝차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내가 보기에 영화 ‘언플랜드’에서 주인공 애비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 같다. “불안전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모든 것을 계획한 대로 완벽하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임신도 계획에 없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계획하지 않은 임신’이었다고 해도 그로 인해 생긴 생명체를 낙태라는 이름으로 죽이는 것은 명백히 ‘계획된 살인’ 아닐까요?”

김진국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대학, 언론, 정부부처, 공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심리학자, 의학사, 의학석사, 대체의학박사(수료)다.

김진국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

대학, 언론, 정부부처, 공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심리학자, 의학사, 의학석사, 대체의학박사(수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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