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사랑 끝에 낳은 '한국남자 아이' 혼자 키우며 비참한 삶
소식 끊긴 채 혼자 자녀 키우는 미얀마 여성 늘어나고 있어

스물아홉인 메이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나이가 들며 학교 대신 일터로 나가야 했다.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꽃다운 스물 둘에 한국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끝내 그는 갑자기 떠나고 소식이 끊겼다. 메이는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해야만 했다. 메이는 사진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 부득이 옆모습을 내보낸다. /사진=정선교
스물아홉인 메이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나이가 들며 학교 대신 일터로 나가야 했다. 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꽃다운 스물 둘에 한국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끝내 그는 갑자기 떠나고 소식이 끊겼다. 메이는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며 일을 해야만 했다. 메이는 사진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 부득이 옆모습을 내보낸다. /사진=정선교

메이의 딸 윤윤은 올해 6살입니다. 노래를 좋아합니다. 이 아이는 지난 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아 집에서 엄마와 있는 시간이 많습니다. 엄마도 일자리가 없어 근 1년을 쉬며 딸 윤윤을 돌봅니다. 딸은 한국사람처럼 생겼습니다. 아빠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메이가 스물세 살 때 낳은 아이입니다. 딸 윤윤은 아빠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빠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그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이제 6살이 된 딸 윤윤. 노래를 좋아한다. 아빠는 하늘나라로 갔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를 낳고 외할아버지가 깊은 시름 속에 세상을 떠났다. 메이는 살아온 중 가장 가슴 아픈 일이였다고 말한다.
이제 6살이 된 딸 윤윤. 노래를 좋아한다. 아빠는 하늘나라로 갔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를 낳고 외할아버지가 깊은 시름 속에 세상을 떠났다. 메이는 살아온 중 가장 가슴 아픈 일이였다고 말한다.

미얀마 경제도시 양곤. 메이가 사는 동네 타웅다곤으로 갑니다. 양곤 외곽에 있는 가난한 동네입니다. 메이가 한동안 아이의 아빠를 찾았는데, 이 일을 돕는 한국분이 있어 함께 동행합니다. 아이가 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자 엄마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딸이 커가면서 아빠에 대한 질문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녀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결국 찾는 일은 허사가 되고, 메이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딸에게 아빠는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더이상 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그러나 윤윤은 뭔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윤윤의 엄마 메이는 올해 스물아홉입니다. 메이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습니다. 현재 비좁은 방 한칸에서 3명이 지냅니다. 메이의 여동생과 함께. 벽과 바닥은 대나무로 엮은 집입니다. 월세가 6만원쯤 됩니다. 이 동네는 이런 쪽방이 많이 보입니다. 그래서 시내서 먼 지역입니다. 메이는 참 기구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아빠는 꺼인종족이어서 크리스찬이었고, 엄마는 버마족이어서 불교신자였습니다. 

 

메이가 사는 양곤 외곽 타웅다곤 빈민촌 모습. 한 달 월세 6만원쯤 되는 이곳 방 한칸에서 여동생,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메이가 사는 양곤 외곽 타웅다곤 빈민촌 모습. 한 달 월세 6만원쯤 되는 이곳 방 한칸에서 여동생,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메이가 5살 되던 어느 날. 부모님이 외지로 일하러 갔는데 일터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끝내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망한 것입니다. 2살인 여동생과 메이를 남겨둔 채. 그때부터 엄마를 찾는 동생을 업고 달래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모들이 있긴 했지만 모두 출가한 상태라 갈 데가 없었습니다. 결국 둘은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졌고, 거기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이곳도 형편이 좋지는 않아 메이는 10대가 되면서 학교를 중단하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18살까지는 봉제공장서 미싱일을 했습니다. 메이는 일을 해서 동생만은 고등학교까지 다니도록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20대가 되면서 봉제일보다는 수입이 좀 더 많은 술집, 레스토랑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양곤의 한 대학 캠퍼스와 대학생들 모습. 메이는 여동생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나간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양곤의 한 대학 캠퍼스와 대학생들 모습. 메이는 여동생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생활전선에 나간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에 메이는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를 만났습니다. 40대 초반. 미스터 리. 한국에서 온 직장인입니다. 메이에겐 자잘한 추억도 많고, 그는 어려운 메이를 경제적으로 지원도 좀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나이차가 많지만 마음을 쏟게 되었습니다. 1년이 넘게 교제가 이어졌습니다. 그런 어느 날 그가 미얀마를 갑자기 떠나게 되었고, 메이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메이는 아이를 좋아해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으로 간 연인은 소식을 끊었습니다. 전화를 하지도 받지도 않습니다. 메이도 끝내 마음을 접고 뱃속의 아이만을 생각했습니다. 

메이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이 이 시기였다고 합니다. 아이의 아빠가 떠난 것보다도 더 슬픈 일. 외할머니가 임신한 시기에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가 아기를 낳고 돌아가셨습니다. 미혼모. 외할아버지는 외손녀를 애지중지 키웠는데, 아빠도 없는 아이를 낳자 많이 힘들어하셨다고 합니다. 메이는 이 얘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렇게 메이는 또다시 고아가 되면서 윤윤을 낳았습니다.

 

양곤 중심거리인 술레 파야 부근. 흰 건물인 시청이 보인다. 아주 붐비는 거리인데 코로나19로 한산하다. 
양곤 중심거리인 술레 파야 부근. 흰 건물인 시청이 보인다. 아주 붐비는 거리인데 코로나19로 한산하다. 

메이는 고아로 자랐지만 외할머니, 특히 외할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아서인지 성격이 구김살 없이 밝고 명랑합니다. 참 다행입니다. 한국남자를 만나서인지 한국말도 좀 하고. 곁에 통역이 있지만 제가 묻는 질문을 알아듣습니다. 이 집에서 가족들이 한 달 살기 위해선 최소 30만원쯤 든다고 합니다. 전에는 여동생과 둘이 벌어서 간소하게나마 살았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메이가 일할 곳이 없습니다. 동생이 옷집에서 미싱일로 버는 20만원 정도가 전부인 셈입니다. 현재 메이의 가장 큰 소망은 일자리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은 돈으로 시장에서 조그만 장사를 하고싶어 합니다. 딸의 앞날을 위해.

이렇게 한국남자와 현지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2세 아이들이 아시아에 늘고 있습니다. 건강한 다문화 가정을 이루지 못한 이면의 세계입니다. 필리핀은 이런 '코피노'가 2만명이 넘습니다. 베트남, 말레이시아에 이어 미얀마에도 최근 발생하는 현실입니다. 양곤에는 이런 이웃들이 삼삼오오 모여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난과 외로움만 남기고 한국으로 떠난 그 자리. 사랑의 기쁨은 사라지고 슬픔만 남아 있습니다.

 

영화 '호우시절'의 스틸. 여주인공 이름도 메이이다. 출장 간 한국청년이 중국에서 우연히 옛사람을 다시 만난다. 좋은 비는 때를 맞춰 다시 찾아오듯 미얀마의 메이에게도 행복한 일들이 있길 소망한다.
영화 '호우시절'의 스틸. 여주인공 이름도 메이이다. 출장 간 한국청년이 중국에서 우연히 옛사람을 다시 만난다. 좋은 비는 때를 맞춰 다시 찾아오듯 미얀마의 메이에게도 행복한 일들이 있길 소망한다.

메이와 윤윤과 작별하고 돌아가는 길. 자꾸 허진호 감독 한국영화 '호우시절'이 떠오릅니다.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메이였기 때문일까요. 중국출장을 간 한국청년은 우연히 관광가이드를 하는 메이를 만납니다. 유학시절 만난 적이 있는 사이이지만 서로 다른 기억과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래도 해피엔딩인데. 이 영화의 제목처럼. '때를 알고 내리는 좋은 비처럼, 다시 그 사람이 온다면ᆢ'. 미얀마에 홀로 남은 메이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길 문득 생각해보았습니다. 

정선교 MECC 상임고문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NGO)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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