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권 창출 ‘1등공신’이자 ‘밤의 대통령’···최강의 여권 실세
비서실장 인선 발표 직후 미국행 두고 '오비이락’ ‘반발성 외유’
문, 임기말 기조 ‘탈정치’로 잡고 의도적 유영민 실장 발탁 평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미국으로 간다고 합니다. ‘돌연’이라는 표현도 등장합니다. 여권의 보이지 않는 실세가 갑자기 미국으로 간다고 하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합니다. 양 전 원장 측은 “총선 직후 외국의 대학 몇 곳에서 초청을 받아 방문교수로 나갈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상황으로 출국하지 못했다. 최근 다시 그를 초청한 해외 연구기관이 있어 당분간 정책 연구활동에 전념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활동 전념’이 양정철 전 원장 미국행의 팩트입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비서실장직을 간청했으나 물을 먹자 홧김에 미국으로 간다’ ‘정권 재창출을 위한 로드맵을 그리러 간다’는 등의 말들이 나옵니다. 그가 문재인 정권 창출의 1등 공신이자 ‘밤의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미국행이 단순히 ‘연구활동’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 과정에서의 파워게임 후유증인지, 아니면 단순한 외유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가 엄연히 여권의 막후 핵심실세라는 점에서 ‘갑작스런 미국행’이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양정철이 미국으로 간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는 현재 최강의 여권 실세입니다. 양 전 원장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청와대 비서실장 하마평에 오르내렸지만 결국 유영민 실장으로 결정 났습니다. 공교롭게도 비서실장 발표 직후 그의 미국행도 언론에 흘러나왔습니다. ‘오비이락’일 수 있지만 비서실장 결정을 본 직후 양 전 원장이 움직였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는 비서실장 교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장 유력한 인물로 떠올랐지만 정작 청와대에 당당히 들어가는 데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대통령 최측근 참모가 집권 후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않은 사실상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라는 다소 난해한 평가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 ‘난해함’에는 두 가지 뜻이 숨어 있습니다.
최고실세임에도 결정적으로 대통령의 눈에는 못 들어 공직의 꽃이라 불리는 청와대 비서실장에는 번번이 물을 먹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이라는 점에 방점이 찍힙니다. 몸을 바쳐 고생해서 대통령을 만들었는데 정작 그 과실을 제대로 따먹지 못한 것에 대한 ‘억울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않은 첫 사례’에 방점을 찍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수많은 공직 리스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 하나만 고르면 언제든 직을 차지할 수 있지만 오로지 대통령에게 측근의 보은인사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친 양정철 전 원장의 무욕의 보좌를 칭송하는 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는 누가 봐도 여권의 최고 핵심 실세 중의 실세입니다. 이것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과 대선에서의 공적이 말해줍니다. 양정철은 1964년생으로 외국어대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외대학보 편집장과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대학생 기자와 ‘자민투’ 위원으로 학생운동을 병행했습니다. 긴 수배생활과 투옥까지 경험했던 운동권 출신이었습니다. 졸업 뒤 그는 ‘언론노보’ 기자로 들어갔고 이때 외대 1년 후배인 윤석양 씨가 보안사 민간인 사찰 문건을 들고 찾아오자 이를 폭로케 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언론노보 기자 등을 거치며 누구보다 언론계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정철은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국내언론 비서관을 거쳐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을 지냈습니다. 이때부터 별명이 ‘양비’로 통했습니다. 당시 양정철 비서관은 ‘기자실 통폐합’을 주도해 언론사 기자들의 ‘공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라 봉하마을로 ‘귀농’했지만, 불행한 일을 당하고 다시 정치판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 펴냈던 <문재인의 운명> 원고 집필을 도와준 인연으로 문 대통령과도 더욱 친분을 쌓게 됩니다. 일각에서는 양정철 전 원장이 정치에 소극적이고 뜻이 없던 문 대통령을 이때부터 ‘꼬드겨’ 정치에 입문시킨 주인공으로 평가됩니다. 보수층에서는 “386 운동권 세력이 민주화 운동 경력과 특전사 복무 등 그림이 되는 문재인을 ‘얼굴’로 내세우고 자신들이 막후에서 실세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문재인의 운명> 책을 내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기록까지는 가능했어도 책의 2부였던 자신의 인생은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문재인 이사장이 투철한 운동권 대학생이자, A급 특전사 군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 양정철 전 원장이 기획하며 사실상 문재인을 정치 대권 레이스에 입문시킨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과 양정철은 단순한 상하관계가 아닌 ‘동지적’ 관계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공동운명체였고 ‘한 몸’이었던 것입니다. 이 태생적인 배경은 향후의 두 사람 관계를 예상하는 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합니다. 문재인이 무너지면 양정철도 없게 됩니다. 즉, 양정철은 문재인 대통령이 안전하게 ‘하산’을 하고 그 뒤의 안전한 퇴로확보까지 해야 할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양 전 원장과 문 대통령 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양정철과 노무현과의 관계도 보아야 합니다. 그는 참여정부 내내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기자실 폐쇄로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기자들로부터 미운 털이 단단히 박혀 언제나 불편한 관계를 이어나갔고 참여정부 내내 맨몸으로 언론이라는 거대 상대와 싸웠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노무현’을 지켰고, 노무현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모시던 대통령이 충격적인 자살을 했고 그에게는 ‘복수심’만이 남았을 것입니다. 그 복수심은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을 내세우는 기획을 했습니다. 히말라야에까지 문재인 대통령을 따라가 설득해서 어렵게 정치입문을 시켰습니다.
한편으로는 2012년 총선에 중랑구을 후보로 출마도 했습니다. 그의 총선 출마는 의외였습니다. ‘정치하지 마라’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고도 무시했고, 가족들도 반대했지만 그는 나섰습니다. 평생 보좌관으로 살아온 그에게 현실정치 참여는 의외의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양정철 전 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총선에 출마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명예회복 차원의 출마였던 것입니다. 양정철 전 원장이 선택한 중랑구을 지역구의 의원은 진성호 한나라당 의원이었습니다. 진 의원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이명박 대선 후보 인터넷본부장으로 활동하며 ‘네이버는 이미 평정했다’는 발언을 했던 인물입니다. 양 전 원장은 야심차게 결투를 신청한다면서 출사표를 던졌지만 본선에는 가지도 못하고 예비 경선에서 탈락했습니다. 양 전 원장이 중랑구을에 출마할 때 노무현의 복수와 함께 문재인에 대한 책임의식도 있었습니다. 정치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문재인 당시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자신이 현실 정치에 끌어들였던 그 근원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이사장이 정치에 참여했으니 그에게 힘을 보태려는 ‘원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최근 한 언론은 양정철의 ‘워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양 전 원장이 최근 주변에 “생각은 달라도 장세동 전 경호실장의 ‘의리’ 하나는 인정한다”며 “문 대통령의 첫 비서였던 나도 퇴임 후 마지막 비서로 의리를 지키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문 대통령 임기 말까지 공직을 맡지 않은 채 퇴임 후를 미리 준비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양 전 원장은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의 핵심 덕목은 의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양 전 원장은 자신이 정치에 입문시킨 ‘문재인’은 곧 자신의 분신이기에 의리를 지키고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는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정치에서 ‘의리’는 때로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접착제 같은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남아의 우정과 약속을 지키는 순수한 뜻도 있을 것입니다. 양정철 전 원장도 자신이 정치에 입문시킨 문재인 대통령을 위해 끝까지 몸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이라는 그 순수함을 외면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권력은 순수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문재인과 청와대 입성 후의 문재인은 분명 다를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양 전 원장이 지키려 했던 ‘주군에 대한 충성심’이 권력의 정점을 찍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계속된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권력은 관계를 규정하기도 하지만 왜곡하고 변질시키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다시 시계를 양정철의 미국행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이번 유영민 비서실장 임명에는 부산파의 치열한 로비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청와대 개편설이 나왔을 때 문 대통령이 유영민 비서실장을 염두에 둔 것은 확실합니다. 두 달여 전부터 부산을 중심으로 유 실장 발탁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 참모 중엔 “턱도 없다”는 반응을 보인 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최근엔 여권 수뇌부와 의원 그룹, 부산파들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전격적으로 밀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양 전 원장은 결국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말 기조를 ‘탈 정치’로 잡고 의도적으로 유영민 실장을 발탁했다는 인사평이 나왔습니다. 정무적 역할을 절감했다던 문 대통령이 후보군 중 가장 정무와 거리가 있는 기업 출신의 유 실장을 고른 걸 두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문 대통령이 추미애-윤석열 싸움에 학을 떼고 이제부터 정치에는 눈을 돌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 바로 유영민 실장 발탁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문 대통령의 ‘탈 정치 정책중심’ 기조를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 경우 양 전 원장의 탈락은 대통령의 국정기조와 맞지 않다는 점에서일 것입니다. 양정철 전 원장은 누가 봐도 파이터입니다. 물불 안 가리고 저돌적으로 돌진합니다. 참여정부 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기자실 폐쇄도 어떻게 해서든 해내고 말았습니다. 그가 비서실장에 들어설 경우 문 대통령이 연초에 언급한 ‘통합’과는 또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사사건건 싸우는 일만 남았습니다. 대통령으로서는 상당히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인사가 바로 양정철임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국정기조 차원에서였을까요? 문 대통령이 체질적으로 양 전 원장과 맞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가까이 두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아닐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양정철은 그야말로 쿵짝이 잘 맞았습니다. 둘 다 싸움꾼이었고 물러서지 않는 강골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체질적으로 잘 맞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온순한’ 문재인 대통령과 대입시켜 보면 어떨까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문 대통령으로서는 양정철 전 원장이 그를 청와대까지 밀어넣은 1등공신임을 인정하고 있지만 인사권자가 곁에 두고 쓰는 문제는 또 다른 것입니다. 더구나 문 대통령 성격 상 ‘월권’은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만사 ‘법대로’가 몸에 밴 문 대통령이 볼 때 ‘만기친람’형 비서실장을 두게 되면 그 자체로 그의 인사성향과 맞지 않는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는 유영민 비서실장 발탁에 대해 “대통령이 가장 편한 사람을 고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유력한 후보였던 양정철은 편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정권 창출에 기여한 대통령 최측근 참모가 집권 후 아무런 공직을 맡지 않은 사실상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라고 다소 호의적인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 실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관계보다 양 전 원장의 관계가 시기적으로도 훨씬 더 가깝지만 그는 대통령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양정철이 이번에도 물을 먹었다는 해석에 더 방점이 찍힙니다.
그럼에도 양정철은 문재인 대통령 곁을 떠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서산의 권력 해는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다음 해가 오고 있습니다. 그가 정권 재창출을 위해 미국에 간다고 해도 차기권력에서 그를 또 기용해주지는 못할 것입니다. 앞서 밝혔듯이 문재인과 양정철은 한 몸의 운명입니다. 양정철이 거부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질긴 인연의 끈입니다. 하지만 전두환의 영원한 경호실장 장세동도 결국은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는 5공 청문회장에서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위해 죽는 법이다” “차라리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고 말해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습니다. 영원한 경호실장 장세동도 최근에는 전두환 씨와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전 씨가 재판을 받으러 갈 때나 그 외의 골프모임 등에서 그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권력이 식으면 의리도 차가워지는 것입니다.
유 실장 내정이 발표되자마자 공교롭게도 양 전 원장의 미국행 보도가 나왔습니다. 오비이락인지, 아니면 ‘반발성’ 외유인지 알 길은 없습니다. 양 전 원장과 인연이 있는 여권 관계자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고사한 것”이라고 하지만 권력 앞에 그렇게 초연해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에서 배제된 것에 반발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 문 대통령 성향 상 비서실장에게 실권을 일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양정철의 손에 그 권력이 넘어갈 경우 존재감이 미미한 유영민 실장보다 훨씬 큰 리스크가 있을 것은 자명합니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청와대 비서 인사를 할 때 ‘권력을 만든 사람’과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을 철저하게 분리해서 했을 수 있습니다.
권력은 비정합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1등으로 공헌을 해준 사람도 막상 권좌에 올라서고 보면 그 ‘은혜’가 그토록 고맙게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의리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로지 권력이 인간을 비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쓸쓸하게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양 전 원장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면서 과연 국내 정치나 현안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안 보이면 잊혀지는 게 이곳 생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양정철은 칼을 갈며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주군을 지키고 차기권력도 재창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때 문 대통령도 오갈 데가 없으면 다시 ‘옛’ 사람을 찾게 될 수도 있겠지요.
최근 한 언론에 양정철 전 원장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찐한 ‘브로맨스’ 사진 한 장이 정가의 화제가 됐습니다.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과 셋이서 종로의 한 식당에서 통음을 하다 2.5단계 식사시간 제한으로 간신히 빠져나온 김태년 원내대표와 양정철 전 수석은 취중진담의 뒤끝이 남았는지 진하게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묘한 정치적 아우라와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이 언론사가 어떻게 여권의 정무 핵심 실세들의 은밀한 취중 공간을 포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사진이 ‘양정철’이라는 인물의 막강한 정치적 위상을 대변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권력의 비정함과 씁쓸함과 오버랩 됩니다. 정권 초기였다면 그가 막후를 지배하는 ‘밤의 황태자’로 보일 수 있었겠지만, 김태년 원내대표를 붙잡고 있는 장면은 권력의 동심원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한 취객의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술이 깬 다음날 아침, 양정철의 머릿속에는 어떤 생각이 맴돌고 있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