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가 16개월 영아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식지 않고 있다. 사진은 8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사진과 꽃 등이 놓여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양부모가 16개월 영아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정인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식지 않고 있다. 사진은 8일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사진과 꽃 등이 놓여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정인이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식지 않고 있다. 16개월 영아 ‘정인이’는 췌장절단 등 복부손상, 전신 피하출혈 및 7군데 이상의 골절 흔적 등이 생길 정도의 아동학대를 당하며 제대로 말도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경찰은 정인이가 살아있을 때 3차례 신고를 접수했지만 그때마다 ‘내사종결’과 ‘무혐의’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경찰의 안일함과 부실수사 논란으로 경찰청장은 결국 고개를 숙였지만 여론의 공분은 식지 않는 기세다. 경찰의 뼈아픈 실책과 수사의 ‘허점’, 그 배경을 면밀히 들여다봤다. 

“아동학대 신고를 하고 싶어서요.”

지난해 5월 25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다급한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접수한 강서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사안의 중대성을 보고 다음날 바로 경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경찰은 정인이 양부모 집을 찾아 양모 장모 씨(34)를 상대로 일단 1차 조사를 벌였고, 3일 후 신고자를 조사했다. 

신고자인 어린이집 원장 손에는 정인이가 멍과 상처를 입은 사진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간 어린이집에서 정인이 상태가 심상치 않을 때마다 직접 찍은 것들이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또 다시 양부 조사를 벌였고, 입양기관이 제출한 자료까지 분석했다. 하지만 결론은 ‘내사종결’에 그쳤다. 

2차 신고는 1차 사건이 한 달쯤 지난 후인 6월 29일에 있었다. 강서구에 한 학원을 지나던 시민이 “엄마가 아이를 차량에 방치하는 것 같다”며 강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또 다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정인이 양부모의 집을 다시 찾아 기초 조사를 벌였다. 

경찰에게 중요한 것은 증거 확보였다. 하지만 경찰은 서두르지 않았다. 신고가 들어온 뒤 10여일이 넘은 7월 10일 경찰은 당시 정인이가 방치된 차량 위치 파악에 나섰고, 해당 파악에만 무려 13일을 소모했다. 차량을 특정한 뒤, 사건이 발생한 장소 인근 학원에 찾아가 CCTV 영상을 찾았지만 이미 지워진 이후였다. CCTV 확보 외에도 차량 블랙박스 영상 확보에도 실패했다. 경찰은 결국 ‘혐의 없음’으로 사건을 결론지었다. 

3차 신고는 지난해 9월 23일에 있었다. 어린이집 원장이 “영양상태가 불량하다”, “입 안에 심각한 상처가 있다”며 정인이와 함께 소아과를 방문했다. 그간 정인이를 살펴본 소아과 원장은 정인이의 상태가 지속적 학대를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즉시 112에 신고했다. 

경찰은 또 다시 양부모 집을 찾고 정인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지만 정인이를 향한 학대 정황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당시 출동을 함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들과 현장 회의를 했고, 다른 병원에 데려가서 진료를 또 다시 받게 하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경찰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에게 “추후 필요하면 경찰에 수사의뢰를 하라”고 전달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은 양부와 함께 다른 소아과를 방문했다. 그 병원은 양부가 자주 드나들던 소아과였다. 해당 소아과는 정인이의 입안 상처를 단순한 ‘구내염’으로 처방 내렸다. 학대 정황은 이렇듯 없던 일이 됐고, 그대로 사건은 종결됐다. 

그리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13일. 정인이는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정인이는 췌장절단 등 복부 손상, 전신 피하출혈, 7군데 이상의 골절 등 끔찍한 학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의 뼈아픈 실책이 드러난 셈이다. 

경찰이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던 세 차례의 기회를 놓친 배경은 ‘책임 전가’, ‘체계적 문제’, ‘안일한 인식’ 등이 꼽힌다. 

첫 번째 신고에서 경찰이 정인이 학대의 심각성을 놓쳤던 것은 양부모와 전문기관 등의 의견을 지나치게 믿었던 요인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증거를 확보했지만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까지 양부모의 의견, 상황과 입양 기관 등의 분석을 믿을 수밖에 없다”며 “자칫 경찰 스스로 판단했다간 잘못 판단해 사건 담당 경찰관에게 부모의 민원 등 역풍이 불어오는 경우가 많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당시 양부모가 “입양 가족에 대한 편견이다”, “입양 절차는 이상 없었다” 등의 말을 믿고 사건을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 신고는 경찰의 전형적인 ‘늑장 수사’를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차량 및 장소를 특정하기 까지 수일이 걸려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경찰 내부에선 경찰의 구조적 문제를 탓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아동학대 전문 경찰관이 맡아야 할 임무가 한두 개가 아니다. 아동학대부터 가정폭력까지,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데 하나의 사건에 집중할 새가 없다”라고 토로했다. 결국 ‘정인이 사건’ 마저도 수많은 신고 사건의 하나로 처리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셈이다. 

세 번째 신고는 아동학대 사건을 보는 경찰의 ‘안일한 인식’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이미 두 차례나 신고가 됐지만 경찰은 이를 간과하고 정인이 사건을 일반적인 사건으로 판단한 뒤, 학대 정황이 없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시켰다. 이는 1차, 2차, 3차 사건 담당 팀이 모두 다른 곳이었기 때문에 오는 결과로 해석된다. 한 사건을 한 팀이 줄곧 담당하는 체계가 아니라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사건을 배당받는 팀이 달라지는 구조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사건 신고를 접수받으면 이전에 같은 신고가 있었는지 판단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다”며 “모두 다른 팀에서 처리했기 때문에 사건 처리가 미흡했다”라고 귀띔했다. 

결국 경찰은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모두 놓쳐버린 처지가 됐다. 정인이 사망 후 경찰은 뒤늦게라도 양부모에 대한 수사에 나서 양모 장모 씨를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양부 안모 씨에겐 방임 등의 혐의를 씌우기도 했다. 또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들에게 '주의', '경고' 등의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사후약방문’ 수사라는 비판과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은 여전했고, 최근 ‘정인이 사건’이 재부상함에 따라 비판은 더욱 강해졌다. 

지난해 뒤늦게라도 조치를 취했다며 '한숨'을 돌린 경찰은 이 사건이 다시 불거진 것에 대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양새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어찌됐건 다시 수사해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이것이 급부상하는 것을 보면 굉장히 당황스러운 입장”이라며 “관련 대책을 모색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인이 사건은 올해부터 시행된 수사권 조정과 경찰개혁으로 힘이 실린 경찰에게 치명타가 된 모양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이 사건이 다시 부상한 이후 수뇌부와 함께 여러 차례 회의를 하며 대책을 고심했다. 평소 ‘예방’ 정책을 강조하던 김 청장으로선 이 사건이 뼈아프게 다가왔다는 전언이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도 경찰에게 압박이 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경찰관 파면을 요구합니다'라는 청원 동의는 하루만에 20만명을 돌파하며 폭발적 반응을 보였다. 

결국 대책을 모색하던 김 청장은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특단의 결정을 내렸다. 그는 지난 6일 경찰청사에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서울 양천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해 숨진 정인양의 명복을 빈다"며 "학대 피해를 본 어린아이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 점에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김 청장은 수사의 미흡한 점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는 "초동 대응과 수사 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들에 대해 경찰 최고 책임자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바탕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경찰의 아동학대 대응체계를 전면 쇄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또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건 담당 경찰서인 양천경찰서의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처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선 이후에도 여론의 공분은 식지 않는 상황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김 청장 사과 다음 날인 지난 7일 정인이 사건에 대한 긴급 현안질의에 나서며 경찰청장을 집중 추궁하기도 했다. 

정인이 사건으로 드러난 경찰의 아동학대 부실수사 관행은 두고두고 회자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수사권 조정과 경찰개혁으로 새롭게 거듭날 것을 강조했던 경찰이 더욱 뼈아픈 쇄신과 반성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경찰청 한 고위 관계자는 “정인이 사건은 그간의 경찰 내부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라며 “책임수사와 국민신뢰를 회복한다는 올해, 전반적인 시스템 점검과 조직 쇄신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밝혔다. 

정인이 사건은 결국 경찰 손을 벗어나 검찰의 역할에 달린 모양새다. 검찰은 양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할지 검토하고 있다.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은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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