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표 단독연출론-지지율 역전 모멘텀으로 ‘통합 올인’ 메시지
청와대 연기지시론-문 대통령 부담 대신 지고 ‘야권분열’ 노림수 
친문지지층·여론 반발에 “반성 전제” 서둘러 수습···타격 불가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건의 발언을 놓고 정국이 끓어오르고 있다. 사진은 1월 1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연합뉴스와 2021년 신축년 새해를 맞아 인터뷰하고 있는 이낙연 대표.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건의 발언을 놓고 정국이 끓어오르고 있다. 사진은 1월 1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연합뉴스와 2021년 신축년 새해를 맞아 인터뷰하고 있는 이낙연 대표. /연합뉴스

2021년 신축년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론으로 술렁이고 있습니다. 추미애-윤석열 싸움으로 날을 새던 정치권이 ‘언제 그랬냐는 듯’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논란의 불씨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처음 지폈습니다. 이 대표는 1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정치권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집권여당 대표의 ‘신년사’ 헤드라인이 전직 대통령 사면으로 장식되자 그 진의를 두고 온갖 해석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친문지지세력은 ‘그 추운 겨울에 촛불 들고 투쟁한 사람들의 뜻은 무시하고 이낙연 대표가 무엇인데 자기 마음대로 범죄자의 사면을 들먹거리느냐’며 청와대에 사면반대 청원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당내 의원들도 대체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야권은 약간의 온도차가 있습니다. 국민의힘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처음 듣는 얘기’라고 말한 뒤 언급을 자제하며 신중한 태도입니다. 일각에서는 ‘전두환-노태우의 6.29’를 거론하며 야권 분열책이라고 비판합니다. 유승민 의원 등이 사면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96일 앞두고 여권이 ‘장난’을 치고 있다며 경계하는 빛이 역력합니다. 

청와대는 일단 발을 빼고 있습니다. ‘사면 건의가 있어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며 멀찌감치 떨어져 관망하는 태도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두고 여는 대체로 반대, 야는 대체로 환영이지만, 정치권의 시선은 온통 그 뒤에 숨은 ‘음흉한 의도’에 쏠려 있습니다. 정치적 논란이 거세지면서, 사면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단 두 사람만 영어의 몸에서 풀려나는 것일 뿐,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할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낙연 대표가 던진 사면은 생각보다 복잡한 ‘다차 방정식’으로 변모해가고 있습니다. 

먼저 여권의 입장에서 사면론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낙연 대표의 단독연출인지, 청와대의 연기지시인지에 따라 사면론의 성격도 이 대표의 대권행보나 청와대의 정권재창출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이낙연 대표의 단독연출론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 대표는 당 대표 직후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였지만 문재인 대통령과 지지율이 연동되며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최근에는 ‘가만히 있는’ 이재명 경기도 지사에게 계속 밀리고 있습니다. 새해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여권 차기 대선주자 경쟁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20%중반까지 지지율을 기록한 것에 비해 이 대표는 15% 안팎의 정체된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무라인은 비상이 걸렸을 것입니다. 당 대표 프리미엄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조급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대표 임기가 3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역전의 모멘텀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수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안마다 선명성 있게 이슈 파이팅을 하는 이재명 지사와 매사 몸조심하는 신중한 성격의 이낙연 대표는 정치적인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재명 무작정 따라하기’를 할 수도 없습니다. 참모들의 결론은 ‘이낙연의 장점을 극대화하자’는 것이었겠죠. 그 대표적인 것이 통합입니다. 이 대표는 2021년 신년의 리더십으로 ‘전진’과 ‘통합’을 제시했습니다. 이제부터 통합에 올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책을 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전직 대통령 사면론입니다. 

일각에서는 호남 출신의 정치적 아버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전두환 사면’을 내걸었고 이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받아들여 ‘국민통합’의 진정한 뜻을 이룬 바 있습니다. 선명성을 내세우는 이재명 지사와 차별화를 위해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걸었던 통합의 길을 이낙연의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이를 추진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이참에 중도층의 지지유입도 이룰 수 있는 나름대로의 정무적인 판단이 깔려있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당 대표로서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이것이 4월 보궐선거의 승리로 이어질 경우 중도층 흡수의 공을 자신이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사면은 다차원적인 포석으로 이용될 수 있었기에 이 대표가 새해벽두부터 작심하고 추진해볼만한 이슈였던 것입니다. 

이 대표 스스로도 이런 식으로 시간만 보내다 보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정세판단을 내렸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 대통령과의 몇 차례 독대 과정에서 사면권자가 그렇게 반대의 뜻이 없음을 읽고 이 대표가 총대를 메고 직접 추진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청와대의 반응을 보면 이 대표의 독자연출론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노골적인 반대를 읽지 않았다면 ‘묵시적인 동의’로 해석하고 신년 당 대표 메시지로 내지를 수 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반응도 이와 유사합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 언론에 “문 대통령과 사전에 교감까지 됐겠냐. 나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고위 관계자도 “나는 모른다. (하지만) 사전 교감했을 리는 없지 않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고위관계자는 “우리는 할 말이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대표가 말한 것이니 그쪽에 확인해보라고 한 것입니다. 당 대표의 사면건의에 대해 화답을 해주지 않은 이상,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모양새로 비칩니다. 청와대 안에선 이 대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을 여당 대표가 ‘승부수 던지듯’ 공론화해버리면, 그 부담은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낙연 대표가 자신의 대권행보 소재로 대통령까지 끌어다 쓴 것에 대한 불쾌감이 묻어나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3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3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 이야기는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를 청와대의 내락 없이 이 대표가 독단적으로 내지른 것이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이낙연 대표 측의 위기의식의 발로로 비칩니다. 사사건건 청와대의 사전허락을 받을 만큼 현재의 이 대표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지율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극단적인 승부수를 한 번 던져야 할 시점이라는, 절박함이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청와대의 완전한 허락 없이 사면으로 미래권력을 과시하고 인정받으려 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 대표 측은 청와대의 불쾌해하는 분위기에 대해 ‘오해’라는 반응입니다. 평소 ‘돌다리도 두드려 본 뒤 건너지 않고 망설일 만큼’ 신중한 성격의 이 대표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 문제를 청와대와 사전 조율 없이 꺼냈을 리가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이 대표의 핵심 측근은 “상식적으로 이 대표가 혼자 뭘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청와대랑 조율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이 끝나면 (사면에 대한) 청와대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당이 (미리) 일정 정도의 부담을 떠안아주겠다는 취지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여권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과 미리 얘기했다고 본다. 이 대표가 신년 인터뷰에서 사면론을 꺼낸 건 본격적인 공론화에 앞서 여론을 미리 떠보려는 측면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 측은 오히려 청와대의 총대를 대신 메줘 문 대통령의 부담을 덜게 해준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이낙연 단독연출론이 아니라 청와대의 연기지시론으로 해석됩니다. 이와 관련해 보수층 일각에서는 흥미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건의 발상이 전두환-노태우 합작품인 1987년 ‘6·29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으로 당시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 복권 등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공개 건의했고 그 결과 정치활동이 자유로워진 야권은 김영삼-김대중의 독자출마로 분열돼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36.6%를 얻어 당선됐습니다. 이를 전직 대통령의 사면론에 대입해보면 이렇습니다. 당시와 지금의 정치적 상황이 크게 다르긴 하지만, 집권여당의 ‘정치작업’으로 야권의 분열을 노린다는 큰 틀의 그림은 같습니다. 

보수층의 한 언론인은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을 올해 3.1절 특사로 사면할 경우 그것이 4월 보궐선거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친이계는 사실상 소멸했지만 친박세력은 현재 정치구조에서 볼 때 3~5%의 지분이 있는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이 사면 뒤에도 침묵할 경우 우리공화당 등의 친박세력이 탄핵 무효 등을 박근혜의 뜻으로 내세우며 정치세력화 할 수 있다. 아니면 박 전 대통령이 사면 뒤 적극적으로 정치행보를 하게 된다면 야권의 분열은 더욱 확실해진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전 정권의 실정에 대해 사과를 하긴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야권의 패배주의와 탄핵에 대해 관망하는 자세를 가진 보수층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으로 풀려나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따라 야권의 지지율 3~7% 정도는 국민의힘 지지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 핵심부가 이낙연 대표를 부추겨 사면건의를 연출하게 해서 분위기를 띄우고 이를 청와대가 추인하는 식으로 사면을 적극 추진해 두 전직 대통령을 풀어준 뒤의 상황을 상정해보면, 박 전 대통령의 정치재개 여부에 따라 야권은 분열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가 청와대의 연기지시론에 해당합니다. 청와대가 내년 대선승리뿐 아니라 20년 장기집권을 위해 야권분열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고, 그 첫 번째 전략이 바로 전직 대통령 사면추진이라는 것입니다. 

청와대는 추미애-윤석열 싸움의 후유증으로 민심이 급속하게 떠나가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실패 이후 청와대와 여권 핵심부가 지지층의 다변화를 모색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친문의 동력만으로는 문 대통령의 퇴임 출구전략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친문만의 대통령으로 문재인의 역할이 한정적으로 포지셔닝되면서 겪는 어려움을 이번에 크게 느끼고 지지층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추진한 것이 바로 사면론일 수 있습니다. 총선 압승-상임위 싹쓸이-윤석열 찍어내기로 이어지는 일방적 독주의 정치적 부담을 해소해야 할 필요성이 목전으로 대두된 것입니다. 야권에서 이번 사면을 통합의 진성성보다 대선까지를 겨냥한 정략적인 ‘선거용’으로 의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해서 가슴이 아프다고 한 적이 있기 때문에 형이 확정돼 사면 조건이 되면 대승적 차원에서 전격 추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론도 차츰 누그러지고 있습니다.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이슈가 한창이던 2017년 여론조사에선 특별사면 반대 여론이 67.6%였습니다. 2019년엔 반대 54%, 지난해엔 응답자의 56.1%가 반대했습니다. 이 가운데 자신이 중도성향이거나 무당층이라고 답한 사람들만 떼어놓고 보면 각각 73.3%, 56.7%, 46% 비율로 반대 여론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그래도 찬성보다는 더 많습니다. 이번 사면 논란이 이낙연 단독연출론이냐, 청와대 연기지시론이냐는 아직 상황을 더 관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면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게 되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이 대표가 통합을 주제로 중도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면을 건의했다면 그에 따른 정치적 실익을 얻을지 여전히 미지수입니다. 전통적인 ‘집토끼’ ‘산토끼’ 논쟁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왔다 갔다 하는 중도층보다 ‘현찰’인 집토끼에 올인하는 것이 더 낫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당장 이 대표는 친문세력으로부터 ‘조리돌림’ 수준의 난타를 당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지자들은 아예 당 대표 재신임을 거론하며 사실상 이 대표 불신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이 대표를 민주당 윤리규범 위반으로 신고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어,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발언에 대한 후폭풍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민주당 의원들의 반발과 함께 이 대표 의견에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동의 5만명을 넘어섰습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부산 서울을 세 번이나 왕복하며 촛불 든 게 아니다. 어쭙잖은 온정주의가, 제대로 한번 되지 않은 단죄의 역사가 한국사회의 병폐를 키우지 않았나. 나는 이번 생이 망했지만 내 자식은 저와 같은 사회를 물려주기 싫어 그나마 나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 대표 사면 발언은 우리 정부와 당의 개혁 의지를 꺾고 당내 분열을 일으킬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개혁대상과 내통하는 해당 행위를 한 정황까지 보여 문제가 더욱 심각해 보인다” “우리 대권주자가 아니란 걸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됐다” “국민의힘 분열을 노린 꼼수 같은데 역풍 맞았다” “역대급 자폭이다” “국면전환이 실패했다”는 등의 부정적인 평가 일변도입니다. 당 내부에서도 반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우상호 안민석 정청래 의원 등은 “지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데 이명박·박근혜의 사면복권은 촛불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이명박·박근혜의 사면복권은 국민들이 결정해야지 정치인들이 흥정할 일이 아니다”라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친문 열혈 지지층이 아닌 일반시민들도 사면에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사면을 너무 남발하는데, 두 전직 대통령은 지은 죄가 큰 만큼 사면은 안 된다. 국민 통합 메시지로는 안 보이고 대선 주자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정치적 발언 같다”는 반응이 대체적입니다.

친문지지층으로부터 신랄한 비판을 들은 이 대표는 휴일인 3일 긴급 최고위원 간담회를 소집했습니다.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지자 수습을 하려는 차원에서였지만, ‘일보 후퇴’를 위한 명분용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 대표의 사면 건의 발언 이틀 만에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이·박 전 대통령)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며 당원들 의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대통령 반성을 사면 조건으로 제시한 것인데, 두 전직 대통령이 사과나 반성을 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는 점에서 이 같은 사면조건은 사실상의 추진 철회를 의미합니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의 ‘적절한 시기 사면 건의’ 발언에 대해서는 “국민 통합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했다”고 봉합에 나섰습니다. 이 대표의 건의를 ‘충정’이라고 했지만, 최고위에서 사실상 수용 불가로 정리한 것입니다. 반성을 전제로 한 사면은 두 전직 대통령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어 문 대통령이 반성 여부와 상관없이 사면을 추진하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진전이 없을 것 같습니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신년에 작심하고 전직 대통령 사면을 꺼냈다가 지지층의 전면적인 반발에 부딪혀 이틀 만에 흐지부지 되는 것은 이낙연 대표에게 상당히 심각한 정치적 타격입니다. 청와대와의 사전 교감 아래 진행돼 문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에서 추진됐다고 해도 이번에 친문 지지층과 여론의 부정적인 기류를 확인한 이상, 일정한 명분 축적 없이 전직 대통령 사면 추진은 문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 있는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그에 따른 대가를 확실하게 치르지 않는다’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에 대해 국민들은 불편해 하고 있습니다.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이 지금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현실에 국민들은 무력감과 상실감을 느낍니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새해 벽두에 코로나19 방역대책과 무너진 서민경제에 대한 비전과 구체적 대안 마련을 위한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여주지 못하고 대권에만 눈이 어두워 사면을 미끼로 존재감을 높이려 했다는 질타를 이 대표는 겸허히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누가 진짜 우리편인지 확실하게 알게 됐다’는 친문지지층의 ‘등 돌림’이 이 대표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할 것입니다. 이낙연 대표는 공정에 대한 여론의 지점을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했던 실책을 차분히 복기해보고 정무라인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미래는 더 암울할 것입니다. 

이 대표는 3일 최고위원 간담회를 마친 뒤 기자들에게 “반목과 대결의 진영정치를 뛰어넘어 국민 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가야 한다. 그런 저의 충정을 말씀드린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죄 지은 전직 대통령부터 없었던 일로 하고 풀어주는 것이었는지, 언뜻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진영대결로 상임위원장마저 싹쓸이하며 오만한 정치를 해온 집권여당이 보궐선거를 90여일 앞두고 갑자기 통합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그리 순수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감옥에 있는 두 전직 대통령의 안위보다 더 살펴야 하는 것은 죄를 지어도 ‘권력’만 있으면 풀려날 수 있다는 유전무죄를 이번에도 확인한, 낙담하는 민심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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