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개 역 양곤 순환열차 낡아서 역 부근 시민들만 이용
중앙역 뒤편으로 대형 마켓 등 양곤 주요 건물들 포진
오후 5시. 퇴근시간입니다. 양곤 다운타운에 있는 중앙역(Central Station)에서 기차를 기다립니다. 양곤에는 순환열차가 있습니다. 양곤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기차입니다. 여기 오는 여행객들이면 한번쯤 타보는 코스입니다. 38개 주요 역을 돌고 돕니다. 3시간쯤 걸립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배차간격이 30분에서 1시간쯤이었습니다. 지금은 출근시간, 퇴근시간 딱 2번 있습니다. 직장인, 일용직 노동자, 학생, 상인들이 이 기차로 출퇴근을 합니다. 양곤 시민들은 대개 노선버스를 이용하지만 역 부근 사람들은 이 기차를 이용합니다.



중앙역 플랫폼에서 기차표를 끊습니다. 100짯입니다. 한화 80원쯤 됩니다. 버스비의 절반입니다. 코로나 비상기간이라 외국인은 탈 수 없습니다. 마스크를 쓴 탓이라 그냥 모른 체 5시 기차에 오릅니다. 낡은 객차에는 잡상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역을 중심으로 일하는 노점상들도 퇴근하기 때문입니다. 미얀마 고유의 씹는담배 꽁야, 바나나 잎으로 싼 찰밥 펫톡, 과일로 만든 간식 등. 잡상인들이 이고지고 다니며 소란스럽게 팝니다. 벤치처럼 긴 좌석에는 이제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 건설직 노동자, 학생, 직장인, 상인들이 비좁게 앉아서 갑니다. 객차 난간에는 젊은 연인들이 바깥 풍경을 내다보며 소근거립니다. 역마다 승객들이 수없이 타고 내리며 기차는 느릿느릿 양곤을 관통합니다.



미얀마에 철도가 들어온 지는 140년이 넘었습니다. 영국 식민시절 1877년 처음으로 철도가 생겼습니다. 양곤에서 삐에까지. 그 후 미얀마 전역으로 이어진 철로는 주요 교통수단이 되었지요. 하지만 좁은 철로에 기관차, 객차 시설이 낡아 심하게 흔들리고 덜커덩거립니다. 그래서 고속버스보다 느립니다. 객차들은 인도, 중국에서 온 차량들이 많고, 가끔은 한국에서 온 옛 객차도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 타고다닌 객차입니다. 재떨이 통이 달린. 그래서인지 미얀마 국민들은 먼 도시로 갈 때 기차보다는 대개 고속버스를 이용합니다. 철도교통 개선은 미얀마 정부의 오랜 숙제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일본이 철도 사업과 기술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전국 철도망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공기도 짧고, 비용도 줄이는 기술을 최근 찾아낸 것 같습니다. 제1의 도시 양곤에서 제2의 도시 만달레이까지는 일본이 완공하고, 중부 만달레이에서 북부 미찌나까지는 한국기술로 하게 됩니다. 중북부 공사는 난이도가 높습니다. 산악지대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술로 산을 가로지르는 미얀마 최초의 터널들이 생길 전망입니다. 우리는 기차가 산자락을 구불구불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곤 중앙역. 미얀마 역사의 중심이 되는 장소입니다. 전쟁 때 일본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1954년 새로 단장했습니다. 먼 도시로 떠나는 기차가 이곳에서 출발합니다. 도시에서 도시로 기차가 이어집니다. 제가 사는 만달레이도 기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중앙역에 멈춰 있습니다. 역사 뒤편으로는 양곤의 가장 주요한 건물들이 있는 거리입니다. 역을 빠져나가 역사 뒤편 거리는 보족 아웅산 스트릿. 미얀마 최대의 공예품 시장 보족 마켓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보석이나 전통공예품을 사는 곳입니다. 마켓 건너편에 양곤 최대 현대식 쇼핑몰 정션시티가 있습니다. 인기 있는 한국빵 가게도 여기 있습니다.





사거리 모퉁이에 5성급 호텔 샹글리라가 있습니다. 호텔에서 바라보면 술레 파야가 보입니다. 이 탑을 기준으로 옛 영국인들은 양곤을 구획으로 나누었습니다. 9마일 지역이라고 하면 이 탑으로부터 9마일 떨어졌다는 뜻입니다. 양곤국제공항은 10마일 지점에 있습니다. 인근에 시청이 있고 독립기념공원 마하 반둘라 파크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영화의 거리'라고도 합니다. 현대식 영화관이 3개 몰려 있고, 보족 아웅산 스트릿과 만나는 36길과 37길에는 영화, 드라마 프로덕션이 빼곡히 골목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연예인들이 드나드는 거리이지요. 활기차던 골목들이 요즘은 한산하기만 합니다.




미얀마도 현재 코로나가 급증해 심각하지만, 도시간 마을간 봉쇄조치를 풀고 일을 합니다. 국내선 항공도 건강진단을 받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속버스도 제한적으로 풀 예정이라고 합니다. 양곤 거리엔 아침이면 수많은 젊은 인파가 거리로 나옵니다. 한국계 봉제공장도 문을 열었고, 공장 앞은 수만명의 젊은 여공들이 출근을 합니다. 양곤 순환열차도 배차를 늘려달라고 시민들이 요청 중입니다. 그간 모두 지쳤지만 웃음소리를 다시 찾아가는 듯합니다. 일터의 소중함이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한 때입니다.
양곤이 어둑어둑해집니다. 순환열차는 덜커덩거리며 38개 역을 지나칩니다. 이 열차를 타고 제가 사는 만달레이 디비젼까지 가고싶습니다. 그러나 기차는 중앙역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야 할 때입니다. 기차도, 사람도, 사랑도. 자기가 살아야 할 보금자리로.
정선교 MECC 상임고문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NGO)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