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설립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인 흐름
민주당 독주 못지않게 국민의힘 무능 더 심각
실효성 없는 무제한 토론 주고받기 놀이 대신
소상공인 자영업자 국민 살릴 대책 마련할 때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87, 반대 99, 기권 1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의 거부권을 무력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87, 반대 99, 기권 1명으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내용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본회의 개의를 선언한 후 법안 최종 가결 선포까지 걸린 시간은 16분에 불과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1999년 박상천 법무부 장관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공직비리수사처’를 만들겠다고 보고한 이후 돌고 돌아 20여년만에 숙원을 이룬 셈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고성을 지르며 맞섰지만, 처리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카메라로 역사적인 장면을 촬영하고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여당은 통쾌해했고 야당은 울분을 토했습니다. 공수처가 뭐기에 이런 난리를 쳤나 허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수처 설립은 시대의 거역할 수 없는 흐름입니다. 그럼에도 여야의 엇갈리는 장면을 접하면서 ‘정치의 존재 이유’에 대해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공수처 설립은 한국 정치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권력기관의 구조를 재편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엄청난 후폭풍과 변화를 이끌어낼 것입니다.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은 독재시대의 권력기관이 어떻게 괴물이 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권력기관의 무자비한 고문이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의 문을 열게 했습니다. 하지만 독재시대가 끝나고 민주화 시대가 도래했지만 권력기관의 개혁과 재편은 여전히 미제로 남았습니다. 1987 민주 항쟁이 미완의 혁명으로 남아 있다는 해석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민주화 시대가 열렸음에도 권력기관은 각 기관의 조직 이익, 권력 편의에 따라 국민의 뜻에 반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권력에 영합하며, 때로는 권력을 두드려 잡으며 기득권을 유지해왔습니다. 권력을 감시하는 기관이 제대로 기능했다면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 사태 같은 헌정을 뒤흔드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개혁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검찰은 그동안 외부의 개혁시도에 대해 신출귀몰한 대응으로 그 기득권을 유지해왔습니다. 2011년 여야가 검찰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국회 사법개혁특위 6인소위 의원들이 대검 중앙수사부를 폐지하고 특별수사청을 신설하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검찰의 대응은 초전박살 그 자체였습니다. 소위가 중수부 폐지 등 합의사항을 발표하자 중수부는 닷새 만에 저축은행 비리 수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언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저축은행 수사가 여론을 장악했습니다. 저축은행 피해자들까지 대검을 찾아 ‘중수부 폐지 반대’를 외치는 상황이 됐습니다. 국회의 검찰개혁 시도는 물 건너가고 중수부 폐지는 흐지부지돼버렸습니다. 

2012년 11월 검찰은 또 다시 궁지에 몰렸습니다. 검사들의 잇단 뇌물·성추문 등으로 퇴진 위기에 몰린 검찰총장은 다시 중수부 폐지 등 개혁안을 검토하며 대응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중수부장 등 부하 검사들이 몰려가 “물러나라”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선배인 한상대 총장이 물러났고 중수부 폐지는 없던 일이 됐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도 현직 대통령의 대선자금까지 파헤친 중수부의 성역 없는 수사가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얻으면서 검찰개혁의 시기를 놓쳤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는 권력과 검찰 간 일종의 ‘밀월’ 기간이었습니다. 권력에 아부하는 검사들을 승진시켜주고 서로 손뼉을 마주치다가 임기 말쯤에 검찰이 힘없는 권력을 조지면서 기득권을 유지하는 패턴이 반복됐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의 실패와 보수정권의 어긋난 ‘오월동주’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출범 직후부터 검찰개혁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었습니다. 조국-추미애로 이어지는 ‘검찰대전’은 우리가 최근 2년 동안 목도한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그 기나긴 권력과 검찰의 드잡이질이 2020년 12월 10일 드디어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정치권의 우려도 높습니다. ‘민변’ 공수처가 돼 문재인 정권 사람들의 비리는 눈 감아 주는 방패막이가 될 것이라는 야권의 심각한 문제제기가 나옵니다. “민주주의 없이 검찰개혁도 없다”고 일갈하며 나홀로 기권표를 던진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소신은 독선 무한질주가 지배하는 국회의사당에서 홀로 빛나는 보석이었습니다. 야당의 비토권(거부권)을 없앤 공수처 개정안은 오로지 공수처장의 양심과 자의적 판단에 따라 권력자에 대한 비리수사의 선택권이 놓이게 된 미완의 개혁안입니다. “20대 국회에서 공수처법을 통과시킬 때 공수처의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의 핵심으로 여겨졌던 야당의 거부권(비토권)을 무력화하는 공수처법 개정안은 ‘최초의 준법자는 입법자인 국회여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라고 주장한 장혜영 의원의 신선한 질책을 여당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크고 작은 파열음이 있었지만, 검찰개혁이라는 대의를 위한 공수처의 설립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민변’ 공수처라는 비판 목소리가 높지만, 1987년 이후 30여년 동안 검찰이 그들의 편의대로 마구잡이 권력을 행사해 정치를 혼란에 빠뜨린 것 이상의 후유증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왕적 권력구조에 대해 감시하고 경계하는 도도한 정치적 물결을 대통령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이후 정권의 권력형 비리가 드러난다면, 그것에 대해 단죄하라는 국민의 언명을 공수처장이 자의적 판단으로 무력화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정권의 입맛에 맞는 충직한 아부형의 공수처장이 임명돼 노골적인 ‘편 가르기’ 수사가 진행된다면 그 자체로 또 다른 민심의 역풍을 맞을 것입니다. 공수처 설립 뒤 잇단 폐해가 드러난다면, 정권이 바뀔 때 공수처에 대한 ‘재개정’ 바람이 불 수도 있습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이날 필리버스터는 10일 0시 정기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종결돼 실효성이 없는 대응이었다는 비판을 들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이날 필리버스터는 10일 0시 정기국회가 끝남과 동시에 종결돼 실효성이 없는 대응이었다는 비판을 들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야당의 필리버스터 때 보란 듯이 검찰개혁에 관한 책을 펴놓고 읽는 남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습니다. 공수처가 통과되자 환하게 웃기도 했습니다. 오로지 한쪽만 바라보는 애꾸눈 정치인의 알량한 리액션에 서글픔이 들기도 합니다. 농성을 하는 야당 의원들의 ‘한 마디’에 불뚝성질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지르며 ‘발설자 나오라’고 소동을 벌인 정청래 의원의 ‘관종’ 액션도 ‘99채 집 가진 사람이 한 채 가진 사람 것까지 가져 100채를 채우려는’ 탐욕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20여년 걸려 드디어 공수처를 설립한 것에 대해 남다른 기쁨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박수 치고 카메라로 촬영을 하며 환호작약을 해야 할 일인지는 의문이 듭니다. 그러기에는 현재 민주당 앞에 놓인 ‘숙제’들이 너무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공수처 개정안이 통과된 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 천벌 받을 독재정당에 하늘이 분노한다”고 부르짖었습니다. 무기력한 야당은 법안 통과를 지켜만 볼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야당은 문재인 정권의 ‘독재 가도’를 너무도 쉽게 내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단일대오로 똘똘 뭉쳐 투쟁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시국에서 현 지도부는 전략 부재와 불협화음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공수처 개정안이 통과되던 10일 ‘태극기 세력’으로 불리는 보수단체들과 정당들의 연석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주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을 조기 퇴진하고 폭정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데 다른 생각을 가진 분이 없는 걸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정권퇴진 비상시국연대’의 공동대표도 맡았습니다. 그런데 ‘동석’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구시대 극우 인사들이 많습니다. 이 결사체는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주도했습니다.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 지사, 보수 논객 정규재 팬앤드마이크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했습니다. 여론과 맞지 않는 엉뚱한 주장입니다. 이재명 경기도 지사는 ‘퇴진은 님들이나’라고 쏘아붙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그동안 ‘태극기 부대’와 선을 그었던 국민의힘에 대한 서운한 목소리도 나왔다고 합니다.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주호영 원내대표가 여기에 참석한 것입니다. 국민의힘은 4·15 총선 이후 보수단체들과 선을 긋고 장외투쟁에 거리를 둬왔지만 이번 민주당의 공수처 법 등 쟁점 법안의 단독 처리를 계기로 이들 보수세력과 연대의 물꼬를 트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도 의견이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당은 당의 할일이 따로 있고, 외곽의 시민단체는 시민단체 나름의 할일이 있다. 혼돈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합니다. 김 위원장은 “범야권연대 개념을 가지고서 투쟁을 할 수는 없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습니다. 보수우파를 아우르는 ‘반문연대’로는 대선 전초전이 될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도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호영 원내대표는 ‘태극기 부대’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시국연대에 참석했습니다. ‘포스트 김종인’을 염두에 둔 정치적인 행보였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외곽에서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 당의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박근혜 탄핵 등에 대해 사과하는 등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입니다. 홍준표 이재오 정규재 등과 이름이 섞이는 순간 국민의힘은 또 다른 나락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민주당의 독주도 문제이지만 국민의힘의 무능이 더 심각합니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은 1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초선 의원 58명은 오늘부터 전원 철야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전날 “야당의 의사를 존중한다”면서 투표를 통한 필리버스터 종결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총력 투쟁을 선언한 것입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시대정신과 맞지 않는 보수우익의 모임에 참가한 것도 문제이지만, 공수처 일방처리에 항의해 의원들이 너도 나도 필리버스터를 하는 것도 투쟁을 위한 투쟁으로 비칩니다. 오죽했으면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도 11일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대해 “회기 계속의 원칙을 채택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법안 통과 지연 정책일 뿐이다. 야당이 필리버스터 쇼라도 해야 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상황까지 오게 만든 여야 지도부의 정치 협상력이 참 아쉽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겠습니까. 

공수처 통과 과정에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유명무실했습니다. 뚜렷한 전략도 없었습니다. 국민의힘은 당초 공수처 개정안 통과 저지 투쟁 수단으로 필리버스터를 기획했습니다. 하지만 정기국회가 끝남에 따라 3시간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국정원법 개정이라는 엉뚱한 법안으로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애초 필리버스터가 효과적인 대응수단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공수처 개정안도 통과되고 투쟁이 종료되어야 함에도 엉뚱한 국정원법을 붙잡고 투쟁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필리버스터 선언을 하자 한 달가량 걸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국민 수준을 못 따라오는 정치집단”이라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주당도 필리버스터를 둘러싸고 꼼수를 부려 소중한 국정운영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비판을 듣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야당의 의사표시를 충분히 보장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종결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민주당은 본회의에서 공수처법 등을 180명을 훌쩍 넘는 찬성으로 의결했기 때문에, 국민의힘의 국정원법 개정안 필리버스터를 24시간이 경과한 뒤에 종결을 시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자체는 마치 야당의 발언권을 존중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당도 국정원법 개정안에 대해 함께 필리버스터를 요구하고 토론에 나서기 때문입니다. ‘1번’으로 나선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8시간 45분간 이어진 뒤 끝나자, 김병기 민주당 의원이 필리버스터에 나섰습니다. 이후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 홍익표 민주당 의원, 김웅 국민의힘 의원, 오기형 민주당 의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김경협 민주당 의원 순으로 필리버스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는 다수당이 통과시키려는 법안에 대해 소수당의 ‘합법적 의사진행방해’ 수단으로 보장된 필리버스터 제도의 본래의 취지에 한참 어긋나는 비 신사적이고 비 상식적인 오만한 행태입니다. 필리버스터 제도가 유래한 미국의 경우에도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다수당이 필리버스터를 통해 소수당이 혼자 마이크를 잡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다며 함께 필리버스터에 나서는 경우는 전무합니다. 거대한 집권여당이 소수당에 보장된 장치인 필리버스터를 함께 하겠다며 토론자까지 선정한 것은 오갈 곳 없는 야당을 그대로 방치한 채 농락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의 금도와 상식을 깨고 국회를 유린하는 민주당의 이런 오만은 공수처 개정안 통과라는 검찰개혁의 성과를 퇴색시키는 행태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이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이날 여당의 필리버스터 참여는 국민의힘 초선의원 전원이 필리버스터 투쟁을 이어가기로 한 데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이 11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다. 이날 여당의 필리버스터 참여는 국민의힘 초선의원 전원이 필리버스터 투쟁을 이어가기로 한 데 대한 대응 차원이었다. /연합뉴스

 

민주당이 더 비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과연 그들이 한가하게 지금 야당과 함께 필리버스터 놀이를 할 때인가 하는 것입니다. 겨울에 들어서면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확산세로 돌아섰습니다. 특히 지난 12월 1일부터는 하루 5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해 정부는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격상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3차 대유행은 피해가기 어려운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시간 날 때마다 자화자찬했던 ‘K방역’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잇따라 지적합니다. 경제와 방역 두 개를 다 잡기 위해 위험한 줄타기를 해왔지만 이것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런 상황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더 심각한 것은 파탄지경에 이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정부의 급선무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문제를 여야가 밤새워 국회의사당에서 토론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인데, 그들은 국정원법 개정을 두고 메아리 없는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습니다. 국정원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국정의 우선순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K방역의 요체는 거리두기 강화와 집합 금지 명령입니다. 이것마저도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카페에서 죽을 팔고, 음식점에서 샌드위치 먹는 건 되고 카페에서 빵 먹는 건 안 되는 중구난방식입니다. 대충 정해 놓고 그냥 따라오라고 합니다. 무조건 문 닫으라고만 하지 어떻게 해주겠다는 대안은 없습니다. ‘직장인들, 공무원들만 편한 세상이다’라는 불만이 터져나올 법도 합니다. ‘자영업자들은 총알받이냐’는 호소를 귓등으로 듣습니다. 탁상행정에서 나올 법한 거리두기 강화와 집합 금지 명령으로 인해 자영업자, 알바 노동자, 소상공인 등은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굶어죽게 생겼습니다. 감염 위험 속에서도 시민들에게 물자를 나르고 있는 쿠팡맨과 배민라이더 등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고충도 큽니다. 사실 정부가 K방역이라고 자화자찬 할 때가 아니라 서민경제의 파탄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겨울이 코로나19 사태의 최대고비라고 말합니다. 그럭저럭 백신이 상용화되고 치료제가 널리 보급될 시기가 되면 위기도 진정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번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은 금세 회복이 되지 않습니다. 수십년 든 보험 적금을 깨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온갖 대출을 받아놓았다면 그것이 한두 달 사이에 회복이 되지는 않습니다. 국회의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밤새 이 문제를 토론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전략의 맹점도 여기에 있습니다. 공수처 개정안 통과는 지난해부터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며 온갖 난리를 쳤던 사안입니다. 총선으로 이에 대한 국민의 입장은 명확해졌습니다. 통과가 시대정신입니다. 절차상 문제를 따질 수는 있지만 그마저도 검찰권력의 폐해와 검찰개혁의 실기를 생각하면 그다지 큰 결격사항은 아닙니다. 국민의힘이 공수처 개정안 통과를 협상 매개로 해서 소상공인 자영업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처우개선 등에 관한 정책을 내놓고 여당과 협상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어땠을까요? 국민들 모두를 아우르는 각각의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조치를 야당이 깊게 고민하는, 국정운영의 대안을 실력으로 제시하는 장면을 연출했다면 어땠을까요? 

독일은 1조 유로(약 1300조 원)가 넘는 재원을 투입했는데 그중 8570억 유로를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기업들에 대한 금융 지원금으로 썼다고 합니다. 소상공인들에게는 1560억 유로만큼의 현금성 지원을 했습니다. 지금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 현금만큼 절박한 것은 없습니다. 백신이 나오기 전 마지막 방역의 한계 앞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는 자영업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이 있어야 합니다.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임대료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착한 임대인’ 세액공제보다 좀 더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영세 소상공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조치가 우선이고 다른 조치는 지금 국면에서 배제해야 한다. 백신이 나오고 접종할 때까지 경제적 파국을 막기 위해선 소상공인 우선, 사각지대 없는 금융 및 현금 지원이 필수”라고 지적합니다. 

또한 일각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일시적 위기 극복을 위한 재난지원금 지급은 가능하되, 중기적으로는 경사노위의 합의 아래 일정 부분 기존 노동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연대기금을 조성하자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뉴딜의 사회계약’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통분담을 어떻게 해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이런 일의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국회입니다. 공수처 개정안 통과에 목멘 여당은 그렇다 쳐도 야당이라면 집권세력이 놓친 부분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가하게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는 야당을 향해 “한 석 달 더 해라”는 비아냥이 쏟아지고 있는 민심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정치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지금과 같은 사상초유의 코로나19 비상상황에서 정치가 과연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여야 번갈아 사이좋게 필리버스터 놀이를 하며 세비를 축내고 있는 의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김훈 작가는 9일 끝난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소위원회의 안건으로조차 채택되지 못해 안타까운 심정을 최근 글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내가 이 답답한 글을 쓰는 동안에도, 지식인·분석가·활동가들이 TV에 나와서 이 문제로 특집좌담을 하는 동안에도, 국회에서 권력의 지분을 놓고 악다구니를 하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은 고층 공사장에서 떨어져 죽고 있다.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이 한 덩이의 물체로 변해서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땅에 부딪쳐서 퍽퍽퍽 깨진다.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이라고 썼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문제는 없습니다. 산업현장에서 떨어져도 죽고, 코로나19로 장사를 하지 못해 부지기수의 서민들 삶도 추락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고통과 설움을 모르는, 공감결핍 중환자들인 정치인들에게 선거 때마다 한 표를 주는 국민들이 불쌍합니다. 마스크 쓰라면 쓰고 문 닫으라면 꼬박꼬박 닫는 서민들이 서럽습니다. 지금도 국회의사당에서는 잘난 국회의원들이 법 알기를 우습게 알며 공허한 필리버스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저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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