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의 심리학
원시시대 사바나초원에서 살던 우리 조상들에게는 몸짓(body language)이 말보다 생존에 훨씬 중요했다. 물론 언어가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은 어떨까? ‘메라비언 의사소통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심리학자로 UCLA 교수였던 메라비언은 우리는 의사소통을 할 때, 말의 내용(7%)보다는 시각적 요소(55%)나 청각적 요소(38%)에 크게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변함없이 표정, 제스처, 신체 움직임, 신체접촉 등 비언어적인 소통에 더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인은 ‘양복 입은 원시인’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악수는 대표적인 몸짓언어 중의 하나이다. 현대인의 일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에티켓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악수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악수하는 모습 하나만 봐도 그 사람의 내면 심리 상태를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에게 가장 친숙했던 두 명의 정치인,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김대중 전 대통령(DJ) 두 분을 예로 들어 보자. 영원한 동지이자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김영삼과 김대중. 두 사람을 빼놓고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논할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일반적인 미국인들은 두 사람의 존재를 전혀 모를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이 두 분이 서로 악수하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친근한 정도를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 그 답은 보디랭귀지 즉 몸짓언어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답안과 일치할까?
나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YS와 DJ를 잘 모르는 한국의 젊은이들, 그러니까 요즘 대학생 수십 명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고 두 사람이 친근해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물었다. 예상대로 대부분의 학생이 친근해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학생들의 대답은 틀렸다.
그들은 '악수'라고 하는 신체 언어에 담긴 심리적인 의미를 제대로 모른다. 악수는 '반갑다' '잘해 보자'고 친밀감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악수는 적당한 거리(45cm~60cm)에서 편안하게 해야 한다. 양손은 살짝 적당한 힘으로 맞잡되, 손바닥끼리 밀착해야지 서로의 손끝만 잡아서는 안 된다.
특히 신체의 '파워 존(power zone)'은 상대방을 향해야 한다. 파워 존이 어디냐고? 우리 몸의 파워존은 목 한가운데 넥타이 매는 지점과 배꼽 그리고 생식기 부분을 일직선으로 잇는 선이 자리한 구역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파워존이 자신이 호의를 가진 사람을 향한다.
특히 악수할 때 파워존은 상대방을 향하게 하는 것이 예의다. 악수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시선이나 파워존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둘 중에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이제 사진에서 YS와 DJ 두 분의 시선과 파워존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라. 두 사람은 집회 장소에 모인 대중들과 카메라 기자들을 의식한 듯 활짝 웃고 있다. 하지만 양손은 살짝 손끝만을 스치듯이 잡고 있고 시선은 아예 맞출 생각도 없고 파워존도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
인동초(忍冬草)라는 별명을 가졌던 DJ.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YS. 두 사람은 수레바퀴처럼 험난한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운 공동운명체였지만, 개인적으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사진 한 장이 잘 말해준다.
한편 악수를 하면서 시선을 맞추려고 하면 자연히 몸은 일직선이 된다. 한국처럼 손윗사람에게 90도 목례를 깍듯이 해야 하는 경우에는 악수 전에 목례를 빨리 끝내고 악수를 하는 동안에는 시선을 맞추어야 한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 방문을 수행했던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은 다른 일행들과는 달리 김정일에게 목례를 하지 않았다. 그는 반듯하게 허리를 세운 자세로 악수를 해서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국의 안보를 책임진 국방부 장관으로서의 자존감이 이른바 북한의 ‘최고 존엄’에 고개를 숙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 방한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경우는 어떨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왕 부장은 일국의 외교를 총괄한 수장이라는 품격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사람이다. 그것도 지구상에서 미국과 자웅을 겨루는 유일한 열강으로 꼽히는 중국의 외교 총책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그렇다.
개인적으로 매우 친근한 사이이거나 아랫사람의 경우에는 오른손으로 악수를 하면서 왼손은 상대방의 손등을 만질 수도 있다. 왼손이 움직이는 범위는 친근도에 따라 확대된다. 친할수록 왼손은 상대방의 아래팔에서 위팔로, 어깨까지 심지어는 머리를 만질 수도 있다.

동년배로서 한때 한국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라이벌 나훈아와 남진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들은 사진기자들을 위해 다정한 자세로 악수하는 포즈를 취했다. 나훈아의 왼손은 남진의 팔을, 남진은 왼손은 나훈아의 팔을 만지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20세가량의 연배를 뛰어넘어 남다른 우정을 자랑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오바마 전 대통령의 경우 악수를 할 때 상대방의 팔이나 어깨를 만지는 것은 물론이고 머리를 가리키거나 살짝 만지면서 서로의 머리가 이전보다 더 세었다는 등의 농담을 하기도 했다.
국가 간의 규모나 국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가원수끼리 혹은 각료들끼리 악수할 때는 악수하는 사람의 왼손이 상대방의 다른 손이나 팔을 만질 수는 있다. 단, 그것은 분명히 외교 의전상 동급이거나 매우 친밀한 사이인 경우로 한정된다. 물론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왕 부장의 행동은 일반적인 관례를 벗어나는 경우가 많아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중국의 외교부장은 다른 나라의 외무부 장관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왕 부장은 다른 나라 각료들과는 격의 없이 악수를 하면 된다.
하지만 외교부장으로서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를 대할 때에는 조금은 신중하게 처신하는 게 맞는 예법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푸틴,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 등 상대국 국가원수를 만날 때도 예외 없이 왼손으로 상대방의 팔을 잡는다. 왕 부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이나 자국의 국가 원로들을 만날 때도 과연 그런 모습을 보일까?

왕 부장의 오만한 행태는 국제무대에서 이미 유명하다. 왕 부장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당시 케리 미 국무장관이 회담장에 지각했다고 오른손으로 어깨를 감싸고 왼손으로 손가락질까지 한 적이 있다. 사드 배치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당시 윤병세 외무부 장관에게도 손가락질을 하며 반박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왕 부장은 지난 2017년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문 대통령이 그의 팔을 만지자 자신을 하대(下待)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돌아서서 다른 사람과 악수하러 가는 문 대통령의 팔을 대통령의 등 뒤에서 소리가 툭하게 날 정도로 치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 외교 결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문 대통령 방중에 수행했던 송영길 의원은 며칠 뒤 시진핑 주석이 주최한 국빈만찬장에서 시 주석과 악수를 하면서 시 주석의 팔꿈치를 터치한다. 그리고는 송 의원은 중국 측에서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왕 부장이 문 대통령의 팔을 툭 하는 소리가 날 만큼 친 행동이 결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중국 측이 문제로 삼지 않았으니 결례가 아니라는 송 의원의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가 송 의원의 터치를 문제 삼는다면 마찬가지 논리로 왕 부장의 결례가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할 것이다. 이런 사태를 모를 리 없는 중국 정부가 대충 ‘퉁치고’ 넘어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왕 부장의 이러한 고약한(?) 버릇은 2019년 그가 방한해서 문 대통령의 접견을 받을 때도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는 문 대통령과 악수하면서 또 왼손을 대통령의 팔에 갖다댄다. 그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전근대적 중화사상이 뼛속까지 깊이 새겨진 모양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얼마 전(2020년 11월) 방한한 왕 부장은 강경화 외무장관과의 회담에 20분이나 지각했다. 그런데도 정중하게 사과를 하기는커녕 교통체증 때문이라고 둘러댔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출발했다고 말한 시각에 숙소에 머무르고 있었다. 미국 국무장관이 지각했다고 손가락질까지 했던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이번에 왕 부장은 강경화 장관을 만나면서 코로나 시국임을 고려해 악수 대신에 팔꿈치를 서로 갖다대는 인사를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접견을 받을 때도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그랬던 것처럼 팔꿈치 인사로 악수를 대신하려 했다. 문 대통령이 손을 내밀자 당황해하면서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바람에 평시처럼 왼손을 문 대통령의 팔에 갖다대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난 2013년 3월 중국의 국가주석직에 오른 시진핑은 그해 10월 주변국과의 외교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주제로 한 회의의 연설에서 4자로 된 키워드를 제시한 바 있다. ‘친성혜용(親誠惠容)’이 그것이다. 주변국과 친하게 지내고(親), 성의를 보이고(誠), 혜택을 주고(惠), 포용한다(容)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자신들의 ‘대국굴기(大國崛起)’ 즉 중국이 최강의 대국으로 우뚝 선다는 야심 찬 목표에 이미 혼이 팔린 상태인 것 같다. 정치적 예의, 외교적 품격 따위는 안중에 없다. 시진핑의 중국은 등소평이 강조하던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덕목은 이미 잊어버린 듯 세계 곳곳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외교관들은 프로토콜(protocol, 의전 절차)에 살고 프로토콜에 죽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식적인 행사는 물론이고 사적인 만남에서도 외교관이라면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일거수일투족에 예의와 품격을 유지해야 한다.
평생을 외교관으로 살아왔고 2013년부터 중국 외교부장으로 재직해온 왕 부장이 이를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무례하고 오만한 태도가 고쳐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방한한 그의 몸짓에서 고려를 방문한 몽골제국(원)의 사신, 조선을 방문한 명·청 사신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보디랭귀지를 이야기하려다 말이 옆길로 많이 샜다.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도 악수할 때 무심한 편이다. 결례를 무릅쓰고서라도 상대방에 대한 호불호를 표현하여 의사소통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분들이 아니라면, 왕 부장과 같은 모습은 자제가 필요할 것 같다.
김진국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
대학, 언론, 정부부처, 공기업 등에서 근무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서고금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 기반으로 한 융복합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심리학적으로 해석한다.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및 동 대학원을 비롯한 국내외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를 했다. 심리학자, 의학사, 의학석사, 대체의학박사(수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