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언박싱] 김 위원장 사과 감읍한 여권, '계몽군주' 운운 칭송 분위기로 급변
대통령, 야당 압박에 마지못한 모양새로 1주일만에 유가족‧국민에 사과 발언
유시민 이사장은 정권 나팔수 논란…‘안보 정쟁화’ 작정한 ‘도발’이자 편가르기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제7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 군인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 후 시신이 훼손된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육군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제72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석, 군인들의 경례를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사살 후 시신이 훼손된 사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연합뉴스

 

민간인(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후 시신 훼손 사건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는 사건 초기 우리 국민이 북한에 붙잡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적극적인 구명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 뒤 여론은 매우 격앙됐고 국제사회에서도 북한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례적으로 과감한 사과를 하며 진화에 나섰습니다. 바로 이 김 위원장의 ‘사과’ 하나가 한국 정치권에 또 다른 논란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팩트는 우리 국민이 해상에서 떠돌다 이유 없이 북한에 총살을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사과 한 마디에 그 무고한 죽음은 온데간데없어졌고 김 위원장의 사과에 ‘감읍’한 여권은 ‘계몽군주’ 운운하며 칭송을 하는 분위기로 급변했습니다. 망자에 대한 애도나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정부가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민간인 참살이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프레임으로 치환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론은 정부의 ‘국면전환 시도’에 호락호락 넘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재발방지는 물론 정부의 단호한 자국민 보호 의지와 안보에 대한 원칙 재확인을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여론조사입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긍정평가)은 44.7%까지 하락하고 부정평가는 3주 연속 50%를 웃돌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과 국민의힘 지지율도 동시에 내렸습니다. 북한이 서해상에서 우리 국민에 총격을 가해 살해한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는 YTN의 의뢰로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전국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전주에 비해 1.7%포인트 내린 44.7%(매우 잘함 23.7%, 잘하는 편 21%)를 기록했다고 28일 밝혔습니다. 좀 더 숙성된 데이터가 필요하겠지만 일단 사건 초기 정부 대응과 문재인 대통령의 불명확한 위기관리 대처능력에 대해 여론의 지점은 부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여론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은 여권이 이번 사건을 안보와 자국민 안전의 관점이 아니라 오로지 남북관계 일변도의 정략적인 접근을 경계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김종대 정의당 한반도평화본부장은 북한 함정을 격파했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24일 TBS 라디오에 출연해 “합동참모본부가 상황을 기민하게 파악했다면 군 대응 원칙에 따라 우리 주민을 사살하고 불에 태운 그 함정을 격파했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남북관계에 관해 평소 전향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김 본부장마저도 이번 사건의 성격을 북한의 국민 참살 사건으로 규정해 무력대응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입니다. 적진에 있는 자국민을 특전사를 동원해 데려오지는 못하더라도 대북 긴급채널을 통해 생명을 살리려는 최소한의 시도는 했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합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무고한’ 죽음이 북한의 비인도적인 처사인 것으로 확연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여론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문재인 정권은 최고 국정과제는 바로 국민의 안전이라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습니다. 지난 25일 이천 특수전사령부에서 열린 국군의날 행사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통령의 메시지는 한낱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극한 상황이 발생하면 국민의 안전 최우선 원칙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여론이 격앙된 것은 문재인 정권의 ‘말로만 안전’이라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 통지문 한 장을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가면서 어느새 국민의 죽음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정부여당이 김 위원장의 예기치 않은 사과문 한 장에 호들갑을 떨었던 것입니다. 여론과 따로 노는, 기강이 해이해지고 오만해진 집권여당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죽했으면 민주당 내부에서도 “25일 북측 통지문 도달 이후 당내 메시지가 국민 정서보다 너무 앞서간 측면이 있었다. 남북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번 사건에 분노한 국민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북한의 공동조사 불응으로 사과문 효과는 하루만에 사라졌고 정부도 좀처럼 식지 않는 여론의 분노를 접하고 뒤늦게 진화에 나선 모양새입니다. 27일 오후 김영진 원내수석은 기자 브리핑을 자처해 “민주당은 이번 사건에 대하여 단호하면서도 냉정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의 비무장 우리 국민에 대한 총격에 대하여 단호히 규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지문 도달 뒤 나온 북한 찬양 분위기가 톤다운 된 것입니다. 

이낙연 대표도 신중 모드로 돌아섰습니다. 북한 통지문 도달 뒤 반색하며 의미를 부여했던 것과 달리 “관련되는 제반 문제를 남북이 공동으로 조사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안을 북측이 신속히 수용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습니다. 전해철 국회 정보위원장도 “(북측 통지문은) 서해교전(제2연평해전) 이후 전례가 없는 것으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1차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에 환영 일색의 반응을 보였지만 그 뒤 여론이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북한에 공동조사를 공식 요청하며 수습에 나선 것입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국민 여론 악화를 우려하는 당내 기류가 다시 ‘북한 규탄론’으로 일부 선회하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바로 이런 점이 문재인 정권의 안보관에 대해 의구심을 보내게 되는 단초가 됩니다. 특히 안보문제에 있어서 원칙대로 대응하지 않고 여론의 추이에 따라 널뛰기 대응방식을 보여준다면 어떤 국민이 안심하고 국가의 안전을 맡기겠습니까. 

문재인 정권이 이번 사건을 ‘국민 참살 사건’으로 규정하고 처음부터 원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오락가락 한 것은 향후의 남북관계에서도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이번 사건처럼 돌발변수가 발생했을 때 자국 이익 우선이 아니라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에 순치된 저자세 대응을 계속할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안전의 원칙이 무너지는 남북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문재인 정권은 먼저 이런 국민들의 의구심에 대해 명확한 입장과 원칙을 내놓아야 합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5일 10.4남북정상선언 13주년 기념 특집 LIVE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 이사장은 우리 공무원이 표류 도중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사건에 대해 김 위원장이 통지문을 보내 사과한 것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을 '계몽군주'에 비유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노무현재단LIVE화면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25일 10.4남북정상선언 13주년 기념 특집 LIVE에서 발언하고 있다. 유 이사장은 우리 공무원이 표류 도중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사건에 대해 김 위원장이 통지문을 보내 사과한 것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을 '계몽군주'에 비유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노무현재단LIVE화면 캡처

 

두 번째로 살펴야 할 대목은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정권 나팔수 논란입니다. 유시민 이사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계몽군주’에 비유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유 이사장은 지난 25일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된 10·4 남북정상선언 13주년 기념행사에서 김 위원장이 통지문을 보내 사과한 것을 언급하며 “우리가 바라던 것이 일정 부분 진전됐다는 점에서 희소식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 스타일이 이전과는 다르다. 제 느낌엔 계몽군주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간인을 사살한 뒤 사과문을 보냈다는 이유로 ‘계몽군주’에 비유한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일부 진보진영에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비무장 민간인 사살이라는 초유의 사건에 대한 의미보다 그것을 둘러싼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비판을 듣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의 사과는 남북관계 파국을 막는 단초를 제공하긴 했지만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가 우선돼야 할 시점에서 경솔한 발언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정의당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이 원칙을 갖고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유 이사장의 발언은 ‘안보 정쟁화’를 작정하고 불러일으키는 의도된 ‘도발’이자 편가르기입니다. 국민의힘은 “(김정은의) 무늬만 사과에 감읍하며 계몽군주라고 칭송하는 나라, 이게 나라냐”(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고, 국민의당은 “북측 입장을 대변하는 언행은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정서에 눈을 감은 한심한 작태”라고 성토했습니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26일 SNS에 “문재인 안보실장(서훈 국가안보실장)이 북한에서 보낸 전문(‘청와대 앞’)을 감격해서 읽어주는 황송스러운 모습은 김정은 하수인이거나 노예 같았다”고 적었습니다. 

유 이사장은 야당의 반발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가장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하며 이번 사건의 의미를 ‘김정은 사과’와 종전선언 등의 남북관계 진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유 이사장이 사회학을 전공한 ‘지식 디자이너’답게 김 위원장의 리더십을 ‘계몽군주’ 관점에서 비교한 것이 흥미롭다는 일부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 이사장은 지금 누구보다도 가장 핫한 ‘정치인’이자 여권의 톱 이데올로그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로 여권의 대응기조가 정리되고는 합니다. 그는 탁월한 정국 분석능력과 여론을 예리하게 읽는 촉수를 가진 전략가로 손꼽힙니다. 그래서 여권에서도 그의 활약을 이심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 관계자가 공개적으로 하지 못하는 말들이 유 이사장을 통해 흘러나오는지도 모릅니다. 유시민 이사장은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를 자주 자신의 알릴레오 프로그램에 불러 여권의 대응기조를 정리하고는 했습니다. 그가 정부핵심 인사들과 직간접 채널을 통해 소통을 하고 있다는 정황도 있습니다. 장외에서 정권의 백업 역할을 하는, 고도화된 정치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을 ‘계몽군주’로 치켜세운 것은 종전선언의 정지작업을 하면서 남북관계 분위기를 호의적으로 만들고 국민여론도 사전에 떠보려는 이중적인 포석이 깔려있다고 봅니다. 유 이사장의 한 마디에 친문세력을 중심으로 이번 사건을 ‘월북 과정에서 일어난 피격’ 정도로 규정하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래지향적인 남북관계를 위해서 어처구니없이 희생된 해프닝을 정쟁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의 죽음마저도 남북관계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이런 기조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면 북한은 제2, 제3의 도발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군주’ 김정은이 갑자기 또 바뀌어 남북관계를 대결국면으로 몰고 간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유 이사장은 김 위원장을 명석하고 변화에 능동적인 군주로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의 군도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국가 안보는 친문과 민주당의 것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 모두의 것입니다. 여야가 그런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안보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여론을 몰아가 사태를 호도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사유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안보는 진보와 보수의 합일과 공감대가 최우선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대한민국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김정은이 북한의 생존을 위해 그 어렵다는 사과도 하는 판에 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의 죽음에 대해 한마디 말도 못하는 것일까요?  

 

*문재인 대통령 사과

문재인 대통령은 9월 2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북한군의 민간인 사살 사건과 관련해 사건 발생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발언을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4일 대변인을 통해 유감의 메시지를 냈으나 공개 석상에서 북한의 우리 국민 피격 사건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문 대통령은 “희생자가 어떻게 북한 해역으로 가게 됐는지 경위와 상관없이 유가족들의 상심과 비탄에 대해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군의날 기념식 기념사에서도 북한군의 A씨 총살 사건을 언급하지 않아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나서서 ‘대통령이 직접 설명하라’며 압박을 하고 나서야 이번 사건에 대한 첫 언급과 사과를 한 것입니다. 야당의 압박에 마지못해 일주일 만에 사과를 한 모양새는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를 덥석 받은 것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대단히 송구한 마음’이라고 하면서도 북한의 책임은 일절 언급하지 않아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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