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편을 잡았던 오광심 선생은 남편인 김학규 독립운동가와 함께 난징에서 ‘조선민족혁명당’ 부녀부 차장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35년 당시 독립운동은 의열단, 신한독립단, 조선혁명당 등 여러 단체가 제각기 흩어져서 전개됐다.

오광심 선생은 하나 된 독립군 결성을 도모하고자 작성된 보고서를 일제의 눈을 피해 난징에서 만주까지 전달하는 업무를 받았다.

기차를 타고 꼬박 이틀이 걸리는 먼 길을 가는 동안 200쪽이나 되는 보고서를 일본 경찰에 발각되지 않고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선생은 어떤 방법을 썼을까?

모두 외웠다. 
거의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4일 만에 외워 전한 오광심 선생 덕분에 전국에 흩어져있던 독립운동가들을 모은 '민족혁명당'이 창설됐다.

<한국 여성 동지들에게 일언을 드림>

“광복군은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리 여성들이 참가하지 아니하면
마치 사람으로 말하자면 절름발이가 되고
수레로 말하면 외바퀴 수레가 되어 
필경은 전진하지 못하고 쓰러지게 됨으로 
우리의 혁명을 위하여, 광복군의 전도를 위하여
우리 여성 자신의 권리와 임무를 위하여 
광복군 대열에 용감히 참가하라”

오광심 선생은 여성들에게 광복군 참여를 독려하며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광복 75주년 기념 '오늘,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희생과 헌신으로 나라를 지켰던 항일독립운동가는 약 300여만 명.
그러나 2019년 기준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1만 5825명.
이들 중 여성독립운동가는 3%인 472명에 불과합니다.
여성경제신문은 광복 75주년을 맞아 우리가 또렷이 기억해야 할 항일여성독립운동가 75분을 소개합니다.

여성경제신문X(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공동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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