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한 마디에 여 최고위원들 일제히 추 아들 청탁 의혹 ‘야당 억지’로 몰아붙여
'미래권력' 이낙연 대표도 이에 동조하는 발언…‘새 정치’ 기대했던 국민 실망시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아들 군 복무 특혜 의혹이 여권의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 사태는 애초 지난해 말 한 주간지의 보도로 촉발돼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도 논란이 있었지만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군 관계자들의 구체적 증언이 야당을 통해 나오면서 국민적 관심이 쏠렸고, 양측 공방에 대한 진실규명보다 유력정당의 대표가 군에 직접 전화한 사실 자체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이슈입니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성인남성은 군대에 갑니다. 군 이슈가 폭발력이 있다는 것은, 그 사안을 마주하는 개인이나 가족들은 군 문제에 대해 추상적 상상이나 모호한 견해보다는 개별적인 ‘구체적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기 때문에 여타 사안에 비해 판단의 준거기준이 명확합니다. 필자도 논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가장 먼저 대한 것이, ‘부모 형제 친척 중에서 장성이 있는 사람 손 들어 보라’는 말이었습니다(지금은 이런 악습이 사라졌겠지요). 한국에서 군이란 성인남자들의 국방의 의무 수행이라는 한 측면과 특권층의 ‘빽’이 횡행하는 불평등의 상징이 동시에 뒤섞여 있는 묘한 지대입니다.
추미애 장관 입장에서 보면, 교통사고로 다리에 장애가 생긴 남편을 생각해 다리 수술을 했던 아들만은 성한 다리를 가지게 해주려는 순수한 부모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군대에 자식을 보낸 일반시민,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아들의 휴가 문제와 배치 문제 등에 대해 감히 군대에 전화를 할 생각을 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화를 해서 아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부모들의 ‘원려’ 때문에 전화 시도는 아예 생각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유력정당의 대표가 보좌관을 시키거나 부모가 직접 군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것도 여러 차례 한 것은 팩트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여론은 일단 부정적입니다.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평소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감히 군 관계자에게 전화를 할 생각을 했을까요? 한국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도덕적으로 존경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특권의식입니다. 추미애 대표가 아들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군대에 갔고, 다리 수술을 했음에도 군에 전화 한번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나중에 미담으로 드러났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사회지도층 인사 가운데 자식을 군대에 보내놓고도 전화 한 통 없이, 보통 남성들이 하는 대로, ‘조용히’ 군대에 보냈다는 이야기가 미담이 되면 어떨까요?
지금 여론이 추미애 장관 문제에 대해 흔들리고 있는 지점은 바로 이 사회지도층 인사들에 만연된 특권의식에 분노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소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일반 서민들은 군에 ‘섣불리’ 전화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과연 이 문제가 군에 청탁 전화를 했느냐, 그냥 문의 전화를 했느냐는, 단순한 검찰의 범법 사안 판단으로 끝날 문제일까요?
민주당은 애초 이 문제를 등한시 하다가 그 타격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자 벌떼수비에 나섰습니다. 시발점은 이해찬 전 대표의 김어준 ‘다스뵈이다’ 출연이었습니다. 이 전 대표는 이 자리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자녀와 관련한 야권의 의혹 제기 및 공세에 대해 “(추 장관 아들의) 카투사를 한참 얘기하다가 잘 안되는지 따님 얘기를 들고 나왔다. 억지를 부리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이 전 대표는 김어준의 ‘국민의힘이 정권을 가져가려는 작업 아니겠느냐’는 질문에 “그것은 꿈”이라고 일축했다.
추미애 장관 공방을 ‘야당의 억지’로 돌리라는 것과 정권을 가져가려는 음모로 몰아붙이라는 게 당 수장에서 물러난 이해찬 전 대표의 ‘오더’이자 ‘섭정’이었을까요? 다음날 민주당의 최고위원들은 일제히 이 지시에 호응했습니다.
“사실관계 확인을 해본 결과 거의 모든 의혹은 거의 사실이 아니다”(김종민 최고위원)
“언론의 편향된 왜곡과 야당의 정치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염태영 최고위원)
“국민의힘이 무차별적 의혹제기로 추 장관 아들이 특혜 휴가를 간 것처럼 몰아간다”(신동근 최고위원)
급기야 친문 황희 의원은 추 장관 아들의 특혜 의혹을 제보한 당시 당직병사의 실명을 공개하고 ‘단독범’이라고 표현하며 공격했습니다. 검찰이 수사중인 사안에 대해 여당의 의원이 ‘단독범’이라는 주홍글씨를 씌우려는 의도도 불순하지만 이 사안 자체를 누군가의 제보와 의도된 세력이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음모론을 거리낌 없이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카투사 내에서도 일년에 상당수의 전화 구두승인을 통해 휴가연장을 해왔기 때문에 그러면 그런 경우인가 할만도 하다. (그러나)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특혜성 주장을 다양한 언론매체를 통해 해왔기 때문에, 뭔가 의도된 세력이 배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고 밝혔습니다. 그 뒤 황희 의원은 실검에 오르며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13일 페이스북에 “현 병장(당시 당직병사) 관련 제가 페북에 올린 글로 본의 아니게 불편함을 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추미애 장관도 사과를 했습니다. ‘이쯤에서 사태를 수습하자’는 여당 의견이 모아진 결과입니다. 하지만 추 장관은 ‘송구스럽다’는 말만 했을 뿐 왜 송구스러운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나라의 법치주의를 관장하는 법무부 장관입니다. 누구보다도 법 준수와 도덕성에서 준엄한 공직자 기준을 보여줘야 합니다. 하지만 그가 발표한 한 장짜리 페이스북 사과문에는 왜 군에 전화 했는지에 대한 해명은 없습니다. ‘힘 좀 쓰는 정치인이라면 만만한 국회 군 연락관을 통해 전화 한번 해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심리가 깔려있을까요?
진중권 전 교수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추 장관이) 사과를 하긴 했는데 도대체 왜 사과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공격했습니다. 그의 야당 편향성 주장이 모두 일리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 장관이) 자신은 원칙을 지켰다고 한다. 원칙을 지켰는데 왜 사과를 하냐. 말이 사과지, 불필요한 얘기만 줄줄이 늘어놓고 정작 해명이 필요한 부분들은 다 건너뛰어 버렸다”는 지적에는 공감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특히 진 전 교수는 “의원실 보좌관이 왜 아들 부대로 전화를 하냐. 보좌관은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봉급도 국민의 세금에서 나간다. 그런 보좌관에게 아들의 뒤치다꺼리를 시킨 건 공적 자원의 사적 유용에 해당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이 문제를 대하는 여야의 입장차는 극명합니다. 여당은 ‘별 문제도 아닌데 야당이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는 것이고, 야당은 ‘법무부 장관의 공정한 업무수행과 도덕성에 관한 중요한 권력형 비리’라는 것입니다.
현재 여당은 총력전을 펴고 있습니다. ‘추미애 사퇴=검찰개혁 실패’라는 등식으로 무장해 싸우고 있습니다. 총선 이후 야당과의 기싸움에서 그 어떤 것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추 장관이 사과했고, 당 지도부가 적극 ‘쉴드’를 치면서 여론의 추이를 볼 것입니다. 그러면서 ‘윤미향 시나리오’를 희망할 것입니다. ‘냄비’ 여론이 식을 때까지 최대한 뭉개는 전략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나 남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낙연 대표입니다. 그는 애초 추미애 장관 문제에 대해 평소의 ‘두루뭉수리’ 성향답게 자신의 의중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4일 드디어 처음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혔습니다. “당 소속 의원들의 노력으로 사실관계가 많이 분명해졌다. 더 확실한 진실은 검찰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해찬 버전 2’입니다. 애초 정치권에서는 ‘이낙연 대표가 정권에 부담이 되는 추미애 장관 사퇴를 건의하며 돌파구를 마련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낙연의 힘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쯤되면 진중권 전 교수가 말한 ‘민주당은 이해찬의 수렴청정’이라는 주장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해찬 전 대표의 교통정리 이후 당 최고위원-당 대표로 이어지는 도미노 입장정리가 있었습니다. 국민들이 ‘새로운 권력’ 이낙연 대표에게 걸었던 희망은 벌써부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낙연 대표는 차기집권을 꿈꾸는 미래권력입니다. 새로움이자 도약입니다. 그가 그 첫 시금석이었던 추미애 장관 문제를 ‘사실관계’로 접근하는 이상, ‘문재인 넘버 2’ 아니 ‘이해찬 넘버 2’에 불과합니다. 왜 스스로를 이렇게 수구적인 권력, 철옹성 같은 내로남불 집단의 또 다른 권력연장을 위한 ‘아랫돌’ 정도로 가두려 할까요? 권력에 집착하면 권력은 멀어집니다. 이낙연 대표도 벌써부터 기득권층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은 아닐까요?
지난 11일부터 친문 커뮤니티에는 ‘우리가 추미애다’라는 댓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조국이다’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친문을 자처하는 김주대 시인은 12일 “추미애 장관을 지키지 못하면 이낙연 대표도 그만두시기를...”이라는 최후통첩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당에서는 최고위원들이, 장외에서는 친문 핵심 지지층들이 ‘추미애 사수’에 나선 것입니다. 이낙연 대표도 그 다음날 이런 릴레이 지지에 호응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추미애 장관의 아들 군대 특혜 의혹은 깨끗이 정리된 것일까요? 아들이 군에 가 있는 동안 전화 한통 못하며 2년 가까이 마음 졸이며 걱정하는 이 땅의 서민들은 이런 ‘내로남불’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미래권력을 자처하는 이낙연은 이런 서민들의 물음에 과연 새로운 문법으로 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