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생색내고 신임 대표 생색도 내려고 한 듯
‘고작 2만원’ 야당 집중포화에 민주당 일각서도 부정적 목소리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이심전심 주고받기로 내놓은 통신비 2만원 지원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의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낙연 대표는 당선 뒤 첫 민생정책으로 통신비 지원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청와대에 건의하는 모양새로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켰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통신비 지원금 2만원이 발표되자 곳곳에서 ‘뜬금없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1차 ‘전 국민 지급’은 너무도 많은 논란과 격론이 있었지만, 일단 급한 불을 끄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2차는 재정에 큰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당정청이 선별지급 방침을 굳혔습니다. 그런데 민심의 부정적 기류가 여전히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정부여당은 국민들의 잠재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통신비 지원’이라는 묘수를 꺼내들었습니다.
정부여당은 2차 지원에도 ‘전 국민’과 비슷한 뉘앙스를 최대한 내보려고 고심 끝에 ‘13세 이상’(국민의 90%에 해당하는 4600만명)이라는 아이디어를 짜냈습니다. 그런데 이 수순이 일단 좀 어색합니다. 보통 집권여당의 대표가 새롭게 당선되면 대통령은 신임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려고 합니다. 먼 ‘여의도’에서 청와대 말을 잘 안 듣는 의원들 군기도 잡고 분위기도 새롭게 전환시킬 겸 해서 대통령이 새 대표를 치켜세워 주거나 힘을 실어주게 됩니다.
이번에 이낙연 대표는 당선 뒤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통신비 2만원 지원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청와대 회동 전날(9일) 이 대표는 당정청 협의에서 13세 이상 전 국민에게 월 2만 원의 통신비를 일괄 지원하는 방안을 청와대에 요청했고, 문 대통령이 다음날 8차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해 2차 재난지원금에 통신비 지원 항목을 넣겠다는 입장을 내면서 통신비 2만원 지급 결정이 신속하게 이뤄졌습니다. 뭔가 ‘짜고치는 고스톱’ 인상이 짙습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당연히 사전 조율을 했을 것입니다. 분명히 이 통신비 2만원은 청와대가 먼저 제안한 것이 아니고 이낙연 대표 캠프가 아이디어 회의를 한 끝에 ‘전 국민’ 생색도 내고 신임 대표 위상도 한번 세워보려는 일석이조를 노렸을 것으로 봅니다. 청와대도 신임대표 당선 선물로 그 정도는 해줘도 괜찮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고요.
그래서 여당과 청와대의 짝짜꿍 끝에 나온 것이 바로 2만원 통신비입니다. 이 뉴스를 처음 접한 독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고작(?) 통신비 2만원, 게다가 통신사 금고로 바로 들어가는데 이게 뭐하는 것이지?’라며 당청의 뜬금포에 의아해했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정부와 여당이 진심으로 코로나19로 궁핍에 내몰리고 있는 국민들을 걱정해서 이렇게라도 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13세 이상에게 통신비 2만원 지원해줘 봤자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국민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습니다(조만간 이 이슈에 대한 여론조사가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평소 감각이 떨어지고 민심을 잘 읽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민의힘도 이번에는 일리 있는 지적으로 힘을 냈습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통신비 지원에) 9200억 원이 소요 예정이라고 하는데,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은 (접종률) 50%에서 2100억 원, 80%면 3400억 원이면 된다. 질병관리청에서 올해 백신 생산 계획이 3000만 개가 좀 안 된다고 했는데 이것이라도 무료 접종하는 것이 통신비 2만 원 지급보다 훨씬 필요하고 긴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가끔 엉뚱한 주장과 대책으로 국민들 지탄을 받아온 야당이지만 이번 주장은 대체로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정부여당의 통신비 2만원 지원은 야당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당청 회동 뒤의 브리핑에서 “이날 간담회에서 이낙연 대표는 ‘액수가 크지는 않더라도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통신비 지원해 드리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일괄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문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다. 코로나로 인해 다수 국민의 비대면 활동이 급증한 만큼 통신비는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지원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라고 발표했습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가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통신비 2만원 지원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전 국민 지원이 1차 재난지원금 지급에 이은 ‘이낙연식 포퓰리즘 정책’이라면서 공세를 폈습니다. 배준영 대변인(인천중구·강화·옹진군)은 논평에서 “‘전 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을 급조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명확한 원칙도, 심도 있는 고민도 없었다. 이번 재난지원금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반문했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추석을 앞두고 국민 마음을 2만원에 사보겠다는 계산”이라며 “문 대통령님, 이 대표님, 2만원 받고 싶습니까”라고 힐난했습니다. 정의당도 ‘여론 무마용’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심상정 대표는 “두터워야 할 자영업자 지원은 너무 얇고, 여론 무마용 통신비 지원은 너무 얄팍하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심 대표는 “정부에 통신비 2만 원 지급 재고를 강력히 요청한다”며 그 근거로 “이 돈은 시장에 풀리는 게 아니고 고스란히 통신사에 잠기는 돈이다. 받는 사람도 떨떠름하고, 1조가 적은 돈이 아닌데 소비 진작 경제효과도 전혀 없다”며 날카롭게 여권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정부여당에서는 이를 두고 ‘야당의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여당 비판’이라고 폄하할 수 있지만, 야당이 일제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해 내심 뼈를 맞는 아픔을 느꼈을 것입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10일 당청의 ‘13세 이상 전 국민 2만원 통신비 지원’ 결정에 대해 “통신비는 직접 통신사로 들어가 버리니 승수 효과가 없다”고 쏘아붙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의 ‘합작품’을 정면에서 맞받아친 것입니다. 대통령과 여당대표를 싸잡아 공격하는 것이 호기롭기도 하지만, 현장경험이 풍부한 이 지사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한번 꺼낸 정책을 다시 거둬들이기 멋쩍은 민주당은 일단 반격에 나섰습니다. 민주당측에서는 “비대면 활동 증가에 따라 데이터 통신량이 작년 같은 시기보다 크게 늘어나며 통신비 부담이 커졌다”며 야당 공세를 합당하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특히 2만원이 ‘푼돈’ 지적에 대해 “1인당 2만 원이지만 아이가 모두 중학생 이상이라면 4인 가족 기준으로 8만 원이 된다. 실제 집행하면 국민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찬반이 상존하기는 합니다. 이번 정책은 정부가 만 13세 이상인 약 4640만 명의 통신비 2만원을 다음달 요금 고지 때 감액 청구하는 방식으로 지원됩니다. 코로나 민생 위기 대응책으로 사실상 전 국민의 통신 요금을 절반가량 보전하겠다는 것입니다. 일회성이긴 하지만 통신비 부담이 큰 서민 가계엔 적잖은 보탬이 될 전망이라는 시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선 통신비 일괄 지원이 취약 계층 등 맞춤형 선별 지원 원칙에 맞지 않고, 소비 진작 등 정책적 효과와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누구도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의 ‘국민 사랑’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식당 등이 거의 셧다운 되면서 민생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지난 2월부터 7개월 넘게 계속되는 코로나 스트레스에 국민들도 피로가 쌓여가고 있습니다. 이를 조금이라도 위로해주려는 정부여당의 뜻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선심쓰기, 생색내기만 하면 정부 곳간은 도대체 누가 지키게 될까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차 긴급재난지원금 논란 때 끝까지 재정 건정성을 외치며 저항했지만 이후에는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이런 우려의 목소리들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관료들이 생각하기에 저항해봤자 찍히기만 한다는 보신논리가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초토화되면서 정부여당의 위기 극복 방안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초정밀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번 2만원 통신비 지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졸속정책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야당 지적대로 전 국민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무료지원이나 백신 지원이라는 형태가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국민들의 실질적인 건강권이 지켜지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지원효과도 별로 없는 통신비 2만원을 대통령이 신임 여당 대표의 당선 축하 ‘선물’로 선뜻 줘버린 꼴이 된 것은 아닌지, 한번쯤 따져봐야 합니다. 176석 거대집권여당의 대표이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통큰 선물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무려 1조원에서 800억원 빠지는 거액이라면 좀 더 신중하고 면밀한 검토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일각에서는 “이낙연 대표 당선 축하금이 1조원이라는 말이냐”며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일 것입니다. 단돈 1억원이라도 가장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정부여당이 정밀계산을 해야 하는데 과연 통신비 지원 정책이 그렇게 꼼꼼한 계산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단 며칠 사이에 이낙연 대표 참모 중 한 명의 반짝 아이디어로 졸속 결정되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특히 이낙연 대표의 첫 번째 정책 발표라는 점에서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이 대표는 당 대표 연설에서 신중하고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차분하게 설명해 호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이 기대하는 ‘한방’이 없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이번 통신비 지원금 2만원 아이디어가 이 대표측에서 나온 것이라면 언론이 목말라하는 그 ‘한방’에 부합하려고 부랴부랴 뭔가 하나를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한번 풀린 곳간은 다시 채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소중한 세금을 대통령과 여당대표가 차 한 잔 마시면서 얼렁뚱땅 결정한 것은 아닌지, 적이 걱정스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