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기, 미얀마에 대한 지식 공유하고 싶어 재개

양곤의 상징 쉐다곤 파고다./정선교

 

양곤 국제공항입니다. 폭우가 쏟아집니다. 우기철이라 하루에 두세 시간은 이렇게 비가 내립니다. 6년 전 처음 이 공항에 도착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아는 이라곤 한 명 없는 이 나라. 국제 NGO에서 파견되어 왔습니다. 칫솔과 노트북, 두 벌의 옷가지만 넣은 작은 배낭. 아차, 우산을 넣지 않았구나. 거리는 온통 빗물로 넘쳐서 호텔 밖을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신기한 것도 많았지요. 모든 국민이 맨발에 조리를 신고 다니고, 남자도 치마를 입고, 여자들은 머리에 장미나 재스민 꽃을 즐겨 꽂고, 어느 식당이건 재떨이가 있습니다. 이젠 저에겐 일상이 되어버린 모습입니다. 몇 해 전 가을 인천공항에 내리는데, 제가 조리에 맨발로 그대로 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국제선은 특별기만 다니고 현재는 국내선만 운항 중이다.
국제선은 특별기만 다니고 현재는 국내선만 운항 중이다.

 

요즘 국제선 공항은 한산합니다. 아직 외국인 입국금지 상태라 특별기 외엔 뜨질 않습니다. 오늘 현재 코로나 확진자가 409명. 사망 6명. 해외에서 유입된 환자가 많아 거의 국경을 폐쇄하여 얻어낸 효과입니다. 30인 이하의 모임은 허용되지만 종교행사는 아직 하질 못합니다. 초중고는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대학은 장기휴업 상태입니다. 
오는 11월 8일엔 국회의원 선거가 열리기 때문에 정치적으론 뉴스가 많은 시기입니다. 미얀마는 뽑힌 국회의원 손으로 대통령을 뽑기 때문에 대선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웅산 수지 민주화 정부를 심판하는 선거이기도 합니다. 

한인업소가 몰려 있는 9마일 삐 로드. 공항서 10분 거리다.
한인업소가 몰려 있는 9마일 삐 로드. 공항서 10분 거리다.

 

저는 양곤에서 고속버스로 10시간쯤 걸리는 도시에 삽니다. 중국 국경 근처입니다. 오늘 한국대사관에 급한 일이 있어 국내선 항공으로 왔습니다. 양곤에도 처음 3년 가까이 살았기에 반가운 곳입니다. 공항을 나와 한인타운으로 갑니다. 공항서 10분 걸리는 삐 로드 9마일 지점입니다. 오션(Ocean)이라는 큰 슈퍼마켓이 있습니다. 이곳은 9마일호텔, 프라임호텔, 서울호텔, 라이프호텔 등 한국계 호텔이 있습니다. 엄마손, 서라벌, 강남일식, 쿠스, 그린마일 등 식당이 있어 김밥, 바비큐, 한정식, 냉면, 비빔밥, 청국장 등을 먹을 수 있지요. 근처에 마사지샵, 노래방, 환전소 등이 모여 있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사는 오션 슈퍼마켓 삼거리.
한인들이 많이 사는 오션 슈퍼마켓 삼거리.

 

요즘은 여행자가 없어 한산한 이 거리를 걷습니다. 반가운 얼굴들이 한국으로 나갔다가 못 들어오니 만나질 못합니다. 나가는 건 자유롭지만 미얀마 입국은 미얀마 외교부 허가를 받아야 특별기를 타고 옵니다. 미얀마로 와 새로운 삶을 꾸려왔던 한국인들. 비대면의 시대에 우리들의 고단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업무 차 무비자 1개월로 들어왔다 나가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미얀마 외교부가 3개월 단위로 비자를 연장시켜 주고 있습니다. 

 

한국계 호텔 전경.
한국계 호텔 전경.

 

이 나라는 농업인구가 60%가 넘어 지방도시는 경기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도시 양곤, 만달레이에는 청년 노동인구가 아주 많습니다. 양곤에도 슬픈 뉴스가 잇따릅니다. 문을 닫은 봉제공장 앞 여공들의 시위, 실직한 여성들의 매춘범죄조직 수사 그리고 한 가장이 오랜 실직 끝에 자살한 소식입니다. 이 나라는 정말 자살이 없는 나라인데. 오늘을 중요하게 생각하므로 늘 웃을 수 있는 국민들인데.

 

김밥, 비빕밥 등을 파는 한식당.
김밥, 비빕밥 등을 파는 한식당.

 

한인타운을 거쳐 차이나타운으로 갑니다. 양곤 남단 항구 근처에 있습니다. 우기로 인해 빗물이 철벅거리는 좁은 골목들. 여전히 시끄러운 중국말이 넘쳐납니다. 미얀마는 5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아래서부터 태국, 중국, 라오스, 인도, 방글라데시. 그래서인지 중국과 인도 상인들이 많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은 한국을 좋아하지만 한국인이 이 나라에 적응해 사업을 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현지인들은 일하는 방식이나 사고가 다릅니다. 미얀마어가 너무 어려워 소통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입니다. 

길거리에 냉면 파는 식당 간판도 보인다.
길거리에 냉면 파는 식당 간판도 보인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비대면 속에 살아갑니다. 미얀마로 여행오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한인타운을 걸으며 생각합니다. 각 나라는 그 나라가 잘하는 걸 더욱 집중하면 좋겠다고. 농업혁명이 일어나면 흔들리지 않을 나라가 브라질, 인도, 미얀마란 얘기가 있습니다. 땅이 넓은 농업국을 지칭합니다. 미얀마는 농축산을, 한국은 IT강국을 유지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자가 없어 한인업소들이 할인혜택을 내걸었다.
여행자가 없어 한인업소들이 할인혜택을 내걸었다.

 

제가 그간 <일요신문>에 '미얀마에서 온 편지'를 4년간 200회 썼습니다. 여행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젠 여행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것이 다시 두 번째 편지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얀마에서 어렵사리 성공한 한국인 이야기, 미얀마 사람들의 순수한 삶과 사랑, 미얀마를 둘러싼 각 나라의 국경지대, 환경과 삶에 대한 성찰. 이것을 주제로 삼고 써나갈 생각입니다. 그것은 길고 고단한 인생과 같으니까요.

정선교

저널리스트 겸 작가. 국제 엔지오로 파견되어 미얀마에서 6년째 거주 중. 미얀마 대학에서 한국문화를 가르치고, 미얀마 전역을 다니며 사람, 환경, 자연을 만나는 일을 즐겨 한다. 국경을 맞댄 중국, 인도, 태국 등에 사는 난민들과 도시 빈민아동들의 교육에 큰 관심이 있다. 미얀마 국민은 노래를 좋아해 요즘 이 나라 인물을 다룬 뮤지컬 대본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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