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성계 충격 지속…젠더시스템 운용집단도 권력자 눈치
김은주 여성정치연구소장 "중립·권한 기관서 전수조사 해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해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던 것은 “최고 권력자가 가해자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범여성계 일각의 의견이 나왔다.
사실 서울시의 경우 전국 어느 공공기관과 자치단체보다도 가장 잘 만들어진 성평등 정책을 실천하는 곳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이는 박원순 전 시장이 행적으로도 알 수 있는데, 국내 여성인권변호사로서 평생의 공적과 시장 재임기간 양성평등을 실천하기 위한 정책을 10여년 동안 지속적으로 확대․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박 전 시장이 재임하면서 서울시는 성평등위원회, 젠더자문관, 젠더특보 등 조직을 차례로 도입했다. 또한 정책이나 제도에 있어서 성차별적 요소를 없애는 성별영향평가 사업 또한 10년 전 78개에서 올해 4월까지 130개로 60% 늘었다. 아울러 서울시 5급이상 여성관리자비율도 10년전 19.4%에서 올해 4월까지 24.7%로 증가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범여성계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김은주 여성정치연구소장에게서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문제점과 앞으로 보완해야 될 사항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들어봤다.
먼저,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잘 만들어졌다’고 평가받았던 젠더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점을 꼽았다.
가해자 최고 권력자면 시스템 ‘무용지물’ 확인
김은주 소장은 “많은 여성단체에서 박원순 시장 사건에 대해 놀라워하고 분노하는 것은 그동안 박 시장이 해왔던 여러 공적 중에서 여성인권변호사였고, 시장이 돼서도 성평등과 여성인권 문제에 대해서 어느 자치단체장보다도, 특히 여성가족부보다도 선도를 해왔다는 평가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시 내부에 알렸는데도, 그렇게 공을 들여 만들어 놓은 젠더시스템이 전혀 서울시 안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결국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리더십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서울시 최고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시스템을 움직이는 집단이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되고 결국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된 상황을 이번에 확인했다”고 꼬집었다.
피해자 호소 외면 ‘의도적’ 가능
그는 “이런 문제는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우선, 직장 내 성희롱문제를 서울시를 비롯한 모든 자치단체장과 공공기관에 좀 더 강도 높은 조사를 해야 된다. 보다 중립적이고 권한을 갖고 있는 기관에 의해서 직장 내 성희롱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철저하게 파헤치고 거기에 부족한 것이 있으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가 해야 될 가장 큰 과제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김 소장은 “핵심은 잘 만들었다고 하는 시스템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아니면 그 시스템을 운용해야 될 최고 권력자가 가해자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않았던가. 둘 중에 하나인데,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내부에 알렸고, 4년 이상 성추행이 지속된 걸로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