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의 역설…'리니지' 쏠림현상 더 심해졌다

연초부터 게임업계 1위인 넥슨과 2위인 엔씨소프트간의 경영권 분쟁이 뜨겁다.

엔씨소프트의 지분(15.08%)을 보유한 넥슨이 지분보유 목적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하자, 엔씨소프트가 넥슨의 일방적인 경영 참여 시도는 시너지가 아닌 엔씨소프트의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창립 이래 최대 실적을 11일 발표하며 넥슨의 과도한 경영권 간섭은 시장의 신뢰와 대화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커 궁극적으로 주주 가치 훼손과 한국 게임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윤재수 엔씨소프트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이날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에 대해 "양사가 이전에도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문화, 가치 등에서 차이가 있어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넥슨이 경영 참여로 어떻게 회사 가치를 올릴 것인지 우리도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두 기업의 핵심 역량과 기업 문화가 전혀 달라 넥슨의 경영 참여는 무리라는 것이다. 실제 게임사별 개발 문화를 무시하고 과도하게 실적을 강요하는 건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엔씨소프트는 그 근거로 지난해 실적을 제시했다. 엔씨소프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782억원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11% 증가한 8387억원, 당기순이익은 43% 늘어난 2275억원을 기록했다. 시장 기대치인 매출액 8133억원, 영업이익 2607억원, 당기순이익 2217억원을 웃돌은 수치다.

기업은 실적으로 말한다는 격언을 잣대로 보면 엔씨소프트의 주장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엔씨소프트의 지난해 실적은 넥슨의 경영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확고부동한 증거'이기도 하다. 

 

♦ 매출 '리니지 쏠림' 최고조…깊어가는 김택진 대표의 고민

창사 이래 최대 실적과 함께 '리니지'의 의존도 역시 역대 최고로 높아진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를 통해 지난해 263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는 올해 전체 매출의 30%가 넘는 수치다. 리니지 매출은 지난해 1분기 410억원에서 4분기 967억원으로 뛰었다. 분기 매출 중 역대 최고치다.

엔씨소프트가 가장 최근의 출시한 '블레이드앤소울'의 매출 827억원과 비교하면 1998년 상용화 이후 무려 17년 동안 엔씨소프트의 간판 게임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리니지가 엔씨소프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고, 성장세가 더 빠름을 알 수 있다. 리니지 쏠림의 실례다.

이는 달리 말하면 리니지 집중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쏠림'이 심할수록 국내 게임 산업에 미치는 위험도 커진다며 대략 3가지의 리스크를 꼽는다.

첫째는 소비를 제약하고 산업 성장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리니지의 실적이 좋아지면 온라인게임 전반에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낙수 효과'가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실종됐다. 오히려 산업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PC방과 경쟁 기업에 각종 불공정행위를 한다는 비판이 많다.

공교롭게도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하반기 개인이 부담하던 게임 이용 요금을 PC방에 전가하는 과금 정책을 들고 나온 후 리니지의 실적이 배 이상 늘어났다. 결코 우연이라 보기 힘들다. 개인 이용자에겐 부분유료화 아이템을, PC방엔 정액요금을 부과하는 이중 과금체계로 실적을 견인한 셈이다.

특히 PC방 과금은 일종의 제로섬 게임 성격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게임 산업의 역동적 성장을 저해하고 새로운 게임의 등장을 가로 막는다.

둘째로 혁신적이고 공격적인 개발 전략의 부재다. 매출 구조가 리니지에 편중돼 있다 보니 엔씨소프트는 당장 리니지의 뒤를 이을 타이틀을 개발하는 것보다 리니지 아이템 등 부분유료화 사업모델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과거의 공격적인 글로벌 개척 정신이 사라지고 안정 지향의 내수시장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리니지의 성공은 기존에는 아무도 하지 못했던 혁신적 시도를 과감히 도입한 데서 비롯됐다"며 "국산게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엔씨소프트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미래 성장 동력의 불투명성이다. 전문가들은 리니지의 매출·이익이 갑자기 감소할 경우 엔씨소프트의 안정성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엔씨소프트는 11일 사상 최대의 호실적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약세를 보였다.

향후 전망에 대한 불투명성이 영향을 미친 것이란 지적이다. 윤재수 CFO가 "게임 사업은 흥행성에 의존하는 사업"이며 "출시 시점에 따른 실적 변동성도 크기 때문에 전망치를 제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시장은 "단 하나의 질문에도 추정 가능한 지표조차 제시하지 않았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 '리니지' 쏠림 방치하면 한순간 몰락…김정주 회장이 옳았다

게임 등의 정보통신(IT)기업은 끊임없는 변화와 노력이 요구된다. 성장성에 대한 시장의 의심은 기업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씨는 안정적인 매출 등을 이유로 리니지의 쏠림 리스크를 더욱 심화시키는 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그리고 이는 김택진 대표의 동생 김택헌 전무(국내사업 총괄책임자·CBO)와 부인 윤송이 사장(글로벌최고전략책임자·Global CSO)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넥슨도 주주제안서를 통해 이를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이 PC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꼬집고 있다.

문제는 엔씨소프트의 위기는 게임산업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9월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이 4인치가 넘는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를 출시해 잡스 사후 실적 악화 의구심 뿐 아니라 대화면 아이폰에 대한 우려까지 한방에 날린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잘 알다시피 아이폰6와 아이폰6 플러스가 출시했을 때만 해도 잡스의 철학을 저버린 이 스마트폰이 시장에서 통한다고 장담한 이는 드물었다. 대신 '잡스 지우기'에 나섰다는 비아냥과 삼성과 안드로이드 휴대전화를 따라 화면을 키웠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팀 쿡 CEO가 '잡스의 유산'을 버리고 변화를 선택한 이후 애플 제품에 대한 전세계 수요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놀라 자빠질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소비자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꿈꾸고 이는 잡스 또한 혁신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애플은 지금 잡스의 깐깐한 철학과 고집 대신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이번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중심의 게임 개발 철학, 비즈니스 모델 등을 계속 고집한다면 결국 경쟁력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시간이 갈수록 넥슨과 김정주 회장의 시각이 옳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게 되는 이같은 현실의 아이러니는 넥슨의 경영 참여와 관계없이 엔씨소프트와 김택진 대표를 줄곧 괴롭힐지 모른다. 지금 엔씨소프트는 넥슨의 조언을 사심없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