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지루하게 이어질 경제적 분쟁이자 헤게모니 경쟁의 산물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2000억달러의 중국상품에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이 600억달러로 대응한 충돌은 미·중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긴장의 한 차례 돌기이고 파고다. 이미 지난 두 달 동안 주고받은 500억달러의 수입관세 치고받기의 연장전이며, 앞으로 계속될 싸움의 제 2라운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예고했듯이 또 다른 2600억달러에 대한 관세 부과도 위협에 그치지 않고 언젠가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조야는 4배에 달하는 중국과의 무역적자에 뿌리 깊은 불만을 갖고 있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현안으로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은 값 싼 중국 상품을 즐겨 사용했고, 중국은 경제적 큰 이익을 걷어갔지만 이제는 그러한 불균형은 개선돼야 한다는 각성이 미국 내에서 높아졌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공세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치를 들고 나섰지만 그 발원은 트럼프의 거친 성향이나 정치노선에서만 나왔다고 할 수 없다. 미국이 절실하게 고민하고 바라는 의도를 트럼프라는 저돌적인 지도자를 통해서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미국의 국익을 우선으로 삼겠다는 트럼프를 지도자로 선출하므로서 목에까지 차오른 불만과 과제를 해결하도록 앞세운 결과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비호감은 첫째는 국내 경제의 난조에서 비롯됐고, 둘째는 중국의 팽창주의가 자극했다. 경제적 난맥은 제조업의 부진이 불러온 내부적인 현상이다. 높은 인건비와 까다로운 고용조건으로 생산성과 경쟁력이 떨어지자 공장들이 중국 등 해외로 나갔고,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 등 중서부 공장지대는 거의 황폐화됐다. 시장은 값싼 수입품들에 내주었고, 자연히 생필품 시장에는 일본상품이 휩쓸고 간 데 이어 지금은 중국제품이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교역량은 2017년 기준 1300여억달러대 5600여억달러로 네 배도 넘는 불균형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2030년 이후에는 미국 경제를 누르고 G1이 될 것이라는 경제학계 촉수들의 앞지른 예상도 퍼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은 절대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이 되지 못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우려를 잠재우고, 앞으로 강력한 견제를 벌이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 첫 단계가 무역전쟁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협상에서 부각된 지적재산권 도용이나 환율조작, 불공정한 통상관행 등은 쉽게 타결될 성 싶지 않다.
중국도 경제체제의 성격상, 그리고 성장의 지속을 위해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문제라고 여기는 듯하다. 가뜩이나 성장률이 6%대로 떨어져 성장의 하강추세를 보인 중국은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고, 끝까지 대립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의 처지다. 관세로만 맞대응하려 해도 나머지 부과 대상이 미국에 크게 못 미치는 만큼 대적하기가 어렵다.
미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타결하려고 맺은 1985년 플라자 합의 때와 비슷한 상황을 맞은 형국이다. 당시에 일본은 미국시장을 휩쓸면서 G2에 올랐으나 플라자 합의의 압박 이후 급격한 엔화 절상으로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저성장의 늪에 빠졌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후유증을 앓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의 강펀치를 맞고서도 중국이 고도성장을 계속 유지해서 과연 G1이 될 수 있을까? 트럼프는 절대 안 된다는 주장이다.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미 인건비 상승 등으로 시장 경쟁력에서 베트남 등 인도차이나 국가들과 인도 등의 드센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에 미국은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경기가 호조를 거듭해서 올 2/4 분기에는 근래에 드물게 4.8%의 호황을 보였다. 호경기에 힘 입어 트럼프의 인기도 올라서 중간선거의 승리는 물론, 재선까지도 무난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는 기세를 몰아 미국 우선이라는 정치노선을 강화할 것이며, 중국에의 압박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견제심리를 바짝 높인 것은 시진핑 주석이 등샤오핑의 도광양회, 빛을 가리고 힘을 기른다는 소극적인 세계전략을 제치고 중국몽과 중화굴기를 선언하면서 들어낸 팽장주의다. 아편전쟁에서 패한 이래 서양세력에 굴종을 당하기만 했던 ‘중국 으뜸’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포부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이 일대일로,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철로와 항로로 이어가는 방대한 건설계획과 아시아의 금융망 AIIB, 아시아 인프라은행 설립 계획 등으로 G1으로의 행보를 넓히자 미국의 우려는 높아졌다. 자본주의를 도입하긴 했지만 사회주의의 이념과 구조를 유지하면서 권위주의적 힘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은 터였다. 서로 협력한다는 외교적 수사를 늘어놓으면서 많은 양의 교역은 여전히 주고받았지만, 가려진 긴장감은 날로 높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무역 외에는 국제문제에서 사사건건 대립을 보여왔다. 남지나 해의 군사적 시위는 물론 이란 핵 문제, 러시아 제재, 중동 사태 등에서도 최근까지 수 없이 엇박자를 냈다. 특히 한반도의 북핵 해결을 위한 미·북 협상에 중국이 훼방을 놓는다는 인상이 짙자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재를 뿌린다고 외교적 관례를 무시한 채 두 번 씩이나 공개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 주석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세 번씩이나 불러들인 뒤 북한의 태도가 표변한 낭패를 지칭한 것이다.
시진핑 주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밀착이 미·중 무역분쟁에 직접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들의 접촉과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 시 주석의 평양 방문 불발, 미국의 무역제재 발표가 거의 앞뒤로 이어져 하나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일련의 움직임이 미·중 간의 불협화음에서 출발하고 귀결된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관련성은 비핵화 등 한반도의 문제도 남·북정상회담과 한·미정상회담, 미·북정상회담이 파격을 거듭하고 있어도 내면으로는 미·중 간의 힘겨루기와 깊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반도의 장래가 상당부분 동북아 정세의 프레임 안에서 결정된다는 뜻이다.
한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한국경제에도 심대한 걱정을 낳고 있다. 한국경제의 성장율 3.1% 중 2/3는 수출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 수출의 40%가 미국과 중국으로 간 것이었다. 더구나 중국에 대한 수출의 80%가 중간재여서 미국으로 보내는 중국의 수출량이 10%만 줄어도 한국의 수출은 32조원이나 감소한다고 현대경제연구원은 전망한다. 싱가포르 개발은행은 미·중 무역전쟁이 한국경제를 0.4% 끌어내릴 것이며, 내년에는 그보다 두 배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에 비상신호를 준 꼴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면 세계경제에 커다란 파장이 예상된다. IMF는 미·중 무역분쟁이 중국과 미국 경제성장에 타격을 줄 것이며, 세계경제에도 관세의 세부사항과 양국의 행동에 따라 상당한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이미 원화와 주가의 폭락을 겪고 있고, 미국도 수입품 가격의 인상으로 인프레 우려가 나온다. 미국은 충격을 염두에 두고 당초 예상됐던 관세율 25% 인상을 우선 10%, 내년에 25%로 단계적으로 부과하기로 낮춘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강경하지만 타협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두 나라가 서로 보완적인 경제 구조를 갖고 있고, 급격하게 관계가 악화돼 결별한다면 양측이 모두 심각한 경제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어서 적당한 선에서 협상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많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G2로서 지구촌의 지도적인 지위에 있기 때문에 부담도 느낄 것이다.
미국은 단숨에 무역적자를 만회하려 하기보다 서서히 경제 체질의 개선에 노력하는 여유를 갖는 길이 미국다울 것이다. 중국의 견제도 대화와 협력 속에서 소프트 파워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왕도를 찾아야 한다. 또한 중국은 보다 세련된 강국이 돼야 선진국이 될 것이며, 이제는 경제도 국제적인 질서를 존중하고 지적재산권과 정상적인 통상관행, 환율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서면 국제경제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두 대국이 이러한 국제사회의 바람에 부응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