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건당 30만원씩 받고 진료데이터 제공...보험사들 사실상 영리목적으로 활용 가능성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민간보험사에 국민건강정보를 판매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시민과 사회단체 등이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심평원은 무려 87건 1억명분의 진료데이터 정보를 건당 30만원씩 받고 보험사에 팔아 넘겼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정춘숙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심평원 국정감사에서 심평원이 2014년 7월부터 올해 8월까지 52건(약 6420만명분)의 '표본 데이터셋'을 1건당 30만원씩 받고 AIA생명·KB생명보험·KB손해보험·롯데손해보험·미래에셋생명·현대라이프생명·흥국화재해상보험·스코르 등 민간 보험사 8곳과 보험개발원·보험연구원 등 민간 보험연구기관 2곳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심평원의 장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정 의원에 따르면 이후에도 심평원은 삼성생명·삼성화재·교보생명·신한생명·코리안리재보험 등 5곳에도 35건(약 4430만명분)의 '표본 데이터셋'을 제공한 것으로 추가 확인됐다.
둘을 합치면 심평원은 무려 87건 1억명분의 진료데이터 정보를 민간보험사에 팔아 넘긴 셈이다. 이런 심평원의 행태에 대해 시민과 사회단체들은 "심평원이 민간보험사들의 이익 극대화 도구로 악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심평원이 민간보험사에 넘긴 '표본 데이터셋'은 전체·입원·고령·소아청소년·환자로 구분된 자료로 성별·연령 등 일반적인 내용뿐 아니라 진료기록과 건강검진, 원외처방내역 등 개인건강정보는 물론 의약품안전사용정보, 의약품 유통, 의료기관 인력과 장비 등 의료자원 정보까지 담겨있다.
그러나 심평원은 "표본 데이터셋은 '비식별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개인을 특정할 수 없음은 물론 표본 데이터셋 제공시 '학술연구용 이외의 정책, 영리목적으로 사용불가하다'는 서약서를 받았다"는 입장이다.
정 의원은 "아무리 비식별화된 자료라고 해도 민간보험사에 제공될 경우 보험사의 보험상품개발과 민간보험 가입차별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심평원은 공익 목적이 아닌 민간보험사의 보험상품 개발을 위해 자료를 제공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대한의사협회도 "표본 데이터셋 제공시 '학술용 표본자료 이용 서약서’를 받았다는 해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면서 "민간 보험사가 현장에서 이 정보를 제공 받고 영리 목적인 '보험상품 연구' 등에 사용해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의협 관계자는 "영리 기업의 속성을 잘 알면서도 이를 제공한 심평원에 대해 국민건강보험법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이 있는지 국민들과 검찰수사를 통한 진실 규명 및 국민감사청구요청 등을 실행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도 '심평원의 국민질병정보 장사에 대한 국민건강보험노동조합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심평원은 민간보험사들이 지급해야 할 교통사고 환자 진료비를 건강보험 환자로 세탁해 건강보험재정으로 대체해주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라며 "건강보험 가입자의 어떤 동의도 없이 당사자의 질병정보를 보험사에 제공해 준 범죄적 행위를 자행해 왔다면 국민건강보험법의 제정취지와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도 나섰다. 참여연대·건강과대안 등 시민단체들은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심평원이 팔아넘긴 데이터로 민간보험사는 각종 질병에 대한 위험요율을 계산해 보험상품을 개발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면서 "문제는 민간보험사의 영리적 목적에 데이터를 제공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이들이 이들 자료를 다시 재조합하거나 비식별화해 다른 정보와 결합 유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사평가원의 개인건강정보유출, 각종 개인정보의 결합조치 등은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이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사업의 미명하에 각종 공공기관을 동원한 박근혜정부의 무차별 규제완화책의 일환이다"라며 "개인건강정보를 유출한 심평원을 규탄하고 보건의료 빅데이터사업의 타당성부터 안전성, 효용성까지 전면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민단체는 "민간보험사의 보험금 지급거부 사유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항목은 '기왕증(환자가 과거에 경험한 질병) 고지의무 위반'이다"라며 "그 여부를 가리는 것은 민간보험사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한 숙원사업인데 심평원은 '건강보험'이라는 공적인 목적을 위해 보유하고 있는 '국민건강 질병정보'를 민간보험사에 판매해 그들의 숙원사업을 해결해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승택 심평원 원장은 "보건복지부,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기준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