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금융권 대출 옥죄기, 저신용자·중신용자 동반 피해 속출…"대선 의식한 현실성없는 과도 규제" 지적

주력 신용카드로 하나카드를 쓰고 있는 직장인 김 모(48)씨는 3일 무심코 스마트폰에 깔린 하나카드 애플리케이션으로 장기카드대출(카드론)을 조회했다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지난달 말까지만 해도 1960만원에 달했던 이용가능 금액이 불과 사흘 새 '0원'으로 둔갑해 있었다.
전산 착오인가 싶어 카드사 콜센터에 따졌더니 "대출 한도가 없는 게 맞는데 이유는 모른다. 실무 부서에서도 확인이 어렵다고 한다"는 무성의한 답변만 돌아왔다.
김 씨는 "몇년째 VIP(클래식) 등급을 유지하는 고객에게 문자 한통 없이 대출 한도를 절반 감액도 아닌 제로로 매정하게 설정한 처사에 화가 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금융당국의 제2금융권 대출 옥죄기에 대한 부작용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 총량규제' 가이드라인이 일선 현장에 편의적인 잣대로 작동하면서 급전이 아쉬운 저신용자는 물론 상환능력이 있는 우량 중신용자까지 대출 길이 막힌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금융 포퓰리즘 공약에 편승한 듯한 금융당국의 무리한 정책이 혼란을 초래했다는 불만이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발표한 제2금융권 건전성 관리 강화방안에 따라 이달부터 저축은행·상호금융·카드사·할부금융사 등은 사내 충당금 규모를 늘려야 한다. 2금융권은 이를 사실상의 총량규제로 봤다.
이 중 카드사의 경우 2개 이상 카드론을 이용하는 다중채무자에게 돈을 빌려줄 때 추가 충당금을 30% 적립해야 한다. 충당금 부담 탓에 카드사로선 고위험 대출을 취급하지 않으려 하거나 금리를 더 높여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사실 정부의 2금융권 대출 억제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여신전문금융회사 대출자 중에서 취약차주(저신용·저소득) 가 차지하는 비중은 11.9%에 이른다. 같은 기간 은행 대출자 취약차주 비중(1.8%)보다 6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저신용자는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사람, 저소득자는 연 소득이 3000만원 미만인 사람을 말한다. 취약차주는 이 두 가지 기준에 모두 해당하는 대출자를 뜻하는데 한국은행은 취약차주 비중이 높아진 요인을 신용카드사의 카드론 등 대출 영업 확대로 지목했다.
실제 지난해 3분기 카드론 누적 이용액이 전년 대비 13.4% 늘어난 KB국민카드와 21.6% 증가한 하나카드는 지난달 금감원으로부터 카드론 적정성 여부 실태점검을 받았다. 롯데카드는 같은 이유로 경영유의 및 개선 조치를 받았다.
문제는 선별적 대출심사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는 금융업계의 무차별적 돈줄 죄기가 선량한 수요자들까지 한계상황으로 몰아가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김 씨의 경우 2개 이상 카드론을 이용하는 다중채무자가 아님에도 카드사 자체 고객 심사에서 구제받지 못했다.
신용등급이 낮아 1금융권의 대출 문을 두드릴수 없는 중·저신용자들이 입맛에 따른 잣대로 2금융권에서도 외면받을 경우 더 많은 비용을 치르는 제도권 밖의 불법 사금융에 노출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에서 최근 7~8년새 증가한 경영 지표는 가계 대출밖에 없다"며 "은행이 대출을 줄이면 풍선효과로 2금융권 대출이 불어날 수 있기에 사전 규제하겠다는 방향성은 맞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정책은 양면성이 상존하지만 출구없이 대출규제만 강화하면 서민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권역에서 빚을 끌어올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