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규명을 위해 꾸려진 특별검사팀의 박영수 특별검사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대한민국은 한국전을 겪은 뒤 주로 성공과 자유를 목표로 달려왔다. 두 가지 시대정신이 지배적으로 국민의식을 이끌었고, 그 결과 눈부신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했다. 거기에 뒤따라 복지가 사회정의로 떠올랐고, 최근에는 투명사회라는 명제가 급속히 부상해서 주요 시대정신으로 치솟았다.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 된 집합적인 부조리와 이어서 터진 최순실 게이트가 부른 시민자각이 시대적인 요구다. 투명함에는 공정성과 평등, 준법정신이 맑고 시퍼렇게 작동하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처구니 없는 용인술 패착에 실망하고 분노한 촛불시위는 세종로를 메운 기록적인 압박으로 대통령의 탄핵과 특검에 의한 무더기 수사를 부르며 지축을 흔들고 있고, 세계의 주목까지 집중시켰다. 사건은 몽매한 노파 최순실에게 국정이 휘둘린 데 그치지 않고, 그 비선 측근의 게걸스러운 일탈과 대통령의 베일 속 사생활까지 속속 드러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까지 겹치면서 일종의 해일이 됐다.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특검의 수사로 이 상상밖의 매머드 스캔들에 대한 특단의 검사와 책임추궁은 일단 제도적인 장치 안에서 법률에 의해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됐다. 탄핵소추의 기각이든 인용이든 집권세력의 추락이자 보수의 시련이다. 박 대통령의 친위세력인 친박의 타격을 포함해서 집권 새누리당은 사실상 분당의 내홍을 겪는 등 최악의 위기에 몰렸고, 야권은 득의양양하는 등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안겼다. 경제환경의 악화 속에 맞은 이 내상은 한국사회가 견디기 힘든 큰 아픔이고 비싼 경험이며, 후유증이 오래 지속될 상처가 될 것이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야권과 노총, 경실련 등 1500여 단체들은 탄핵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령의 즉각사퇴와 황교안 권한대행의 직무축소를 요구하며 시위정치를 계속할 태세다. 국정의 위축을 백안시하고라도 보수의 약화를 겨냥하고, 탄핵 후 대통령 선거까지 예상해 야멸찬 공세를 지속할 심산으로 보인다.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이 대중사회 개념을 갈파한 뒤 '대중은 바보'라고 끊임없이 회자돼 왔다. 그만큼 단순하고, 선동과 군중심리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그 휘발성 위에 아무리 잘못했더라도 현직 대통령을 절차없이 “구속하라” “탄핵기각이면 혁명”이라는 등 불을 부치는 선동은 대혼란의 자극이라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시위대와 공권력이 서로 자제해서 충돌은 면했지만 과격한 언어도 일종의 폭력이다. 정치인들이 시위에 앞장서는 행위 자체도 순수한 민의를 오염시킨다는 인상을 준다.  

어떤 정치인들은 막연하게 '국민'이나 '민심'을 전제로 자신들의 입장을 강변한다. 국민 속에는 상충하는 이해와 여러 계층이 내재해 있고, 민심 속에도 다양한 생각과 주의주장이 엄존하는데도 스스로도 앞장선 시위를 전국민인 양 띄우며 아전인수의 논리를 펴는 것은 옳지 않다. 촛불 속에도 가슴이 뭉클하는 진정성이 자발적으로 많이 참여했지만, 동원된 측과 분위기에 젖기 위한 젊은 이들도 많았으며, 그악스러운 집단이기주의와 맹목적인 추종 등 불순한 소리도 높았다. 다수의 동조가 있더라도 강경한 주장까지 전체로 뭉뚱거리면 그 순수성이 훼손되기 마련이다.

시위정치는 구체적인 해결의 수단이 없다. 꼭 필요할 때 소리 높여 의사를 전달하는 일까지가 주어진 몫이다. 일단 민의를 표출한 뒤에는 그래도 제도권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촉구하고 감시해야지, 강성만을 고집하면 실패한 많은 혁명들처럼 파국과 낭떨어지가 우려된다. 파국까지는 아니라도  시위정치가 범람하면 거시적으로는 정부와 의회의 기능을 저하시켜 나라와 국민에게 손실과 희생을 안길 게 뻔하다.   

친반을 막론하고 헌재의 판단에 영향을 주려고 주말마다 벌이는 의도적인 시위는 더이상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을 의식하고 경쟁적으로 띄우는 정치인들의 데마고그나 레토릭도 양식있는 시민이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정답은 아직도 대의민주주의를 건전하게 활용하는 길밖에 없다. 정당과 의회, 정부, 그리고 선거는 인류가 발전시켜온 최상의 제도들이다. 그 안에는 매우 정교한 국정운영의 장치들이 마련돼 있는 만큼 더욱 탁마하여 활용하는 길이 최선이다. 김영란법 탄생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정당들은 여든 야든 오늘의 사태를 심각하게 반성하며 스스로 새롭게 개혁하고, 민의를 여과해서 의회를 중심으로 진지하게 대화해야 지금의 국가적 위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의 금도를 무시하면서 대화에 성실하지 않은 세력은 필경 국민적인 역풍을 맞을 것이며 역사에도 오점을 남길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진보라는 양대 이념적 산맥이 확연하다. 전쟁과 산업화, 민주화, 그리고 여러 갈등구조가 낳은 이런 이념적인 가치체계가 정반합의 융합과정을 거치면서 전향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이상적이다. 최근에 떠오른 투명사회 건설은 양대 이념적 진영이 함께 힘을 모아 이룩해야 할 공동의 명제다.   

세계 1,2,3위 강국들에게 둘러싸인 한국의 국운이 촛불로 길을 열어야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돼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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