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남북조시대 왕조 북주(北周 557∼581)의 기초를 닦은 실권자 우문태(宇文泰)가 핵심 참모이자 정치 멘토인 소작(蘇綽)에게 '치국의 해법'을 묻자 기상천외한 대답이 돌아왔다.
소작이 "탐관오리를 쓰고 탐관오리를 버리면 된다"는 간결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기이하게 느낀 우문태가 이유를 물었더니 소작은 "청백리는 충성심이 없다. 직언을 하고 비판도 한다. 그렇다고 그를 버리면 백성들이 원망을 하고 나라가 위태롭다. 그래서 청백리는 쓸모가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것은 대신들이 충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하들은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조정도 관리들에게 녹봉을 두둑히 줄 수 없다. 대신 권한을 줘서 재산을 긁어모으게 하면 된다. 관리들은 기뻐하며 충성을 다할 것이다"고 탐관오리 유용론을 제시했다.
고개를 끄덕인 우문태가 "탐관오리를 쓰라고 하면서 다시 버리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라고 가르침(?)을 구하자 그는 "관리가 부정부패하는 것은 겁날 것이 없다. 겁나는 것은 당신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다. 말을 듣지 않는 자는 탐관오리 숙청을 명목으로 제거하면 된다. 그러면 안으로는 근심거리가 사라지고 밖으로는 백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탐관오리를 기용해 충성을 받아내고 말을 안 듣는 탐관오리를 처벌하고 크게 부정부패한 자들은 죽여서 백성들의 원망을 누그러뜨리고 재산을 몰수해 국고에 넣는 것이 소작이 제시한 일거삼득의 제왕 용인술이다.
임기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박근혜 정부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점입가경이다.
'넥슨 주식대박'의 신화를 쓴 진경준(49) 전 검사장이 1948년 검찰 수립 이후 현직 검사장으로는 처음으로 구속됐다.
보도 내용으로 미뤄볼때 그는 우리가 학창시절때 역사책에서 배운 탐관오리의 모델이다. 넥슨 주식 시세차익이 120억대, 한진그룹으로부터 받은 용역규모는 130억대에 달한다.
기업체에게 공짜 주식을 뜯는 것도 모자라 비리 수사를 봐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처남이 운영하는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도록 지시한 것은 전형적인 권력의 사유화로 봐야한다.
진 전 검사장의 연결 고리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그 역시 처가 건물의 넥슨 매입 건과 부실 인사검증 등 비리 의혹에 휩싸여 있다.
어디 공직자 뿐이랴. 각종 인사에 개입한 논란을 빚은 십상시(十常侍)니 문고리 3인방이니 하는 청와대 비선 실세그룹에 이어 근래에는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이란 거대 비리 의혹의 몸통까지 수면위로 떠올랐다.
박 대통령의 '역린'으로 불리는 최순실은 지금은 이혼했지만 온갖 소문의 진원지였던 정윤회의 전 부인이기도 하다.
우문태와 소작의 고사는 1400년이나 묵은 얘기지만 21세기 첨단 IT 시대에도 반추할 수 있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 없다.
국가 최고 인사권자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탐관오리를 정략적으로 활용하진 않았더라도 권력 성층권으로부터 호가호위(윗선의 권세를 빌어 횡포를 부림), 가렴주구(백성을 가혹하게 착취함) 식의 비뚤어진 세태가 '창조'된다면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대대적인 인적 쇄신은 커녕 "비방과 폭로성 발언은 사회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측근 사수에 나선 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국민들로부터 동의를 받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