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혈액 보유량 적정 기준 미달
계절적 요인 있지만 작년보다 감소
지자체 헌혈 장려 사업 안정화 도움

겨울철을 앞두고 전국 혈액 보유량이 줄며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 독감 조기 유행과 헌혈 참여 감소가 겹친 가운데 일부 지자체는 헌혈 장려 예산까지 축소되면서 공급 기반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나온다.
2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 결과 이날 기준 전국 혈액 보유량은 4.6일분으로 적정 기준인 5일분에 못 미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전체 보유량은 2만3057유닛이며 혈액형 별로는 A형 3.7일분, O형 3.6일분, AB형 4.9일분으로 확인됐다. B형(6.6일분)을 제외한 전 혈액형이 적정 기준 아래에 있다.

혈액 수급 위기 단계는 혈액 보유량이 5일분 미만이면 ‘관심’, 3일분 미만이면 ‘주의’, 2일분 미만은 ‘경계’, 1일분 미만은 ‘심각’ 단계로 분류된다. 전국 보유량은 이달 초 2만~2만5000유닛대를 유지하다 12일께 2만 유닛 아래로 떨어졌고 최근에서야 소폭 회복했다. 정부는 겨울철마다 독감·감염병 증가와 방학 영향으로 헌혈 참여가 감소하는 흐름이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감소세가 더 뚜렷하다. 지난해 같은 날(11월 25일) 보유량은 약 3만5000유닛 수준이었다.

예년보다 빠른 독감 확산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올해 독감 환자 수는 최근 10년 중 가장 많은 수준으로 보고됐고 감염 우려로 단체 헌혈 일정 취소가 잇따랐다. 입대 시 헌혈 가산점 인정 횟수도 기존 8회에서 3회로 줄면서 대학생 헌혈 참여가 감소한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헌혈 기념품 축소 역시 참여 저하 요인으로 지목된다. 적십자사는 올해 6월 이후 영화관 운영사와 단가 협상이 불발되면서 영화 관람권 지급을 중단했다. 기존 재고가 9월 소진되며 지급이 끊겼고 현재는 편의점 교환권·보조배터리 등 대체 기념품을 제공하고 있다.
지역 현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난다. 지난 18일 기준 충북혈액원 보유량은 3.7일분으로 적정 수준을 크게 밑돌았다. KBS 보도에 따르면 대학교가 밀집한 청주의 주요 헌혈센터에서도 올해 헌혈자가 성안길센터 1100여 명, 충북대센터 400여 명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69세 이하 헌혈 가능 인구 자체가 줄어들면서 지난해 충북의 헌혈 건수는 2015년 대비 9000건 이상 감소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인구구조 변화가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대한적십자사 ‘2024 혈액사업 통계연보’에 따르면 최근 헌혈 실적 중 20대가 35.5%, 10대가 19.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출생아 감소로 청년층 자체가 축소되고 있다. 반면 수혈 수요가 많은 50대 이상 인구는 꾸준히 증가해 헌혈 기반이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계절적 요인이나 감염병이 겹칠 경우 단기간에 재고가 급락할 가능성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지자체는 헌혈 장려 예산을 축소해 대응력이 떨어지고 있다. 경기도는 2026년도 예산안에서 보건건강국이 담당해 온 헌혈 활동 장려 지원사업(1600만원)과 장기기증 생명나눔 활성화 지원사업(3000만원)을 일몰 처리했다.
지난 24일 열린 도의회 예산안 심사에서 최만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기도의 헌혈률은 지난 20년간 1% 수준으로 전국 최하위”라며 “혈액원 자체 예산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헌혈 참여율을 높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경기혈액원이 경기 남부 일부만 관장하고 있어 도 전역을 아우르는 정책 설계·개입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지적하며 광역 차원의 전략 부재를 꼬집었다.

지자체 지원 방식은 지역마다 차이를 보인다. 일부 지자체는 공영주차장 감면, 지역상품권 지급, 예방접종 지원 등 다양한 예우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적용 범위와 수준은 제각각이다. 현장에서는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헌혈 장려 사업이 지역 내 헌혈 참여율 제고와 혈액 수급 안정화에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평가했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올해 11월 평균 혈액 보유량이 4.2일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7일분보다 낮아졌다”며 “동절기에는 수술 증가로 혈액 사용량이 늘고 계절적 요인으로 인한 헌혈 참여 감소, 감기·독감 등 유행성 질환 발생으로 헌혈 부적격자가 증가한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역화폐·상품권 등 인센티브 기간에는 헌혈 참여율이 높아지는 흐름이 뚜렷하다”며 “지자체와의 캠페인, 헌혈 유공 표창, 공공기관 단체 헌혈 등도 안정적인 혈액 수급 기반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