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테카·파로스 등 K바이오
'플랫폼' 넘어 '임상 데이터' 승부
"기술 과시는 끝났다"
옥석 가리기는 결국 '숫자'와 '수출'

엔비디아 발 AI 혁명으로 신약 개발 '10년→1년' 시대가 열렸다. K-바이오는 이제 플랫폼 기술을 넘어 실제 임상 데이터와 기술수출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엔비디아 발 AI 혁명으로 신약 개발 '10년→1년' 시대가 열렸다. K-바이오는 이제 플랫폼 기술을 넘어 실제 임상 데이터와 기술수출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신약 하나에 10년, 비용은 1조원." 제약 업계를 지배하던 공식이 깨지고 있다. 생성형 AI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가 차세대 격전지로 '신약 개발'을 지목하면서다. 신약 R&D(연구개발)의 '경제성' 자체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패러다임 변화로 분석된다.

18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글로벌 빅파마(거대 제약회사)들이 엔비디아의 플랫폼에 줄을 서는 가운데, 'AI 기술력'을 내세웠던 국내 바이오 기업들도 '플랫폼'이 아닌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이라는 실질적 성과를 증명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엔비디아는 제약 바이오 업계로 눈을 돌렸다. 신약 개발에 특화된 생성형 AI 플랫폼 '바이오니모(BioNeMo)' 생태계를 장악하겠단 계획이다.

바이오니모는 수십억 개의 생물학적 데이터를 학습, 새로운 단백질 구조를 설계하거나 기존에 없던 약물 후보물질을 생성해 낸다. 과거 연구원들이 수년에 걸쳐 실험실에서 수행하던 후보물질 발굴 작업을 AI가 단 몇 주 만에 가상으로 끝내는 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AI를 활용할 경우 신약 후보 물질 발굴 기간은 최대 70% 단축되며 관련 R&D 비용은 절반 가까이 절감이 가능하다.

암젠(Amgen), 일라이 릴리(Eli Lilly) 등 빅파마들이 바이오니모 도입을 공식화했다. 엔비디아가 2023년 7월 5000만 달러(약 690억원)를 투자한 AI 신약 개발사 '리커전 파마슈티컬스(Recursion)'는 엔비디아와의 협업 발표만으로 'AI 바이오 수혜주'의 상징이 됐다.

엔비디아가 R&D 비용 절감이라는 '경제성'을 증명하자 국내 투자자들의 눈높이도 달라졌다. 'AI 플랫폼 기술 보유'라는 선언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힘들어졌다.

국내에서는 신테카바이오가 언어모델 기반 AI 플랫폼인 딥매처(DeepMatcher)를 보유하고 있다. 딥매처는 100억 개의 화합물 라이브러리에서 약물 표적에 적합한 후보물질을 찾고, 2억 개 알파폴드 구조에서 언어모델 기반 포켓의 유사도를 찾는다.  1억 개의 단백질 구조 라이브러리에서 언어모델 기반 최적화된 후보물질의 선택적 결합(selectivity) 최적화를 위한 유도체를 만든다.

인공지능(AI) 기반 혁신 신약 개발 전문 기업 파로스아이바이오는 차세대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치료제로 개발 중인 PHI-101의 글로벌 임상 1상 최종 결과보고서(CSR, Clinical Study Report)를 최근 수령했다. 이번 CSR 확보를 통해 기술이전(L/O)을 위한 주요 데이터를 공식적으로 확보한 만큼,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 및 라이선싱 협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PHI-101은 기존 승인 치료제에 내성이 생겨 불응하거나 재발한 AML 환자들에게 안전성과 내약성 및 치료 효능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5개 용량으로 진행된 이번 임상에서 PHI-101은 최고 용량까지 용량 제한 독성이 발생하지 않아 우수한 내약성을 확인하였으며 약물 및 용량과 연관된 활력징후의 변화나 심각한 심장독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AI가 신약 개발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AI가 후보물질 발굴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물질이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임상 1~3상을 통과해 최종 신약이 될 '성공률'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만 업계에서는 AI 도입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본다. 국내 한 대형 제약사 R&D 총괄 임원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AI가 100개의 후보물질 중 실패할 90개를 미리 걸러줘 불필요한 임상 비용 수천억원을 아끼게 해주는 것이 핵심"이라며 "AI를 활용하지 않는 기업은 R&D 원가 경쟁력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결국 투자자들의 관전 포인트는 '어떤 AI 기술이 뛰어난가'가 아니다"면서 "'그래서 그 AI가 찾아낸 신약이 언제 유의미한 임상 데이터를 내고 조 단위 기술수출(L/O) 계약을 성사시키는가'이다. 엔비디아 발(發) AI 혁명이 K-바이오의 '진짜 옥석'을 가리는 분기점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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