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실적보다 체질 변화가 관건
‘신뢰 비용 최소화’ 전략에 무게
내부통제·포트폴리오 개편 주목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이 논의되는 시점에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평가는 단기 실적보다는 그가 그룹 전체에 구축한 경영 체질의 근본적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 회장이 강조해 온 '내실 경영'은 정부가 요구하는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 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맞물려 신한금융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핵심 동력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내년 3월 진 회장의 임기가 마무리되는 가운데 금융권 안팎에서는 연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내부 통제 중심의 경영 기조와 함께 지속가능한 포트폴리오 전환, 주주 환원 확대 등 정량·정성 지표 모두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특히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생산적 금융 방향성과 맞닿아 있는 점은 정책 수용성 측면에서도 긍정적 신호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진 회장의 리더십은 양적 팽창보다는 리스크 최소화와 조직 운영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고 있다. 진옥동 회장의 '생산적 금융'에 대한 정의는 단순히 대출 규모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신뢰 비용의 극소화’를 금융의 중요한 생산성으로 본다. 금융 사고로 인한 단기 손실액뿐만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회복에 드는 막대한 시간 및 자원 낭비야말로 가장 비생산적인 요소라는 판단에서다.
진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내부 통제 강화를 신한의 핵심 경쟁력으로 설정했다. 이는 과거 신한은행장 시절 겪었던 금융 사고의 뼈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경영 판단이었다. 신한금융은 내부 통제를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데 주력했다. 금융권 최초로 책무구조도 조기 도입을 추진하며 최고경영진과 임원들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했다.
또 AI 등 디지털 신기술을 활용한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인적 실수가 발생할 여지를 시스템적으로 최소화하고 눈에 보이는 실적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 인프라를 구축해 장기적인 금융 생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다만 이러한 시스템 혁신 과정에서도 성장통은 불가피했다. 진 회장의 강력한 내부통제 의지에도 불구하고 신한투자증권의 대규모 운용 손실 사고나 계열사 직원의 횡령 사건 등 윤리 의식 부재로 인한 숙제가 불거졌다.
신한금융은 위기 대응에서 책임 회피 대신 정면 돌파를 택했다. 진 회장이 직접 주주 서한을 통해 강력한 재발 방지 의지를 표명하고 사고 발생 '후' 대응에서 사고 '전' 예방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했다는 점에서 위기를 더욱 강력한 조직 체질 개선의 기회로 활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 회장의 생산적 금융 구상은 포트폴리오의 질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최근 신한금융은 생산적 금융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구축해 온 경험과 역량을 토대로 2030년까지 5년간 총 110조원 규모의 생산적·포용적 금융을 공급한다고 밝혔다. 자금중개·위험분담·성장지원 등 금융의 본질적 기능을 강화해 산업 전반의 혁신과 균형 있는 성장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경쟁사 대비 단순한 규모 경쟁을 넘어 전략적 차별성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한금융은 자금 배분에서 중소·중견기업 자체 대출 비중을 높여 실물 경제 전반에 대한 지원 의지를 강화했다. 차별화되는 지점은 '국가 전략 인프라 금융 주선' 역량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광역철도 및 반도체 클러스터 인프라 등에 10조원 규모의 금융을 주선함으로써 신한금융이 단순 자금 공급자를 넘어 대형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을 선도하는 리딩 뱅커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AI·반도체와 더불어 콘텐츠, 식품 등 이른 바 'K-붐업' 산업까지 지원 범위를 확장한 점도 눈에 띈다. 이러한 전략은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이행을 위해 그룹 내 '생산적 금융 PMO(프로젝트 관리 조직)'를 신설하는 등 조직 차원의 실행력까지 확보하겠다는 진옥동 회장의 내실 경영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간 진 회장의 'OK 진' 리더십은 조직 내부의 문화적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용했다. 'OK 진'은 진 회장이 임직원들과의 타운홀 미팅이나 회의에서 직원들의 의견이나 아이디어를 경청한 후 긍정적으로 수용하며 "OK!"라고 자주 답변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알려졌다. 이는 형식과 권위를 내려놓고 현장 중심의 수평적 의사결정을 지향하는 그의 성향을 반영한다.
수평적 소통 문화는 조직 내부에 위험 요소를 솔직하게 보고할 수 있는 투명한 보고 체계를 구축했다. 이는 금융 사고 발생 시 은폐나 묵인 없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돼 불필요한 마찰 비용을 줄이는 생산적 요소로 기능했다. 임직원들 내에서는 소통과 '셀프 리더십'을 독려하는 경영 포럼 등은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와 창의성을 끌어올렸다는 내부 평가가 나온다.
진 회장은 고객 신뢰 회복뿐 아니라 주주 가치 제고에도 집중했다. 올해 상반기 5000억원의 자사주 매입을 포함한 공격적인 주주환원 정책은 경쟁사 대비 높은 수준으로 '밸류업' 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아울러 녹색금융 확대, RE100 동참과 더불어 취약차주와 소상공인 등을 위한 상생 금융 프로젝트를 확대하며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상생금융기획실' 신설과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무료 법률지원까지 제공하는 것은 금융의 역할을 실질적인 지원으로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익명을 요청한 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실적 외에도 그룹 차원의 변화 방향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될 것”이라며 “장기적 관점에서 기존 경영 기조의 연속성 여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 본연의 역할 복원을 강조하는 시점에서 경영자의 생산적 금융 기조와 실질적 실행력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조직 리스크 관리 체계, 자금 흐름의 질적 전환이 연임 논의에서 유의미한 잣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