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랩어카운트 계약자산 완만한 반등
'채권 돌려막기' 후폭풍 지나며 안정 조짐
지점운용 중심 자금 유입, 신뢰 회복은 과제

증권사의 랩어카운트 시장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맞춤형 자산관리에 대한 수요가 늘며 지점운용형 랩을 중심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빠른 성장 속에 운용 역량과 내부통제 강화라는 과제도 함께 떠오른다.
5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증권사의 랩어카운트 계약자산은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며 지난해 하락세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는 흐름을 나타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2025년 1월 말 86조4056억원이던 계약자산은 2월 일시 감소했으나 3월 이후 반등세로 돌아서며 상승 흐름을 이어갔다.
4월에는 82조2147억원으로 1조8957억원 증가했고, 6월 말에는 87조1501억원으로 3조7528억원 늘었다. 7월과 8월에도 각각 88조5468억원, 91조8927억원으로 상승해 8월 말 기준 연초 대비 약 5조5000억원 이상 늘었다. 월별 증감 폭이 크진 않지만 상반기 이후에는 자금 유입 속도가 뚜렷해지며 자산관리 수요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랩어카운트는 고객의 자산을 증권사가 위임받아 운용하는 일임형 자산관리 서비스다. 고객은 투자 성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프라이빗뱅커(PB)는 이에 맞는 상품을 제안하며 사후 관리를 담당한다. 실제 매매와 포트폴리오 운용은 본사 랩운용팀이 맡는다. 증권사에서는 브로커리지, IB, 트레이딩과 함께 자산관리(WM) 부문을 핵심 수익원으로 두고 있으며 최근에는 초고액자산가를 겨냥한 맞춤형 랩과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랩어카운트는 지난 2022년 5월 계약자산이 153조원을 넘어서며 정점을 찍었지만 그해 하반기 채권시장에 유동성 경색이 일어나면서 자금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후 일부 증권사가 만기 도래한 채권을 새 상품으로 교체하는 이른바 ‘채권 돌려막기’ 방식으로 운용한 사실이 드러나며 시장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당초 대규모 영업정지 수준의 징계가 예상됐지만 그보다는 제재 수위가 낮아 관련 파장은 점차 진정되고 랩어카운트 시장도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한국투자·미래에셋·NH투자·KB·하나·교보·SK·유진투자·유안타증권 등 9개 증권사에 기관경고·주의와 함께 총 289억7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금융당국의 제재 확정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일단락되자 투자자들의 관심은 본사 중심의 일임형 운용보다 개별 성향을 반영할 수 있는 맞춤형 관리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현장 PB가 직접 운용하는 지점운용형 랩어카운트가 자금 유입의 중심축으로 떠오르며 시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금투협 통계에 따르면 지점운용형 랩어카운트 계약자산은 올해 1월 8조6588억원에서 8월 10조6533억원으로 8개월 만에 약 2조원 늘었다.
미래에셋증권의 개인맞춤형 랩어카운트(지점운용랩) 잔액은 최근 5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7월 말 기준 시장점유율은 45%로 업계 1위다. 개인맞춤형 랩은 PB가 고객의 투자 목적과 재무 상황을 분석해 포트폴리오 구성부터 매매, 리스크 관리까지 일괄 수행하는 서비스다. 일반 계좌 대비 매매·환전 비용이 낮고 국내외 주식은 물론 상속·증여 등 종합 재무 상담도 가능하다.
메리츠증권은 지점운용형 랩어카운트 잔고가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 7월 기준 잔고는 1조124억원으로 지난해 말(8371억원)보다 20.9% 증가했다. 계좌 수 역시 같은 기간 15% 늘어난 2862좌로 집계됐다.
업계에선 금리 변동과 투자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도 지점운용형 랩의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본사 일임형 중심의 획일적 운용에서 벗어나 투자자별 성향과 시장 상황에 맞춘 ‘현장형 자산관리’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일각에선 빠른 자금 유입 속에 운용 역량과 내부통제 강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과거 ‘돌려막기’ 논란이 재현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본지에 “투자자 신뢰 회복이 완전한 수준은 아니며 수익률 중심의 영업 경쟁이 다시 과열되지 않도록 균형 잡힌 운용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