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부채 금리리스크 저비용으로 감소
자산은 보험사, 운용은 재보험사 담당
단순 위험 이전에서 ‘운용 협업’ 구조로

금융감독원이 도입한 '일임식 공동재보험'은 보험사가 자산의 운용 손익과 권한을 재보험사에 위임함으로써 저비용으로 K-ICS 등 자본 건전성을 개선하고 재보험사가 운용 파트너로 부상하며 자산시장 판도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
금융감독원이 도입한 '일임식 공동재보험'은 보험사가 자산의 운용 손익과 권한을 재보험사에 위임함으로써 저비용으로 K-ICS 등 자본 건전성을 개선하고 재보험사가 운용 파트너로 부상하며 자산시장 판도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

보험사의 자본건전성 보완 장치로 인식되던 공동재보험이 자산운용 시장의 새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도입한 ‘일임식 자산유보형 공동재보험’은 자산의 법적 보유권은 보험사에 두되 운용 판단과 손익을 재보험사에 귀속시키는 구조다. 단순한 규정 개정이 아니라 재보험사가 위험인수자를 넘어 실질적 운용 플레이어로 전면에 등장하는 제도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제도 개편은 금감원이 공동재보험 업무처리 가이드라인과 감독업무시행세칙을 개정하면서 가능해졌다. 새 구조는 기존 자산이전형과 약정식 자산유보형의 장점을 절충했다.

자산이전형은 구조가 단순하고 재보험사가 운용에 바로 착수할 수 있으나 거래 시점에 재보험료를 선지급해야 해 유동성 부담이 크고 재보험사 파산 시 신용위험이 따른다. 반면 약정식 자산유보형은 보험사가 자산을 그대로 보유해 유동성 부담은 적지만 재보험사의 운용 개입이 어려워 재보험 비용이 높고 거래 구조가 복잡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임식 자산유보형은 이 같은 한계를 동시에 보완했다. 보험사는 재보험료 상당액의 유보자산을 장부에 남겨 현금 유출을 최소화하면서 그 자산의 운용 판단과 손익을 재보험사에 위임하는 형태다. 보험사는 유동성 부담과 신용위험을 줄이고 재보험사는 운용수익을 직접 확보할 수 있다. 금감원은 재보험사에 귀속되는 운용손익이 보험사의 경영실태평가나 공시기준이율에 반영되지 않도록 세칙을 개정하고, 내부평가기준과 공시지침도 함께 보완했다.

자본관리 측면에서의 효과도 뚜렷할 것으로 전망된다. IFRS17·K-ICS 도입 이후 보험사의 장기부채가 금리변동에 민감해지면서 요구자본이 커졌고 공동재보험을 통해 금리위험을 재보험사로 이전하면 요구자본이 감소해 킥스(K-ICS) 비율이 개선된다.

특히 재보험료 현금유출이 없어 자본 확충 효과를 저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어 대형 생명보험사 중심으로 활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에서는 공동재보험 시장 규모가 초기 수조원대 수준으로 형성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제도 변화는 재보험사의 역할도 크게 바꿀 전망이다. 운용 권한이 부여되면 재보험사는 단순 위험 분산 역할에서 벗어나 장기 유보자산을 직접 운용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운용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글로벌 재보험사들은 이미 ESG·인프라·대체투자 등 장기 운용 역량을 확보하고 있어 국내 보험사와의 위탁 운용 협업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를 통해 국내 보험업계의 자산운용 다변화와 효율성 제고가 촉진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자산의 법적 소유권은 보험사에, 운용 손익은 재보험사에 귀속되는 이원적 구조 탓에 손익배분 기준과 공정가치 평가 주기가 복잡해지고 회계처리 부담이 늘어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감원은 이런 우려를 반영해 거래단계별 회계 예시와 주요 질의응답을 담은 업무처리 가이드라인을 개정·배포했다. 감독당국은 예측 가능성을 높여 시장 혼란을 줄이고, 참여 기관 간 이해관계를 명확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 파급력은 제도 활용 규모와 실행력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생명보험사를 중심으로 시범 거래가 성사되면 후속 수요가 빠르게 확산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는 금리 변동성이 커진 환경에서 자본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입증되면 공동재보험 시장은 예상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재보험사는 운용성과와 리스크관리 역량을 계약 조건으로 입증해야 하며 국내 재보험사들은 회계·자본·운용을 통합한 ‘풀스코프 리스크 관리체계’ 구축이 불가피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이번 구조는 자본효율, 유동성, 운용역량을 동시에 최적화하려는 시도로 가격 협상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ALM 전략과 회계·리스크 거버넌스를 통합 설계한 회사가 제도 초기 실익을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허아은 기자 ahgentum@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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