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지역 자살률 10만명 당 36.3명
10곳 중 3곳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부재
"의료 인프라보다 사회적 고리 형성부터"

인구감소지역의 자살률이 전국 평균보다 현저히 높게 나타났다. 정신과 의사조차 없는 지역이 30%에 이르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노인 자살의 근저에는 사회적 단절이 자리하고 있으며 관계망 회복을 위한 지역 복지의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인구감소지역 89곳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36.3명으로 전국 평균(29.1명)보다 7.2명 높았다. 그중 67곳(75.3%)이 전국 평균보다 높았다. 자살률 상위 10곳도 모두 인구감소지역이었다. 충남 청양군(60.3명), 강원 홍천군(59.9명), 전남 진도군(55.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인구감소지역 자살률에는 고령 인구 자살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간한 '농촌 지역 자살예방을 위한 과제' 보고서에서도 2023년 기준 농촌 자살률은 도시보다 1.2배 높았고 65세 이상 자살이 전체 자살 사망의 40%를 차지했다. 노인 자살은 우울증 같은 정신과 질환, 만성 신체 질환, 사회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관여하는데 인구감소지역은 의료시설 부족, 교통 불편 등의 이유로 즉각적 대처가 어렵다.
정신건강 의료 접근성 또한 낮다. 전국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한 명도 없는 28개 지역 가운데 24곳(85.7%)이 인구감소지역이었다. 인구감소지역의 70% 이상은 정신과 의사 수가 전국 평균에도 못 미쳤다. 자살률 상위 10곳 가운데 청양군, 정선군, 봉화군, 태안군, 영월군 등 5곳에도 정신과 의사가 부재했다.
김선민 의원은 “인구감소지역 자살률과 정신과 의사 배치 현황만 봐도 인구감소지역의 열악한 보건의료 환경을 알 수 있다”며 “보건복지부는 자살률이 높은 인구감소지역에 대해 심층적인 조사와 연구를 실시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 요구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정신과 의료 인프라 확충만으로는 실질적 변화가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본지에 “노인 세대는 아직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깊어 치료 접근성이 낮다”며 “꼭 정신과가 아니더라도 가정의학과나 내과 등 1차 의료기관에서 노인 우울을 조기 선별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석재은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는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인구감소지역의 높은 자살률은 결국 사회적 단절의 결과”라며 “정신건강의학과 확충 같은 의료적 접근만으로는 근본 해결이 어렵다. 사회적 연결 회복에 초점을 두고 지역사회 안에서 이 단절을 어떻게 복원할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석 교수는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는 가족관계 단절, 경제적 어려움, 돌봄 공백 등 여러 층위의 문제가 누적돼 있다”며 “이 과정에서 어떤 경로로 사회적 단절이 발생하는지를 역으로 추적하고 관계망을 다시 잇는 복지적 고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고독사 문제 역시 위험집단 중심의 제한적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돌봄이 필요한 고령층뿐 아니라 중장년 남성 등 예상치 못한 집단에서도 고립이 발생하는 만큼 익명성과 개방성이 보장된 ‘느슨한 공동체’ 형태의 사회적 관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인들에게는 물리적 접근성뿐만 아니라 심리적 접근성도 중요하다”며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며 대화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경로당처럼 전국적으로 분포한 인프라도 폐쇄적 친목 공간이 아니라 지역 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형 커뮤니티로 재구성한다면 사회적 연결망 회복의 실질적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