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쿼터 절반·관세율 두 배, FTA국도 예외 없어
탄소국경조정제도 본격 시행 앞두고 부담 확대
업계 "기술·에너지 효율화가 생존 좌우할 분기점"

유럽연합(EU)이 철강 수입 제한 강도를 한층 높였다. 연간 무관세 수입쿼터를 절반 가까이 줄이고 초과 물량의 관세율을 두 배로 올리는 새 규정이 발표되면서 한국 철강 산업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예상된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7일(현지시간) 유럽 철강업계 보호 대책을 담은 규정안을 공식 발표했다. 규정안에 따르면 모든 수입산 철강 제품에 대한 연간 무관세 할당량(수입쿼터)은 최대 1830만t로 제한된다. 이는 전 세계적인 공급 과잉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2013년 철강 수입량을 기준으로 산출한 수치라고 집행위 고위 당국자는 설명했다. 지난해 수입쿼터(3053만t)와 비교하면 약 47% 줄어드는 규모다. 총량이 감축됨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국가별 수입쿼터 축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입쿼터 초과 물량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기존 25%에서 50%로 인상된다. 이번 조치는 유럽경제지역(EEA) 국가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한 모든 제3국에 적용되며, 국가별 수입쿼터는 향후 무역 상대국과의 개별 협상을 통해 확정될 예정이다.

집행위는 “현실적으로 FTA 체결국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불가능”이라며 “FTA 파트너국들이 EU 철강 수입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이들 중 일부는 글로벌 공급 과잉에도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협상은 가능하지만 면제는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 구상은 기존에 시행 중인 철강 세이프가드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다. 기존 세이프가드는 EU가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철강 관세 조치에 대응해 도입한 제도로 국가별로 지정된 쿼터 수준까지는 무관세로 수입하되 초과 물량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이 조치는 내년 6월 말 강제 종료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유럽 철강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무역 제한 조치를 지속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집행위의 입장이다.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한국산 철강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EU는 한국 철강의 최대 수출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EU 철강 수출액(MTI 61 기준)은 44억8000만 달러(약 6조2836억원)로 단일국가 기준 1위 수출 시장인 미국(43억4700만 달러)을 소폭 웃돌았다.

이번 규제 강화는 국내 주요 철강사의 수출 물량 축소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EU 전체 수입쿼터가 약 47% 줄어들면서 한국에 할당될 국가별 쿼터 역시 대폭 삭감이 예상된다.  초과 물량에 50%의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유럽 시장 내 가격 경쟁력도 상실하게 돼 사실상 수출이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고급 자동차용 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의 유럽 수출 비중이 큰 경우 채산성 압박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의 철강 수출은 미국의 ‘관세 폭탄’ 영향이 본격화한 지난 5월 전년 동월 대비 12.4% 감소한 데 이어 6월 -8.2%, 7월 -3.0%, 8월 -15.4%의 감소율을 기록하며 부진이 이어졌다.

여기에 미국이 8월부터 50% 품목관세 적용 범위를 냉장고, 변압기, 전선·케이블 등 407종의 파생상품으로 확대하면서 대미 수출이 위축됐고, 이에 따라 전체 철강 수출도 추가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다만 철강업계는 EU 집행위원회가 국가별 수입쿼터를 추후 개별 협상을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힌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부 간 협상을 통해 수출 쿼터를 최대한 확보하고, 글로벌 쿼터를 활용해 EU 시장 내 영향력을 최대한 지켜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여성경제신문에 “EU 시장은 단순한 물량 문제가 아니라 제품 경쟁력과 품질 신뢰도를 평가받는 시장이라 부담이 크다”며 “특히 자동차강판이나 조선용 후판처럼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수출해온 기업들은 채산성 압박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쿼터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면 생산 조정이 불가피하고, 단기적으로는 유럽 이외 지역으로 수출선을 다변화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기술력과 원가 경쟁력을 얼마나 빠르게 끌어올리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EU의 쿼터 및 관세 강화는 단순한 무역 장벽을 넘어 ‘환경 규제’와 연계된 복합적인 통상 규제라는 점에서 한국 철강업계에 더 큰 부담을 지운다. EU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본격 시행할 예정이며 철강은 이 제도의 핵심 적용 품목이다. EU가 역내 기업과의 형평성을 위해 도입하는 일종의 ‘탄소 관세’ 제도다.

탄소 배출 비용이 반영되지 않은 수입품에 대해 EU 내 생산 제품과 동일한 수준의 탄소비용을 CBAM 인증서 구매 강제를 통해 부과하는 방식이다. 철강은 CBAM 적용 대상 6개 품목(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중에서도 한국의 대(對)EU 수출 규모가 가장 크며 다양한 산업의 중간재로 사용돼 전방산업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다. 이에 한국 철강 제품은 50%의 무역 관세에 더해 탄소 비용까지 이중으로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본지에 “무역 장벽과 환경 규제가 동시에 강화되면서 사실상 유럽 수출의 진입 장벽이 한 단계 높아졌다”며 “기존에는 가격 경쟁력과 품질로 승부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탄소 배출량 자체가 경쟁력이 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EU 시장은 철강업계의 기술력과 지속가능성을 평가받는 가장 까다로운 시장인 만큼, 단기적으로는 쿼터 협상에 집중하되 중장기적으로는 저탄소 생산체계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며 “탄소 저감 설비 투자와 공정 효율 개선이 앞으로의 생존 조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경제신문 박소연 기자 syeon0213@seoulmedia.co.kr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