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복제 단속, 합의금 비즈니스 변질
교육조건 기소유예 대기자만 수천명
개인 소장 문제 없는데 공유하면 불법
영화사·로펌, 극장 불황에 더더욱 기승
#1. 대학생 A씨는 시험이 끝난 뒤 토렌트에서 최신 영화를 내려받았다. 단순히 자기만 보려던 목적이었다. 그러나 며칠 뒤 경찰서로 출석 요구서를 받았다. 토렌트 구조상 그는 단순한 ‘다운로더’가 아니었다. 영화를 내려받는 순간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조각을 전송하는 ‘시더(Seeder)’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의도와 달리 배포자가 돼버린 A씨는 결국 수백만원의 합의금을 지불해야 했다.
#2. 직장인 B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무료 게임 토렌트’ 링크를 눌렀다. 토렌트는 이용자끼리 서로 파일 조각을 주고받는 ‘피어(Peer)-투-피어’ 방식이라, 내려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파일을 퍼 나르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그의 IP 주소는 그대로 추적됐다. 저작권자 측은 B씨를 불법 배포자로 고소했고, 그는 졸지에 저작권법 위반 피의자가 됐다. “그냥 한 번 받아본 건데…”라는 해명은 소용없었다.

토렌트를 통한 불법 저작물 유통이 저작권 분쟁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한 번 내려받았다가 졸지에 범죄자 됐다”는 피해자 호소가 이어지고 고소 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2024년 저작권 교육조건부 기소유예제 교육 의뢰자는 6667명으로 2021년(521명)에 비해 1180% 증가했다. 토렌트 불법 이용이 급증하면서 검찰이 해당 제도를 적용한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토렌트는 파일을 조각내 분산 전송하는 P2P 방식의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에 내려받는 순간 동시에 다른 사용자에게 업로드가 동시에 이뤄진다. 본인만 보려고 내려받아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에게 파일을 전송하는 서버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에 의도와 무관하게 ‘불법 배포자’로 처벌 받을 수 있게 된다.
29일 여성경제신문 취재 결과, 이 틈새를 영화 배급사와 일부 로펌들이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복제 근절’이라는 명분 아래 합의금이 주요 수익원으로 변질된 것이다. 합의금 시장은 이미 하나의 산업처럼 작동하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고소 사건의 상당수가 합의금을 전제로 한 민형사 분쟁으로 흘러가고 있다. 교육조건부 기소유예 제도 역시 한계에 부딪혔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교육 의뢰자는 급증했지만 실제 교육을 받은 인원은 2457명에 불과했다. 대기자는 8000명을 넘어서면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도의 취지였던 ‘처벌 대신 교육’ 원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일부 영화사가 합법적 수익 모델 대신 합의금에 의존하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 극장 불황과 OTT 경쟁 심화 속에서 ‘합의금 비즈니스’가 주요 현금줄이 된 셈이다.
법조계 불황도 맞물렸다. 일부 변호사들이 영화사에 불법 업로드 추적을 권유하며 합의금을 수익 수단으로 제안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단순히 한 차례 내려받았다는 이유로 수년간 경찰·검찰 절차를 반복하며, 결국 불안감에 합의금을 지불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저작권위원회와 저작권보호원은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인력·예산 부족을 이유로 실질적 대응은 미흡한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문화계 관계자는 “저작권 보호가 목적이라면 합의금 구조부터 해체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범죄자 낙인을 찍는 방식은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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