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돌봄 넘어 의료 기능 강화 제안
상주 간호사 있어도 기본 처치 못 해
"시설 간호사 배치율 강화 병행돼야"

요양시설 입소 어르신들이 단순한 수액 주사나 소변줄(도뇨관) 교체 때문에 병원 응급실을 오가야 하는 현실이 개선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3일 보건복지부 의뢰로 한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요양시설 내 적정 의료행위 범위 설정 연구'보고서는 요양시설을 단순 생활공간이 아닌 의료 기능이 강화된 돌봄 공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장에서는 기본 처치조차 막혀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뒤늦은 논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핵심은 현재 법적으로 의료기관이 아닌 요양시설에서도 의사의 지휘·감독 아래 간호사가 일부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구체적인 시행 방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보고서가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제도의 경직성이다. 현재 요양시설 입소 어르신 대부분은 치매, 뇌졸중 등 복합적인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지속적인 의료 관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요양시설은 의료법상 의료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간호사가 상주하더라도 수액 주사, 도뇨관 및 비위관(L-tube) 삽입, 혈액·소변 검사 등 기본적인 의료행위조차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어르신들은 간단한 처치를 위해 병원에 오가거나 시설에서 '가정간호 서비스'를 별도로 이용해야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요양시설에서 이용한 가정간호 서비스는 무려 72만7000여 건에 달하며 이는 전체 가정간호 서비스의 62.3%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수치다. 이 중 수액 주사 등 주사 행위가 49.3%로 절반을 차지했고 도뇨관 관리(13.5%), 비위관 삽입(8.8%)이 뒤를 이었다. 이는 요양시설 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큰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제시됐다. 의료법과 노인복지법을 개정해 요양시설을 의료행위가 가능한 예외적인 장소로 명시하고 간호사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경미한 의료행위'의 범위를 법적으로 규정하자는 것이다.
의료행위의 주체도 명확히 했다. 현재 시범사업 중인 '일차 의료 방문 진료' 의사가 요양시설 계약 의사를 겸직하며 '요양시설 간호 지시서'를 발급하고 요양시설에 근무하는 숙련된 간호사가 이를 실행하는 모델이다. 방문 진료 의사는 소속 의료기관을 통해 진료비를 청구할 수 있어 현재 계약 의사 제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또 시행할 수 있는 의료행위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기존 전문요양실 시범사업에서 허용된 간호 처치에 더해 △수액·항생제 등 주사제 투여 △혈액·소변 등 검체 채취 △도뇨관·비위관 최초 삽입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보고서는 이런 제도가 안착하기 위한 선결 과제로 요양시설 간호사 의무 배치 기준 강화를 최우선으로 꼽았다. 현재 24.7%에 불과한 요양시설 간호사 배치율을 높이지 않고는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 요양시설 원장은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현장에선 시설에 간호사가 있어도 수액, 콧줄 삽입 같은 기본 처치조차 불법으로 묶여 있다. 실제로 환자가 주말이나 연휴에 콧줄이 빠지면 가정간호사가 오지 않아 며칠을 굶는 사례도 생기고 소변이 막혀 배가 부풀어도 119를 불러 병원까지 가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간호사가 상주하는 시설이라면 이런 최소한의 처치는 허용돼야 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간호사 배치를 강화하고 적절한 교육을 병행한다면 요양시설 내 경미한 의료행위 확대는 꼭 필요한 변화라고 본다"고 말했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ssence@seoulmedi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