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철의 인문기행]
실크로드 그 신화의 길 (1)
중국의 철길과 나의 사색
중국은 현재 그 규모와 연결망 부분에서 아마 세계 최고의 철도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동안 중국 여행에 몰입했을 때 숙박비와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야간열차를 많이 이용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야 한다. 열차 여행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길게는 1~2일, 적어도 10시간 이상 기차에 갇혀 있는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몇 번 다른 사람과 함께 중국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북경(北京)에서 며칠을 보내고 하남성(河南省) 낙양의 학회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갈 때는 기차를 탔지만, 북경으로 돌아올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며 비행기를 타자고 고집하는 바람에 여행의 흥취도 깨지고 돈을 낭비하는 일도 있었다.
경우는 다르지만 2인 이상과 같이 여행하면 불편한 일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대부분 혼자서 여행했다. 그것이 편하고 좋다. 내가 관심이 있고 가고 싶은 곳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보고 듣고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좀 외로울 뿐이다. 중국의 철도는 싸고 편하다. 다만 무질서함과 시끄러움 등은 참을 수밖에 없다.

기차의 등급은 과거에는 보통 특쾌(特快) 보쾌(普快)로 나뉘며, 장거리의 경우 ‘부드러운 침대(軟臥. 별실 한 칸 양쪽 2층 침대)’, ‘딱딱한 침대(硬卧. 별실 한 칸 양쪽 3층 침대) ‘부드러운 의자(軟座. 일반 좌석 양쪽 2+3석)’ ‘딱딱한 의자(硬座)’로 구분되었다. 속력은 최고 120km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대부분 고속열차로 바뀌면서 G 열차(高鐵. 고속열차 300km/h 이하), D 열차(動車. 약 250km/h 이하), C 열차(城際. 대개 양쪽 城을 오가는 열차. 200km/h 이하), M 열차(磁浮. 자기부상열차. 짧은 특수 지역을 왕복하는 열차. 상해(上海) 포동(浦東)공항 약 430km) 등이 있다. D 열차(動車)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좌석은 일등좌(一等座)(2+2), 이등좌(二等座)(3+2), 전망석, 침대석(2층 침대. 일부 D 열차) 등이다.

7월 여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남경 남역(南京 南站)에서 오후 기차(중국은 화차火車라고 부름)를 탔다. 당시의 특쾌(特快) 딱딱한 침대(硬卧)차를 탔다. 광활한 화북평원(華北平原)을 하루 종일 그리고 밤새 달렸다. 설레는 마음에 도통 잠을 잘 수 없었다.
당시 남경에서 서역의 신강(新疆)의 성도(省都)인 오로목제(烏魯木齊)까지는 지금처럼 고속철도(高铁)가 완공되기 전으로 비록 특급열차도 시속 120km 정도였다. 남경 남역(南站)에서 실크로드의 출발지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까지는 약 1100km인데 여러 성의 큰 도시들의 기차역에는 길게는 1시간 이상 정차했다.
서안까지 정차하는 인구 500만 이상의 도시를 열거하면, 강소성(江蘇省) 남경 남역(南京南站) - 안휘성(安徽省) 합비 남역(合肥南站) - 하남성(河南省) 정주 동역(鄭州東站) - 하남성 낙양 용문역(洛陽龍門站) - 섬서성(陝西省) 화산북역(華山北站) - 섬서성 서안 북역(西安北站) 등이다. 지금은 전국이 고속철도가 건설되어 5~6시간 정도 걸리지만, 10년 전만 해도 15시간 이상 소요됐다.

그리고 천산만수(千山萬水) 수없이 많은 산과 강물을 지난다. 새벽안개 자욱한 대도시를 지나는 밤 기차에서 향수를 느낀다.
많은 생각을 한다. 이렇게 광활하고 비옥한 곡창지대가 있는데 왜 중국은 역대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일들이 일어났는가? 1950년대 대약진운동 때만 해도 정확한 기록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적어도 7000만명의 아사자가 있었다고 한다.
후일 지나쳐 온 대도시 대부분을 따로 혹은 연결하여 여행했다. 특히 하남성의 성도(省都)와 낙양(洛陽)은 특별한 인연이 있어 대략 10차례 정도 방문했다. 하남성은 가장 인구가 많고 가장 가난한 성에 속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자부심이 매우 강한 곳이며, 다음에 소개하겠지만 객가(客家) 문화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실크로드의 출발지는 지금의 서안(西安). 당나라 때 이름은 장안(長安). 그 외 돈황(燉煌), 경주(慶州) 등의 설이 있다. 종점은 로마(그 외 이스탄불, 지중해 등의 설이 있다)이다.
서안역에는 2시간 이상 정차했다. 이미 없어졌지만, 2000년대까지도 새벽에 열차 역에서 즉결재판을 시행했다. 간밤에 승객의 돈을 훔치거나 가벼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즉결재판으로 1~5년의 단심제로 형을 부과한 뒤 경찰이 끌고 갔다.
서안에서 운행에 필요한 연료와 물 등을 보충한 뒤 기차는 출발한다. 여기서부터 현재 중국의 영토 내에 있는 비단길 즉 실크로드(Silk Road)가 시작된다.
섬서성(陝西省) 서안은 중국의 사대고도(四大古都)이며 최소 13개 왕조, 많게는 16~17개의 왕조가 도읍을 정했던 곳이다. 현재 중국의 영토에서 보면 거의 정중앙에 위치한다. 기후적으로는 가장 더운 사대화로(四大火爐)에 해당하는 도시다. 장안성(長安城), 병마용(兵馬俑), 화산(華山), 종남산(終南山) 등 수도 없이 많은 유적이 있는 도시이다. 서안에는 그동안 3번을 여행했는데, 서안의 인문 기행도 준비하고 있다.
서안에서부터는 서북지대의 황량한 지형을 만나게 된다. 중국의 남북을 가르는 진령(秦嶺)산맥, 북쪽으로 황하가 지나며, 깊은 협곡과 침식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황토고원, 유명한 호구(壺口)폭포가 있다.
이제 실크로드의 얘기로 돌아가자.
(다음회로 이어짐)
여성경제신문 손흥철 전 안양대 교수·중국 태산학술원 객좌교수
chonwangko@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