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불만만 증폭시킨 반쪽 개혁
극우 득세 대안 아닌 반사체 원리
복지 지출은 민심이 투영된 결과
정치가 지켜내지 못해 신뢰 붕괴

2022년 9월 18일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인 브리지트(왼쪽) 여사가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9월 18일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인 브리지트(왼쪽) 여사가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 제5공화국이 붕괴 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재정 불안을 두고 일부에서는 높은 복지 지출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마크롱 정부의 정치적 실패와 누적된 개혁 불신이 정국 불안을 키운 핵심 요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바이루 내각은 지난 7월 국방을 제외한 정부 지출을 동결하고 공휴일 이틀을 폐지하는 440억 유로(약 66조원) 규모의 감축 예산안을 제시했다. 이는 바르니에 내각이 내놓은 600억 유로 긴축 패키지보다 완화된 것이었지만, 국민의 거센 반발을 피할 수는 없었다. 결국 긴축안은 표결 처리 동력을 상실했고, 바이루 총리가 직접 신임 투표를 요청했음에도 하원은 압도적 차이로 등을 돌렸다.

이번 불신임 사태는 예산안의 규모 자체보다는 정치에 대한 불신이 직접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마크롱 집권 시기의 강압적 개혁 추진과 잇따른 사회 갈등이 누적되면서 중도 정치의 리더십 자체가 국민에게서 설득력을 잃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다.

극우 르펜 진영은 의석을 크게 늘렸지만 긴축을 처리할 힘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자산도 부족하다. 이번 사태는 극우가 득세해도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중도 정치의 붕괴가 극우의 반사이익을 키웠다는 사실도 확인시켜 준다.

결국 프랑스 정치의 구조적 한계는 마크롱 정부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민심과 괴리된 정책 추진이 장기화되면서 긴축이든 복지든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고, 이는 하원에서 압도적 불신임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제 자체를 압박하는 체제 위기의 신호탄이 된 셈이다.

프랑스 국가부채는 GDP 대비 114%로, 2000년대 60%대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확장재정을 이어간 결과이며,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채무 부담이 누적됐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만으로 국민을 설득하지 못한 것이 마크롱 정치 실패의 본질이라는 평가다.

이 가운데 정부 예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사회복지 지출은 민심이 직접 투영된 영역이다. 의료·연금·실업급여 등 생활 안정망은 단순한 지출 항목이 아니라 프랑스 사회계약의 핵심으로 자리잡아 왔다. 이를 정치가 지켜내지 못한 것이 신뢰 붕괴로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복지를 줄여도, 늘려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 악순환에 정치가 갇혔다는 점이다. 긴축을 밀어붙이면 국민 저항이 거세고, 복지를 유지하면 재정 압박이 커지는데 이를 관리할 정치적 역량이 부재했다. 마크롱 정부가 바로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민심을 얻지 못한 채 목소리만 키운 정치 세력은 양극단 모두 신뢰를 잃는다. 긴축을 주장하는 다수파도 사회적 합의 없이는 정권을 지탱할 수 없고, 복지를 외치며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 역시 재정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다. 이 괴리가 결국 불신임이라는 형태로 표출된 것이다.

향후 프랑스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유럽연합(EU)과 국제금융기구를 통한 ‘공동 리스크 분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단순히 재정 회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질서 정렬의 문제라는 점에서 국내 정당성 기반을 넓히고 국제 신뢰망을 강화해야만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마크롱식 중도 정치의 실패가 극우 득세를 자초했다는 교훈도 남는다.

여성경제신문 이상헌 기자 libert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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