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 못 하면 복지 ‘제로’···가혹한 현실
정보 부족·거동 불편 지원 포기 속출
‘자동지급’으로 복지 사각지대 없애야

65세 이상 고령층은 정보 접근과 거동의 어려움으로 복지 신청 자체가 힘들다. 신청주의 원칙 아래 많은 노인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인다. 조건 충족 시 자동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복지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65세 이상 고령층은 정보 접근과 거동의 어려움으로 복지 신청 자체가 힘들다. 신청주의 원칙 아래 많은 노인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사각지대에 놓인다. 조건 충족 시 자동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복지 체계를 전환해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경북 안동에 사는 72세 김 모 씨는 올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에어컨 없이 지냈다. 전기요금이 밀려 전기가 끊겼고 냉방비를 신청하면 지원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었다. 한데 그는 “어디에다 뭘 신청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혼자 동사무소 가기도 힘들다”며 결국 복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신청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복지’, 신청주의의 벽이 고령층을 복지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 A씨는 심장병과 당뇨를 앓고 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지만, 올해 상반기 긴급생계지원금을 신청하지 못해 지원을 받지 못했다. 서류 준비와 복잡한 신청 절차가 감당이 안 돼 포기했다. A씨는 “동사무소에 몇 번 가려 했지만 거동이 불편하고, 무슨 서류를 내야 할지 몰라서 결국 포기했다”고 했다.

21일 여성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매년 수천억 원 규모의 복지 예산을 책정한다. 그런데 정작 가장 지원이 절실한 고령자 중 상당수는 제때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 또는 보호자가 반드시 신청을 해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하거나 정보 접근성이 낮은 고령층에게는 사실상 높은 벽이다.

고령자는 신청 과정에서 가족관계증명서, 소득·재산 증빙자료, 주거 관련 서류 등을 준비해야 한다. 독거노인이나 보호자가 없는 노인의 경우 정보 접근성은 물론, 동사무소 방문조차 어렵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노인 복지 중 미수급 비율이 높은 항목 중 하나가 긴급복지지원제도다. 신청을 못 해서 생계에 위협을 받는 고령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이 ‘신청주의’라고 지적한다. 김민수 한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경제신문에 “권리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법문화가 현실을 오해하고 있다”며 “복지는 구조적 위험에 대응하는 제도인 만큼, 자동으로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유럽 선진국은 이미 ‘자동지급’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출생과 동시에 육아지원금이 지급되고 정년이 되면 별도 신청 없이 연금이 계좌로 입금된다.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행정 비용도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는 평가다.

국내의 경우 아동수당, 기초연금 등은 일부 자동판정 요소가 도입돼 있다. 행정정보와 공공 데이터(국세청, 지자체, 건강보험공단 등)를 연계해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조건 충족 시 자동지급, 원할 경우 거부’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

고령층은 위기 상황에 놓여 있어도 이를 외부에 알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체, 단전, 병원 미수진료, 장기 결석 등 위기 신호를 행정정보로 감지해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도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 ‘복지 멤버십’을 통해 맞춤형 안내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사회복지 공무원에게는 직권신청 권한도 주어졌다. 그러나 안내와 권고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김민수 교수는 “진정한 개혁은 복지를 ‘반드시 신청해야 받을 수 있는 제도’에서 ‘신청 없이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바꾸는 것”이라며 복지 접근의 문턱을 대폭 낮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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